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0 : 법고창신(法古創新)- “광고기획자는 충신의 마음을 갖고 간신의 혀로 설득해야"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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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고창신(法古創新)

1984년 종합광고대행사로 설립된 LG애드는 바로 다음해에 우리나라 광고계를 강타하는 캠페인을 탄생시켰는데, 바로 금성의 ‘테크노피아(Technopia)’ 캠페인이었다. 가상의 공간에서 컴퓨터에 의해 제어되는 로봇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컴퓨터그래픽 영상은 첨단 과학기술 시대로 접어들고 있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상징했다. 전자업체로서의 금성의 비전을 제시할 목적으로 ‘21세기는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는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종합’편·‘뉴미디어’편·‘자동화 사회’편·‘우주화 사회’편 등을 통해 이뤄졌다.
광고표현 측면에서 우리나라 광고에 최초로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이후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한 광고 붐을 이끌었고, 10여 년간 장기적으로 지속되며 ‘캠페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설었던 그 당시 국내 광고계에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1993년 개최된 대전 EXPO에서는 테크노피아관의 전시를 통해 금성이 만들어가는 테크노피아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가시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사보 편집실에서는 재직 시절 금성사의 대행업무를 전담했던 오기목 상무를 만나, 금성사 광고가 한국 광고사에 수많은 전설을 남겼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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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도 편한 날 없었지만, 한시도 즐겁지 않은 날 또한 없었어”
오기목 전 LG애드 상무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으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 용산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24개의 정거장을 지나서야 양평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LG애드 재직 시절에 미리 마련해두었던 양평 거처에 아예 정착해서 살기 시작한 지도 근 10년 가까이 되어간다고 한다. 세속을 떠나 있고 싶었다는 오기목 상무는 요즘도 뉴스나 광고는 되도록 멀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회사 그만두고 산천초목으로 여행을 많이 다녔어. 세상을 관조하면서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 재직 시절에 대한 미련은 없어. 정말 즐거웠고, 신나게 일 했으니까.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다음부터는 뒤돌아보고 싶지가 않더라고. 광고가 매력적인 직종이지. 나랑 적성도 잘 맞았어. AE로서 한시도 편한 날은 없었지만, 한시도 즐겁지 않은 날 또한 없었지.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았으니 또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 지난호 사보는 읽어봤는데, 사실 대전엑스포 테크노피아관에는 지원을 나간 거였어. 박현주 상무가 이미 나가 있었는데, 관람객이 4시간을 기다려야 입장 가능할 정도로 인기를 끌다 보니 사람이 더 필요하게 됐지. 금성사 ‘테크노피아’ 캠페인은 금성 계열 자매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기업PR 광고였는데, 기술을 통해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금성의 기술이념을 대변하는 광고로 기획됐어. 우리나라 광고에 처음으로 컴퓨터그래픽을 도입했던 광고였고, 김찬모비딕 감독이 당시 LG애드 CM팀에서 제작을 담당했지. 선호도나 인지도 등 각종 지표도 상당히 좋았고, 광고가 크게 인기를 얻어서 각종 광고제에서 상을 무척 많이 받은 캠페인이었어.경쟁사에서는 난리가 났고, 후발 대응으로 ‘휴먼테크’ 광고 캠페인이 나왔지. 어쩌면 테크노피아 캠페인이 10년 동안이나 이어졌던 이유중 하나는 ‘휴먼테크’ 캠페인 덕분이었을지도 몰라. 서로 경쟁적으로 계속했거든.” 

“LG애드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지, 가격전략에도 우리 의견이 반영될 정도로”
매장의 종업원이 31가지의 맛을 빠른 속도로 열거하다가 숨이 차 뒤로 넘어간다. 이윽고 정신을 차려 고개를 내민 그가 헐떡거리며 묻는다. “고르셨어요?”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는 유행어를 탄생시켰던 배스킨라빈스 광고이다. 오기목 상무는 배스킨라빈스·오리엔트시계·한미약품 등의 외부 광고주의 대행업무를 한 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금성사 가전을 자신만큼 오래한 사람은 LG애드에 없었을 것이라며, 광고인으로서의 삶 전체를 금성사·LG전자와 성공적으로 함께 했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예전에 냉장고가 180·200리터가 주종이던 시절 때 이야기인데, 성에 논쟁이다 전기료 논쟁이다, 경쟁사하고의 끊임없는 싸움도 거의 정점이었을 때지. 그때 내가 240리터 냉장고 광고를 금성사에 제안했지. 마케팅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던 모델이었어. 그런데 나는 용량 시장을 본 거야. 곡절 끝에 금성사를 설득해서 우리나라 최초로 240리터 냉장고 광고의 포문을 열기로 했는데 문제가 있었어. 240리터 냉장고가 생산라인에서 할당량이 일곱 번째 정도에 걸려 있는 거야. 공장에 뛰어가서 생산라인 바꾸지 않으면 큰일이 발생한다고 말했지.
거의 울다시피 해서 광고가 온에어된 이후에나 생산라인을 바꿀 수 있었는데, 이미 늦어버렸어. 주문은 쏟아지는데 물량은 부족했던 거지. 대리점주들 난리 나고, 소비자들도 물량도 없이 왜 광고했느냐는 반응이 나오고 그랬어. 그때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하지만 그때 이후로 대표모델 선정부터 생산라인 변경, 제품시장 예측까지 우리 의견이 금성사의 결정에 참고가 됐지. 마케팅할 제품을 결정할 때 금성사 마케팅팀하고 마켓셰어 2%의 제품 중에서 대표모델을 선정했는데, 비전은 있지만 광고를 하지 않아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성공으로 LG애드에 대한 금성사의 신뢰도가 높았는데, Play Only VTR의 가격책정도 우리 안으로 결정되기도 했지. 우리의 의견이 금성사의 마케팅 의사결정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오기목 전여졌기 때문에 정말 신나게 일했지. 당시 금성사는 광고기획자를 신뢰하는 좋은 광고주였어. 나도 금성사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맡은 일은 성공시켰으니까. 지금도 금성사·LG전자 마케팅쪽 선후배 임원들과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 모임이 있는데, 두 달에 한번씩 같이 만나서 술 한잔씩 하지. 내가 명예회원이야. 재미있어

