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10 : 광고와 문화 - 풀리지 않는 숙제, 풀어야 할 숙제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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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지 않는 숙제, 풀어야 할 숙제
  고 규 대 I 스포츠투데이 연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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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배우 이영애의 하루 일과를 소개한다.
‘아침에 일어나 세이 비누로 세안을 한 후 엘라스틴 샴푸로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말리면서 웅진 코웨이 아줌마를 기다렸다가 정수기 필터 교환을 한 후 정수한 물로 커피를 마신다.
조금 휴식을 취한 뒤 어제 한 빨래를 걷어 다리미로 다리고 유리창을 잠시 닦다가... “참, 나의 꿈도 소중해” 라는 말과 함께 영어공부를 한다. “Do you have an experience?”
그렇게 오전을 보낸 후 방금 발급받은 LG카드를 들고 나가 펜싱·헬스·쇼핑 등을 한바탕 끝낸 후 귀가한다. 밤이 되자 이어지는 남편의 화려한 이벤트. 냉장고를 둘러싼 수백 개의 초와 함께 팔이 떨어질 정도로 무거운 꽃다발에 파묻힌다. “어머, 파티에 가야 하는데...”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밤 외출을 떠나는 이영애. 그렇게 이영애의 하루가 지난다.
 
Celebrity Endorser? 풀리지 않는 숙제
10여 편 가까운 CF에 등장하는 이영애를 풍자한 인터넷 유머다. 무려 10개 가까운 CF에 출연하는 스타이다보니 TV를 켜면 이영애의 얼굴을 매번 볼 수 있다. 비록 남자인 나와 관련이 없는 CF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다보니 이런 유머도 나올 수밖에.

하지만 광고쟁이(비하적인 표현이 아닌 직업인을 강조한 말이라는 것을 양해해 주시길)의 입장을 글쟁이인 나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게 많은 광고에 등장하는 이영애의 모습에 과연 광고 효과가 있는 것일까? 오히려 새로운 모델, 새로운 이야기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굳이 표현하자면 ‘유명 보증추천인’(celebrity endorser)’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상품광고에서 유명 옹호인의 사용은 항상 논란이 끊이지 않는 테마이다. 유명 옹호인이 과연 광고 효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문제는 아직도 명확한 해답이 구해지지 않았다. 다만 필자가 내린 결론은(물론 단정은 위험하겠지만) 유명 광고모델이 꼭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가수 김건모가 오리온 초코파이와 4개월 단발 광고계약을 맺은 것을 두고 일부 네티즌들이 오리온 홈페이지 게시판에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해 화제에 오른 바 있다. 이들이 동양제과 측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김건모의 이미지가 초코파이의 ‘정(情)’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렇듯 제품의 특성과 관계없이 무조건 유명인을 등장시킬 경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소비자가 광고모델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경향으로, 이제 소비자는 광고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형성하는 그룹으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무명 모델을 기용해 더욱 큰 효과를 거둔 케이스도 적지 않다. 물론 거기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접목되어야 겠지만. 최근 이같은 나의 단상과 어울리는 경우가 바로 트랜스젠더 스타 하리수가 아닌가 싶다. 처음 등장할 당시 선연한 빠알간 화면이 내 시각을 앗아간 것이다. 이런 잔상과 더불어 방송사에 들어갔다가 “새빨간 거짓말, 알아? 그 목젖 봤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트랜스젠더 모델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같은 장소에서 처음 그 소식을 접한 또 다른 동료기자는 광고사의 전략이든 무엇이든 며칠 후 신문지상에 기사화함으로써 또 다른 반향을 일으켰다(그날 이후 필자는 왜 내가 먼저 기사화를 하지 못했나, 자탄에 빠진 적이 있다). 우리는 사실 하리수 말고도 숱하게 많은 무명씨가 일약 스타로 발돋움한 현장을 목격해 왔다. ‘버거소녀’라는 타이틀로 기억되는 N세대 스타 양미라, “지킬 것은 지킨다”라는 카피가 인상적인 ‘박카스’의 고수, ‘원샷 018’ 광고에 동반 출연한 이후 인기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차태현과 김정은 등이 그 예다. 특히 앙증맞은 외모와 목소리로 “아이스크림 사세요”를 외치는 아이스크림 소녀를 등장시킨 배스킨라빈스 광고, 갓 7개월 지난 영아가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빵을 먹어대는 파리바게트 광고 등을 볼 때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유명 스타의 겹치기 출연, 눈이 어지럽다
우선 10여년 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멘트 하나로 톱스타의 자리를 10여년간 유지해온 최진실을 시작으로, 수많은 스타를 양산해낸 게 바로 광고의 힘이 아닌가. 예를 들어 김선아·이나영·임은경·전지현 등등 이루 셀 수 없는 수많은 스타들이 광고를 통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최진실을 기점으로, ‘스타는 곧 CF스타’라는 공식이 ‘CF스타는 곧 연예계 스타’라는 공식으로 바뀐 것 같다).
그 덕분인지 필자가 기사를 작성할 때면 가끔 광고 카피의 수식어를 사용하곤 한다. ‘산소 같은 미녀 탤런트 이영애, 눈물 연기 호평’ ‘김선아? 금(金)선아! 영화사 러브콜 줄이어’ 등등. 그만큼 광고의 효과(물론 TV와 신문지상을 통해 일반인과의 접촉으로 인지도가 높아진다는 가정 하에)는 대단하다. ‘탤런트 이영애’라는 말보다는 ‘산소 같은 이영애’라고 말한다면 훨씬 그녀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광고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요즘에는 불만이 쌓인다. 도대체 탤런트 한 명이 얼마나 많은 광고를 하는 지 헷갈릴 지경이다. 솔직히 “화장품 모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김희선·황수정·전인화·이나영·황신혜·김민·김민희 등 현재 화장품 모델을 하고 있는 스타들의 이름을 댈 수는 있지만 “누가 무슨 화장품 모델이냐”라는 질문에는 그만 입이 닫히고 만다. 두서너 개만 대고 나면 화장품과 스타의 얼굴이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유명 스타만 사용하면 광고 효과가 만점이냐고(가끔 스타가 광고계약을 한 후 기사작성을 부탁하는 경우 열이 날 때도 있다. 1년 전속계약에 3억원, 혹은 4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을 쓸 때면 ‘1년에 서너 번 촬영하곤 내 10년치 연봉을 버는구나’라는 비애감에 젖기도 한다. 아, 월급쟁이의 서러움이여)
 
