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Bell
예뻐지고 싶어요!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여자가 가장 오래 견딜 수 있는 방법은 그녀에게 거울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식욕을 능가하리라는 너스레가, 능청을 넘어 독설에 가깝다. 하기야 제대로 된 사람살이가 시작된 청동기 시대쯤의 무덤들에서도 칼과 거울이 으뜸으로 출토되는 걸 보면 폭력의 역사만큼이나 거울보기의 역사도 꽤 유구한 듯하다. 언젠가 TV에서 거울보기가 취미라고 당당히 밝힌 여배우 K양은 차를 몰면서도 틈만 나면 백미러로 얼굴을 확인하곤 한다는데, 지금 자기 얼굴이 어떤 모습일까가 3분 만에 한 번쯤은 궁금하다고 한다.
루키즘(Lookism)에 관한 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보통의 한국 여자들도 하루에 약 9회 정도는 거울을 보고 산다고 하니 찍고 바르고 보고 빼고, 거기다 가르고 자르고 째고 끄집어내고 쑤셔 넣고, 미모와의 전쟁은 처절하고 숙연하기까지 하다.
광고는 여자들의 이 힘겨운 싸움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이미지들을 생산하고 전도하는 바, 그 최일선에는 언제나 화장품 광고가 있어왔다.
아마 우리나라 화장품 광고에서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1989년 과 2001년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89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모델이 ‘드보~옹’하며 신고식을 했다. 소피 마르소라는, 지금은 어느 감독의 아내가 된 이 청초한 프랑스 아가씨의 등장은 우리 대중들에게 서구미인이 미의 기준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사건이었다. 대중적 센세이션과 마케팅적 성공은 이후 황신혜·윤정·이영애 등 비교적 서구형 미인들이 각광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01년에는 본명 이경엽, 예명 하리수라는 트랜스젠더의 캐스팅이 있었는데, 우리 사회로 보면 전대미문의 불순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성적 마이너러티에 대한 사회의 진보적 변화라든가 혹은 미에 대한 영역의 확대라는 시각보다는 오히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폭력적 이데올로기, 즉 루키즘의 작동을 의심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어쨌든 그 때나 지금이나 루키즘은 우리 시대의 종교다. 그렇다고 루키즘에 대해 비난 일변도로 거칠게 몰아붙일 생각은 별로 없다. 그건 내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줄을 서있어서이기도 하거니와 어떤 관점에선 감싸안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미적 성숙 단계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루키즘 열풍이 개인을 떠나 우리 사회 전반을 미적으로 세련되고 성숙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것은 고상 일변도의 상위문화가 해결할 수 없는 지점에서 출발을 한다. 루키즘이 어쨌든 개인의 색(色)에 대한, 선(線)에 대한 혹은 조형에 대한 미적 센스를 높여주고 안목을 키워주는 데 도움을 준다면 조악하고 미적인 센스와는 거리가 먼 우리 주위의 환경들을 변화시키는 데도 한 몫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멋진 양복이나 드레스를 입었을 때와 일상복을 입었을 때 혹은 군복을 입었을 때 말하거나 행동하는 매너는 각각 달라진다. 형식이 내용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광고로 보면 아름답고 세련된 비주얼에 거칠고 멋대가리 없는 헤드라인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비주얼에 대한 감각이 사회 전체의 커뮤니케이션을 세련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기 때문에 루키즘을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한 사회가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혹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에 가슴을 여는 가장 원시적인 단계로 이해하고 싶은 것은 지나친 긍정일까.
이현종
CCO (Chief Creative Officer) | jjongcd@hsad.co.kr
'Archive > Webzine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1-02 : JAN/FEB 2013 HS Ad Webzine (0) | 2013.02.18 |
---|---|
2013/01-02 : 다른X닮음 (0) | 2013.02.18 |
2013/01-02 : Cheif copywriter's view - storytelling (0) | 2013.02.18 |
2013/01-02 : Digitally yours 2013 - POST SNS (0) | 2013.02.18 |
2013/01-02 : Rules of Engagement - 차세대 마케팅의 핵심 키워드 :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0) | 2013.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