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Art
종이 책에 대한 어떤 시선
공간적 제약이 따르는 White Cube의 전시장에서 모든 작품을 설치하기는 쉽지 않은 반면, 책의 형태 안에서는 원하는 포맷과 작품 수를 정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아티스트들은 자기 작업의 특징에 맞도록 직접 제작한 종이인쇄물 형태의 ‘아티스트 북’을 선호한다.
일상의 ‘디지털화’는 우리 삶의 수고를 덜어주고, 일부는 다양한 원자재를 절약할 수 있는 대체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내며 일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꾸어내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거듭될수록 이러한 디지털 환경에 역행하며 등장한 아날로그 매체에 대한 향수는 시각과 촉각·청각 등 모든 감각기관을 자극할 수 있는 감성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만 만들어 낼 수 있는 치밀한 디테일·오뜨 퀴뜨르(Haute Couture)·장인정신·완벽주의·진정성 등을 내포하는 ‘아날로그’만의 특성에 주목하게 한다.
그들은 왜 White Cube를 벗어나나
책, 새로운 예술로 태어나다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 권정민 ㅣ대림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컬리지 큐레이터학 석사와 독일 함브르크 예술대학교 매체예술학과 학/석사로 공부했다. 대림미술관의 디터 람스·칼 라거펠트·유르겐 텔러·핀 율 그리고 슈타이들의 전시를 진행했으며, 다양한 출판 및 다수의 강의를 했다.
사진의 보편화를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1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코닥 사를 파산시켰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아마추어 사진가를 등장시켰으며, 전문사진가의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을 야기하는 등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도 현상과 인화의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한 장의 흑백사진의 퀄리티는 디지털 기술로 표현해 낼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책과 종이 인쇄물의 경우 많은 책들이 e북의 형태로, 그리고 광고와 서신은 이메일로 대체되고 있다. 모든 매체가 그랬던 것처럼 출판 인쇄 역시 디지털 매체의 등장은 위협적이었다. 신문·잡지·책의 존폐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기존에 읽고 버려지던 인쇄물은 디지털로 전환되고, 소장할 가치가 있는 인쇄물은 새로운 형태의 책과 잡지로 등장해 또 다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더불어 최근 어린 학생들의 컴퓨터 학습이
늘어나면서 e북으로 학습한 경우와 종이 책으로 학습한 경우의 학습차이가 40% 이상이라는 연구논문이 발표되면서 종이 책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일어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책은 각기 다른 크기와 재질·컬러 등의 다양한 겉모양과 그 안에 고유한 디자인을 담고 있다. 책을 만지고 느끼고 종이의 냄새를 맡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느끼는 경험은 마우스나 터치패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러한 아날로그 인쇄물의 특징들은 소설이나 매거진 형태뿐만이 아닌 아티스트들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많은 아티스트들이 본인의 웹사이트를 가지고
그 안에서 작업들을 프레젠테이션하고 있다. 그러나 웹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관람자가 소유하고 있는 디지털 매체의 특징에 따라 작품이 달라 보이기 때문에 작가가 원하는 원본 작품의 컬러와 밝기·포맷 등을 컨트롤할 수가 없다.
또한 공간적 제약이 따르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의 전시장에서 아티스트의 모든 작품을 설치하기는 쉽지 않은 반면, 책의 형태 안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포맷과 작품 수를 정할 수 있다. 기간이 끝나면 작품을 볼 수 없는 전시와는 다르게 아티스트 북은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시공간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많은 아티스트들은 자기 작업의 특징에 맞도록 직접 제작한 종이인쇄물 형태의 ‘아티스트 북’을 여전히 선호한다. 그 예로 다이아니타 싱(Dayanita Singh)이라는 인도 출신의 여류작가는 자신의 사진작업을 액자에 프레임되어 벽에 걸리는 기존의 방식이 아닌 책의 형태로 소개하며, 화이트 큐브보다는 일상의 공간에서 본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집은 현재 아트북·북아트·아티스트 북 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그 의미가 모호한 상태에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는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작품집이나, 책을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해 만들어진 오브제 형태의 작업 그리고 팝업 북 형태이거나 세상에서 본인만이 만들 수 있는 공예형태의 책 제작물들의 명칭이 혼용되며 같은 이름을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북아트와 관련된 용어를 가장 잘 정의한 예시를 살펴보면, ‘Artistic Book은 그 안에 담긴 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책이다’ ‘Artists’ Book은 개인적으로 제작되고 출판된 책 오브제이다. 그것은 자전적일 수도 있고, 정치적 철학적 의도가 닮길 수도 있다. 서술적 글을 담거나 판화·사진·콜라주·다이 커팅 등의 다양한 미술적 기법들이 사용된다. 여러 가지 전통적 책 모양을 닮을 수 있다. 어떤 것은 상자 안에도 있을 수 있고 매우 작거나 아주 큰 것도 가능하다’ ‘미술에 대한 또는 문학적 글들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미술적 표현, 미술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 책이다’라고 British Artists’ Book에서 설명하고 있다.