 

“넥타이 매고 철가방 들어야 했던 부하직원들, 고생 많이들 했지”
당시 전자제품 광고기획자들이 남모르게 많이 고생했던 짧은 사연도 밝혔다.


“예를 들어 화학제품군은 제품 촬영할 때 AE들이 치약·화장품을 주머니에서 꺼낸다면, 전자제품군 AE들은 냉장고나 세탁기 들고 충무로 스튜디오까지 가서 짊어지고 올라가야 했어. 용달 불러서 제품 실어 나르고, 전자 담당자들 고생 엄청 했어. 전자레인지 담당하던 친구는 요리된 음식을 찍어야 하는데, 당시 하선정 요리연구가가 출장요리는 안 해준다는 거야. 그래서 그 친구가 중국집 배달통에 요리를 싣고 촬영장까지 날랐던 기억도 나. 넥타이 매고 철가방 들고 나르는 심정 생각해봐. 그런 고생들 너무 많이 해서 부하직원들에게 미안하기도 해.
내가 부하직원들에게 술도 많이 먹이고는 했지. 접대비가 적으니까 한번 먹일 때 엄청 먹였지. 소주를 맥주잔으로 몇 번 먹고 나면 진탕 먹었다는 기억이 들잖아. 비용도 적게 들고. 그렇게 먹고 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부하직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내가 직원들을 위해 많이 먹어준 거야(웃음). 사실 당시 LG애드 내에서 나하고 대적할 만한 사람이 장우열이나 김중권 정도였을까. 두주불사로 유명했으니까. 광고제작 담당했던 사람들도 고생 많았지. 윤병훈·김희수·조봉구·박호·변추석·이영희 등 금성사 광고제작 담당하면서 고생 많이들 했어. 경쟁사와의 경쟁 뿐만아니라, 금성사가 업계 선두주자로서 방향을 제시해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획이나 제작이나 다같이 힘들었지.

 

“광고주에게 진정한 아부도 할 줄 알아야"
맡았던 본부에서 목표 대비 마이너스 실적을 거둔 기억이 없다는 오기목 상무는 광고기획자의 기본 자질로 목표실적을 어떤 경우에도 달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기억하건대, 내 본부에서 목표 대비 마이너스 실적을 거둔 적이 없어. 팀별로는 마이너스가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항상 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것은 이승룡이가 잘 알거야. 열심히도 했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못 하면 필요 없잖아. ‘열심히’는 누구나 하는 거야. 열심히 안 해서 어떻게 살아. 열심히 하는 건 아무 소용없고, 무조건 잘 해야 해. 재직 시절 부하직원이 열심히 하겠다고 하면 혼냈어. “이제까지 열심히 안 했어?”라고. 광고기획자가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면, 폭넓게 듣고 알아야 해. 그래야 자기 중심이 잡히고 광고주와 크리에이터를 설득할 수 있는 방향이 잡히지. 그리고 바른 소리를 할 줄 알아야 해. 다만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 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못 하는 거고, 바른 소리할 만큼 광고주와의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헛소리가 되는 거지.
내가 AE 교육할 때 아부를 배우라고 했어. 옛날에는 아부를 잘 하면 간신이라고 했잖아. 간신은 자기를 위해서 아부하는 사람이야. 하지만 광고기획자는 충신의 마음을 갖고 간신의 혀로 설득해야 하지. 난 그랬어. 그게 진정한 아부야.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광고기획자가 광고주를 잘 설득할 수 있어야 집행될 수 있잖아. 가끔 떼를 쓰기도 했는데, 그래서 내 별명이 ‘오떼떼’였지. 그리고 광고주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가지면 절대 안 돼. 광고주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도, 프레젠테이션에서 탈락하는 것도 광고기획자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지.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