꿈 권하는 사회
어머니는 가끔 전화를 한다. 내가 자주 안 해서이기도 하지만, 노인네의 전화는 노파심이 대부분이다. 가령, 대표적인 것이 꿈자리다.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당분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지시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이 뻔히 들릴 텐데도 어머니는 끝까지 신신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며칠간은 괜스레 신경 쓰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무튼 꿈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 꿈으로 인간사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고, 생사를 예고하는 일이 다반사다. 꿈을 잘 꾸지 않는 나로서는 -`어쩌면 꿈이 나를 잘 믿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날의 생생한 꿈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아마 그것은 꿈이 자신의 신묘함을 내게 보여준 유일한 경험이어서인 것 같다.
그날따라 햇살이 가득한 베란다에 내가 왜 나갔는지는 모르겠고, 커다란 거북이, 그것도 아주 시커먼 흑거북을 두 팔로 들어 올린 나는 너무 크고 무거워 우스꽝스럽게 버둥대다 끝내는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는 중 잠을 깨고 만다. ‘아이고, 꿈이었구나’ 하기도 전에 그 꿈이 어찌나 생생하던지 온 몸이 욱신대는 것 같았다. 내심 길몽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은 삽시간에 온갖 상상·공상·망상의 나래를 편다. 그 날 오후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복권 몇 장을 사서 가슴에 품은 나는 비굴한 사회생활을 접고 마침내 독립만세를 외칠 기세였다.
‘회심의 미소’란 이럴 때 쓰는 말이렸다.
하지만 다시 비굴 모드로 들어가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휴짓장처럼 날아간 복권 대신에 얼마 있다 내가 들은 소식은 아내가 둘째 애를 가졌다는 얘기였다.
그때서야 꿈 애기를 털어놓은 나는 아내와 함께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꾼 신묘한 꿈은 태몽이었고, 하늘이 안겨준 복권은 바로 우리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태몽의 신기함이다. 왜 사람들은 태몽을 꿀까. 그리고 태몽은 왜 대체로 비슷비슷한 유형을 가지고 등장할까. 플라톤적으로 상상해보면 태몽이란 이 세상으로 건너오기 전 영혼이 선택한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를 살짝 보여준 것일 수도 있겠고, 그렇게 보면 꿈은 신과 인간의 영혼이 중요할 때 가끔 만나는 일종의 만남의 광장 같은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꿈만큼 비밀스러운 장소도 없으니까 말이다.
더 이상 생각을 진전시키다가는 실없는 인간이 될 것 같아 이쯤에서 멈추고, 꿈 얘기가 나왔으니 꿈에 관한 다른 얘기 하나 할까 한다. 가끔 내 사무실에는 젊은 친구들이 방문하는데, 인터뷰를 해가거나 멘토링을 부탁하는 일이 있다. 나는 사실 그렇게 좋은 얘기를 해줄 만한 주제도 못되고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던지라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데, 특히 큰 꿈을 갖고 도전하는 젊은이가 되라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자리면 더욱 난감해진다.
왜냐하면 내 자신이 꿈이 있는 젊은이도 아니었고, 작금에 꿈이라는 단어가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대량생산되며 인간의 필수조건인 양 압박하는 모양새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꿈이라는 단어는 아름답고, 꿈을 향해 정진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박수 받을 일이다. 하지만 꿈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사회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도 비정상적이다.
꿈은 스펙이 아니다. 하지만 성과주의 사회는 마치 꿈마저 스펙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꿈이 없으면 어떠랴. 인생지사가 꿈이거늘.
이현종
CCO (Chief Creative Officer) |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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