책이라는 매체가 예술과 만나는 접점은 개개인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양한 논점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러한 이슈들은 글뿐만 아니라 전시의 형태로 소개되고 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예술가가 다룬 책을 소재로 한 전시는 1999년의 ‘예술가가 만든 책’이라는 그룹전이었다. 이 전시는‘ 아티스트가 저자가 되어 만드는 책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 전시였다면, 2003년에 열린 ‘ArtBookArt’전에서는 ‘예술의 방식을 취한 책, 책의 형태를 취한 예술을 내용으로 담고 있는 책, 예술의 방법을 취한 책의 디자인’ 등 책과 예술을 잇는 다양한 장르를 모두 망라해 그것들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전시였다.
반면 2005년에 환기미술관에서는 ‘Livre Object`-`감상하는 책’이라는 타이틀로 예술제본 장정, 오브제에 가까운 책, 전자책의 일종인 웹북 등을 소개하는 오브제로서의 책, 즉 위에 정의한 ‘북아트’의 개념에 따라 구분하자면 Artistic book으로 구분될 수 있는 작품들이 소개됐다. 또한 기존의 책 관련 전시들이 예술가의들 작업을 소개하는 매개체로서의 책이나 오브제로서의 북아트를 통해 아티스트들의 창작적 영역을 조명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현재 열리고 있는, 독일 괴팅엔에 위치한 출판사 슈타이들(Steidl) 사의 오너이자 출판·인쇄인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을 소개하는 ‘How to make a book with Steidl 전’은 책을 만드는 과정이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만이 이끌어나가는 영역이 아니라, 출판·인쇄의 과정이 하나의 독립된 창작의 영역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전시에서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필요한 공정과 기본재료들을 보여주고,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섹션을 통해 종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경험을 직접 접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책을 만들기 위해 슈타이들이 작가 및 아티스트들과 함께 소통하며 아이디어가 발전되는 과정들을 소개해 글과 예술작품들이 디자인적으로 어떠한 결정을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는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독학으로 인쇄기술을 배워 지난 5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만의 출판사를 지켜오고 있는 슈타이들은 현재 인쇄와 출판 그리고 홍보 마케팅을 한 지붕 아래서 진행하고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인물이다. 작년부터 그가 출간하는 일부의 소설은 e북으로 출간되기 시작했지만, 슈타이들 사에서 생산되는 예술서적(위의 북아트 용어에 따르자면 Artistic book과 Artists book 모두를 의미함)만큼은 100% 아날로그로 제작겠하다는 마니페스토를 선언했다. 사진가 로버트 폴리도리(Robert Polidori)는 “디지털은 잊기 위함이고 아날로그는 간직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을 했다. 현재 디지털 매체의 한계를 잘 드러내 보이고 있는 말이다.
과거에 책 한 권을 소유하는 것이 쉽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수준 높은 도서와 잡지 그리고 예술서적들이 생산되고 그 수요 또한 늘어나고 있다. 슈타이들은 본인이 ‘가장 잘 만든 책은 가장 최근에 만든 책’이라고 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의 대표적인 매체인 ‘책’은 앞으로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미래에 만들어지는 책은 또 어떤 새로운 의미와 경험을 만들어낼까? 디지털의 등장과 함께 사라질 것만 같았던 책의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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