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if copywriter's view : storytelling
Story + Teller + Marketing
스토리와 텔러, 그리고 셀럽
스토리텔링에 셀럽은 기본조건이 아니다. 셀럽이면 더 쉽다는 점이 포인트다. 그럼 셀럽이 없는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진행될까? 셀럽이 없다면 스토리는 셀럽이 있는 경우보다 더 파격적이거나 섹시해야 한다. 스토리가 평범하다면 스토리텔러가 차별화돼야 한다.
당신은 갑자기 잉여시간이 생기면 무엇을 하는가?
미리 예정됐던 여유시간은 나름대로 알차게 사용한다. 머릿속에 다양한 계획들이 존재하며, 그 중 시간의 길이와 통장의 잔고를 체크한 후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다. 만약 갑작스러운 저녁약속 취소로 시간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구를 만나기에는 시간이 짧다. 영화를 보기에는 회사 일에 지친 상태다. 선택은 하나뿐이다. 집에 가서 푹 쉰다. 집에 가도 푹 쉬지는 못한다.
갑작스럽기 때문이다. 보통은 거실 소파에 길게 누워 텔레비전 리모컨을 누른다. 평일 늦은 저녁은 그리 매력적인 프로그램을 만나기 힘들다. 채널과 채널 사이 쇼핑채널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때이기도 하다. 왜? 홈쇼핑 채널이 재미있어서다.
물건을 팔거나 셀럽을 팔거나
지금 홈쇼핑은 물건을 팔기 위해 스토리텔링중이다. 초창기 홈쇼핑 채널은 멋진 모델이 나와서 물건을 팔았다. “우리 제품은 컬러가 장점입니다. 모델이 착용한 모습을 보시지요”, 이런 류였다. 스토리는커녕 팔고자 하는 물건의 고객 인사이트조차 말하지 못했다. 중간에 간장게장이 유명인의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연예인의 성공 신화(?)가 회자된다. 돈가스·김치·의류 등 거의 모든 제품들이 연예인의 이름을 브랜드의 전면에 내세우자 사람들은 식상하기 시작했다. 얼굴마담 노릇만 한다는 점을 깨달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미 그때부터 스토리는 존재했다. 판매를 위해 연예인의 성공을 이야깃거리로 팔았다. 걸음마 스토리텔링이다.
스토리텔러는 아직 쇼핑회사의 쇼호스트가 전담했던 시기다. 스토리가 똑같아지자 C 홈쇼핑은 스토리텔러를 등장시킨다. C 홈쇼핑의 <셀럽샵>은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가 스토리텔러로 나온다. 상품 스펙과 특징 설명은 기본이다. 정씨만의 제품 코디 비법과 T.P.O에 따른 다양한 스타일링 팁, 최신 패션 트렌드 등의 정보를 스타일리스트의 입으로 말해준다. 보는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더해서 그는 자신이 직접 유명 연예인에게 해당 상품을 코디했던 에피소드를 풀어놓는다. 미치겠다. 연예인 이야기만으로도 귀가 쫑긋해지는 상황에서 코디까지 해주다니! 매력적이다. 그의 이야기는 짜릿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호기심과 동경이라는 감성 자극을 스토리텔링으로 극대화시킨다.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판다. 셀럽과 연관됐기에 전파력은 더 크다. 영화배우 고소영도 한 홈쇼핑 채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명칭으로 스토리텔러를 하고 있다. 역시, 물건이 아니라 그녀의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판다.
프로그램을 팔거나 셀럽의 이야기를 팔거나
방송프로그램은 이야기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존재한다. 엄밀히 따지면 스토리텔러는 작가다. 여기, 방송작가의 손길이 닿았는지 애매한 프로그램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재미없다. 똑같은 이야기의 재생 반복이 계속된다. 노래는 잘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하다. 외국에서 코리안드림을 이루기 위해 온 멋진 남성 출연자가 자신의 매력을 뽐낸다. 칠전팔기의 도전정신도 있다. 눈물 쏙 빼는 어려움은 양념처럼 존재한다. 그러나 무한 재생 반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지 못한다.