광고인들이여, 스타를 만들자
사실 화장품 모델이나 고급자동차 모델 등등 몇몇 제품에는 유명 스타의 등장만으로도 호기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10대를 위한 통신단말기나 과자류 광고에서는 소비자층이 분명한 이상 그들이 좋아하는 god·차태현·전지현 등 스타들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 불만이 없다.

하지만 변비약 광고에 미녀 탤런트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저 제품을 복용하면 뱃살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민감한 반응일까? 오히려 조금 못 나가는 연예인이 등장하는 CF가 좋아보이는 이유는 또 뭘까? 비단 필자만의 국한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대개의 광고주들은 본능적으로 위험 회피(risk-averse)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톱스타들을 선호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명 스타들을 앞세운 수많은 광고들이 제품 혹은 서비스를 인지시키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장돼 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작금의 ‘톱스타 만능 풍조’를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연예계 일선에 선 한 사람으로서 ‘스타는 CF에서 탄생한다’는 새로운 명제에 주목한다. 과거에는 TV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광고 모델들을 수급한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임팩트 있는 광고언어로 빚어낸 샛별들이 대거 연예계에 입성하는 ‘역류’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광고인들이여, 좀더 용기를 내어 새로운 얼굴들을 찾는 데 적극 나서길 바란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는 길을 유명 톱스타에게서만 찾으려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이다. 광고인들이 발굴해낸 신예스타가 국내 연예산업을 살찌우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말
광고인들이 보기에 문외한인 필자의 글이 어색할 게 분명하다. 전문분야가 아닌 만큼 필자가 보고 느낀 광고 이야기를 적어보았다. 어찌보면 문화산업의 큰 나무에서 같이 호흡하는 광고인과 언론인, 그 두 갈래의 큰 줄기가 힘을 합쳐 좋은 꽃을 피워보자는 게 필자의 작은 바람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