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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으로 본 슈퍼히어로
배트맨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브루스 웨인은 방탕함을 가장하고 있고, 돈과 권력 때문에 상처받기도 한다. 이는 ‘슈퍼히어로라는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그것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는 방랑자형 인간’ 에 대한 상징이다.
사실 슈퍼히어로 영화는 그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멋진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팀 버튼의 <배트맨>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슈퍼히어로’라는 설정으로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지만 그것이 주류가 되진 않았다. 같은 배트맨을 다룬 <다크나이트>가 등장하면서 수퍼히어로 영화는 대중적인 인기뿐 아니라 ‘영화광으로 학습된 관객들을 위한 아이템’이라는 색상이 더욱 짙어졌다.
<아이언맨>을 거쳐 <어벤져스>에 이르러서는 슈퍼히어로 캐릭터 그 자체에 대한 팬덤이 활성화됐고, 그것을 누구도 겸연해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슈퍼히어로가 단순히 특수한 능력을 지닌 캐릭터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모든 영화관객들이 알고 있다. 이제 슈퍼히어로 그 자체를 기호학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있는 작업은 아니다. 물론 너무 깊은 기호학적 연구는 따분할 수 있으니 아주 가볍게 몇 밀리미터 정도만 파헤쳐 본다.
Icon·Symbol·Index
먼저 매우 기초적인 기호학의 단서들을 통해 수퍼히어로라는 아이템 자체를 살펴보자. 우리는 슈퍼히어로라는 아이템에 ‘도상(Icon)·상징(Symbol)·지표(Index)’라는 피어스의 3대 기호 유형을 적용할 수 있다.
먼저 ‘도상’은 슈퍼히어로라는 지시 대상을 닮은 이미지 기호다. 대표적인 예는 배트맨의 박쥐 마크다. 범죄의 도시인 고담에서 배트맨을 불러야 할 일이 생기면 경찰서장 고든이 옥상에서 하늘로 박쥐 마크가 그려진 서치라이트를 켠다. 하늘에 선명하게 새겨진 박쥐 마크의 그림자는 곧 배트맨이 출현할 것을 예고하는 도상의 역할을 한다. 많은 슈퍼히어로들은 자신을 지시하는 도상을 몸에 새기기도 하는데, 배트맨의 경우 예의 박쥐 마크를 가슴에 달고 있다.
슈퍼맨의 경우 자신의 이니셜인 S자를 마크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상징’이다. 기호 그 자체가 지시 대상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갖지 앉는다. 대부분의 언어가 대표적인 상징의 예다. 출생 성분으로 봤을 때 외계인인 슈퍼맨이 지구인들의 언어를 채택해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점은 참으로 친절한 캐릭터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도상도 아니고 상징도 아닌 아이언맨의 가슴에 박혀 있는 아크 원자로는 무엇일까.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지표’다. 지표는 ‘기호와 지시 대상 사이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을’ 말한다. 지표가 어떤 개념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거의 모든 교과서에서는 ‘산불’의 지표가 ‘연기’인 것을 말하고 있다. ‘산에 불이났기 때문에 나는 연기‘가 산불의 지표가 된다는 것처럼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는 아이언맨의 동력이라는 점에서 인과관계가 있고, 또한 그 자체로 아이언맨을 지시하는 기호로 사용된다.
비슷한 방식으로 살펴봤을 때 <인크레더블 헐크>와 <어벤져스>에 등장했던 헐크의 경우 찢어진 바지 내지는 화난 얼굴이 헐크를 지시하는 기호, 바로 지표일 수 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3부작에 이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리부트 시리즈가 시작된 스파이더맨의 경우 지표와 도상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손목에서 발사되는 거미줄은 스파이더맨이 등장하는 자리 어느 곳에나 동반되는 아이템인 동시에 스파이더맨 자체를 상징하는 지표다. 그리고 스파이더맨 코스튬의 가슴에 그려져 있는 거미 그림은 스파이더맨을 상징하는 도상이기도 하다.