모 케이블TV에서는 색다른 요리 도전 프로그램을 한다. 일반인의 셰프 도전기가 아닌, 셀럽들의 요리와 도전기가 펼쳐진다. 셀럽을 평가하는 사회자 역시 셀럽이다. 도전하는 셀럽의 원래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 셀럽의 과거가 어땠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셀럽이 요리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야기다. 셀럽이 요리하느라 쩔쩔매는 모습과, 일반인처럼 심사위원의 독설을 들으며 괴로워하는 장면 장면이 이야기다. 보는 이들은 재미있다. 인간은 새디스트적인 가학성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 그 가학성을 마음껏 즐기도록 한다. 스토리텔링으로 가학성이라는 감성을 자극한다. 마치 매운 청양고추를 맵다 맵다 하면서도 계속 먹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공중파에서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1박 2일>이다. 복불복과 입수는 가학성의 전형적인 예이다. 셀럽을 이용한 무자비한 가학성은 매력적인 스토리가 된다. 불특정 다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끊임없이 ‘회자’되면서 재생산되는 짜릿한 스토리텔링이다.
아름다움을 팔거나 셀럽의 이야기를 팔거나
화장품류의 광고는 아름다움을 판다. 셀럽의 아름다움을 판다. 몇 년 전까지 화장품류의 광고모델은 당시 가장 잘 나가는 여자 모델로 예쁜 척 하는 모습으로 충분했다. 기능성 화장품이 주류를 이루게 되면서 ‘모델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세요! 당신도 그녀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어요. 꼭 우리 화장품을 쓰세요’라고 말하는 것에 그쳤다.
지금은 제품의 특성에 셀럽들의 이야기를 판다. 화장품은 아니지만, 엘라스틴의 모델은 전지현이었다. 그녀의 길고 반짝이는 머리는 모든 여성들의 워너비였다. 그러나 전지현이 엘라스틴의 장수모델이라는 이야기는 너무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이야기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요즘 소비자들은 이야기를 빨리 소비한다. 좀 더 새롭고 좀 더 재미난 이야기를 끊임없이 찾아 나선다. 그런 소비자들에게 한 가지 이야깃거리는 금방 이야깃거리로서의 가치를 잃고 만다. 트렌드를 간파한 엘라스틴은 김태희로 모델을 바꾸었다. 먼저, 장수 모델의 교체라는 자극적인 이야깃거리로 물건을 팔았다. 시간을 두고 광고가 나갔다. 모델이 자신이 생각했던 엘라스틴 이야기를 광고를 만든다. ‘엘라스틴 써보셨나요? 예전에 써봤죠? 우리나라 대표 샴푼데. 새로워진 엘라스틴? 달라진 거 같아요’ 셀럽이 직접 스토리텔러가 되어서 말한다. 실제 그런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녀의 이야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계속 엘라스틴 샴푸를 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쓸 것이다. 여신이 직접 한 이야기인데,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배반자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알 것이다. 엘라스틴 광고의 스토리텔링은 초기단계라는 사실을.
연예인 셀럽이거나 비연예인 셀럽이거나
셀럽은 연예인만 존재하지 않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셀럽이다. 홈쇼핑에 스토리텔러로 나오는 스타일리스트 정윤기 씨가 좋은 예이다. LG전자가 미국에서 집행한 홈씨어터 광고를 보자. <라스트 사무라이>·<가을의 전설>을 연출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모델이다. 사막을 배경으로 한 영화촬영 세트에서 즈윅 감독이 눈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대형 LG TV를 보며 자신의 영상철학을 말한다.
이 광고의 스토리텔러는 비연예인이다. 유명하지만 연예인은 아닌 감독이다. 그는 이야기한다. 먼저, 비주얼로 이야기한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뚫어지게 바라보는 TV는 ‘본다는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다. 다음은 카피가 이야기한다. ‘아카데미상 수상 감독이자 연출가인 에드워드 즈윅은 28년이 넘도록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어왔다. 그가 만드는 영상과 감성적인 이야기는 TV와 영화 모든 매체를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시련과 성취를 담은 <라스트 사무라이>·<가을의 전설>·<디파이언스> 등의 작품을 통해 즈윅은 놀라운 색감과 움직임으로 프레임을 빈틈없이 채우길 원했다, 무엇이 그의 이야기의 원동력이 된 것일까? 그는 스크린을 서사적인 스토리와 격정적인 인물들의 영상미로 채워 나간다. LG TV로 보는 그의 영화는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LG TV는 영상미를 극대화하는 최고의 홈씨어터다. 제품의 특성이 무엇인지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이야기를 판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LG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스토리가 있더라도 즈윅이라는 셀럽이 아니었다면 스토리가 되었을까? 그가 없으면 스토리텔링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