영웅 배트맨 vs 시민 브루스 웨인의 기의
이렇게 수퍼히어로 장르 안에서 각각의 기호학적 요소들을 살펴볼 수 있는가 하면 개별적 작품 속에서도 기호학적인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나이트>, 그리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로 연결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텍스트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집중하는 기표는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부자이며, 불행한 개인사를 지니고 있고, 악당들을 물리치면서도 복잡한 신경증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 캐릭터다. 거의 대부분의 수퍼히어로들이 그렇듯이 배트맨이라는 기표는 두 개로 분열된다. 바로 브루스 웨인이라는 시민으로서의 기표가 또 하나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호학적 접근을 통해 배트맨의 기의와 브루스 웨인의 기의를 발견할 수 있다. 배트맨의 기의는 ‘폭력을 제압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우리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보는 내내 느끼는 것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는 악당들도 나름 자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는 점이다. 조커도 그렇고 베인도 그렇듯 별 이유 없이 파괴를 일삼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 있는 폭력에 대항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폭력일 뿐이라는 것은 배트맨의 복잡한 신경증의 근거가 된다.
슈퍼히어로가 아닌 시민으로서의 브루스 웨인이라는 기표가 가지고 있는 기의는 또 다르다. 방탕함을 가장하고 있고, 돈과 권력 때문에 상처받기도 한다. 이것은 ‘슈퍼히어로라는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결코 그것으로 행복을 얻을 수 없는 방랑자형 인간’ 에 대한 상징이다. 이런 내부적 의미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더욱 깊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현실적 한계 극복’, 그 인간적인 욕망의 지표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배트맨보다 아이언맨이 훨씬 더 인기가 있다. 배트맨 시리즈도 만만치 않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언맨의 절대 관객 수가 많다. 배트맨은 열혈 관객이 더 많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어쨌든 아이언맨의 열혈 관객도 무시하지 못할 숫자다.
아이언맨은 기호학적으로도 확연히 다른 슈퍼히어로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아이언 맨의 본래 정체성인 토니 스타크는 배트맨, 브루스 웨인 같은 부자이지만, 배트맨처럼 은둔하지도 않고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도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 놓고 활약하는 데다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은 기호학적으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토니 스타크는 쇼비즈니스에 노출된 스타, 그 중에서도 원래 처음부터 배우나 가수 등으로 활약하지 않고 셀러브리티가 된 이들을 상징한다. 패리스 힐튼이나 스티브 잡스 혹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대중은 그런 유명인들의 삶 속에서 결여된 것을 찾으며 희열을 느낀다. <아이언맨> 시리즈는 이 부분에서 확연한 전복적 사고방식을 보여준다. 망나니 같은 상속자가 영웅으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은 ‘유명인들의 가십을 보며 비웃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일 수밖에 없다. 때로 현실에 존재하기 힘든 캐릭터들은 관객들에게 동감을 얻어내기 힘들다. 하지만 완벽하게 현실을 뛰어넘어 아예 4차원의 벽 너머에 존재할 것 같은 캐릭터는 오히려 관객들의 찬사를 받는다. 그 전형이 바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인 셈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관객들이 ‘토니 스타크’라는 기표 안에서 그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기의로 읽어 낸다는 점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영화인 집안에서 자라나 젊은 시절부터 장래가 촉망되는 배우였지만, 마약 등의 스캔들로 감방살이를 한 적도 있다. 그런 과거를 딛고 일어서 중년에 이르러 <아이언맨> 시리즈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케이스인데, 관객들은 그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라는 배우 자체의 인생을 토니 스타크라는 기표에 반사시키며 더욱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토니 스타크는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을 상징하는 도상인 동시에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인생역전을 상징하는 하나의 지표로서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슈퍼히어로라는 기호 그 자체가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인간들이 현실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모든 한계, 풀어서 말하면 정신적, 육체적, 그리고 경제적 한계를 극복하고 싶다는 욕망이 투사된 하나의 지표라는 것 말이다.
조원희 ㅣ 영화감독
영화 전문 기자 출신의 영화감독. 2010년 <죽이고 싶은>으로 데뷔한 이후 3년째 다음 영화를 준비하는 중. 현재 EBS FM <조원희의 EBS 북카페>를 통해 저녁 7시부터 전국에 책을 소개하고,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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