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12 : SUDDENBIRTH - Survival vs Justic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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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DDENBIRTH
Survival vs Justice
출전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승부한다. 그렇게 정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비교 평가받아 한 계단 한 계단 에스컬레이팅
하는 것이 그렇게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시청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국에서 '노래하는 꿈'을 지닌 소년소녀들이 모여든다. 그들의 목적은 각자 다르다.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해보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대중음악가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일 수도 있으며 어두운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의지일 수도 있다.
그렇게 각자 다른 환경과 다른 사연을 지녔으며 다른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한명씩 나와서 마이크 앞에 선다. 단순한 노래자랑이 아니라 그들이 처한 현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어떠했는지가 화면 위에 펼쳐진다. 그들은 노래를 하고 그들의 노래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점수로 평가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점수에 의해 그들이 살아남아 계속 노래를 할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
서바이벌'의 형태로 주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최근 화면을 통해 많이 만날 수 있었던 컴페티션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묘미는 이런 '경쟁'에 있다.


아메리칸 아이돌                                                                                            마이클 샌델 저 <정의란 무엇인가>

'경쟁'도 아름다울 수 있다
케이블 채널로는 전대미문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슈퍼스타 K2>는 일종의 전설이 됐다. 특히 마지막 회, <아메리칸 아이돌>에서도 주목받았으며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존박. 그리고 가난함을 이겨내면서 노래의 꿈을 지켜왔던 인물 허각. 이 두 사람의 마지막 경쟁은 2억 원의 상금이나 부상인 SUV의 가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사실 회를 거듭하며 들어온 그들의 노래는 시청자들의 귀에 이미 익숙한 상황. 누가 조금 더 실력이 나은가는 이미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전화 투표를 누른 것은 그들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들은 이미 수차례의 탈락자 결정에서 살아남으면서 가창력에 있어서는 검증될 만큼 검증됐고, 이제 누가 '최고가 될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더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느냐에 대한 검증만이 남아있었다. 허각이 그렇게 최후에 살아남은 것은 '승자'로 모든 이들의 위에 선 것이 아니라 대중들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시청자들은 '승자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었다. 독특한 목소리와 스타일을 지닌 장재인이나 훌륭한 가창력과 캐릭터를 지닌 김지수가 탈락할 때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전의 컴페티션 프로그램들과 달리 탈락한 이들이 그저 잊혀져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최후의 11인에만 관심이 집중된 것이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가창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비웃음을 샀던 출전자가 어느새 발전한 모습을 보이며 다시 등장해 시청자들을 괄목하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는 승자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탈락자들은 패자가 아니라 다른 기회를 잡은 것뿐이다. <슈퍼스타 K> 시리즈는 그런 정서로 시청자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컴페티션 프로그램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은 평가자의 존재다. 이미 유명인사들인 심사위원들은 즉석에서 출전자들에 대한 평가를 한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그들의 현란한 언변이나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평가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시청자들이 그 출전자를 바라보며 직접 느낀 부분을 심사위원이 일깨워 줄 때 그들은 '공감'의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심사위원의 자질 문제가 간혹 제기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들의 '실력'보다는 얼마나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지녔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대중들은 자신과 공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확인도 원한다. 그래서 유료 ARS는 언제나 대만원을 이룬다.
공감을 통해 시청자들이 얻어낸 것은 '연대감'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출전자와 공감하고 연대감을 얻으며 그들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것에 함께 기뻐하고 탈락하는 것에 함께 슬퍼한다는 것이 바로 감동의 본질이었다. 그 연대감은 단순히 시청자와 출전자 간의 것을 넘어 시청자들 모두의 연대감으로 발전한다. 시청자들의 투표가 지니는 의미는 단순한 '응원'이나 '호감의 표출'의 차원을 넘어서 시청자 자신도 이 거대한 드라마에 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과 공감을 이루는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 역시 이런 컴페티션 프로그램의 중요한 덕목이다. 


슈퍼스타K2 출연자들

'정의'로운 승부
이제 대중들은 '경쟁 그 자체가 감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표는 정해져 있고 한정된 사람만이 그것을 차지할 수 있다. 이런 오디션 경쟁 프로그램의 특징은 '누군가를 밟고 이겨 올라가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것은 잔혹하다. 단지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승부한다. 그렇게 정당하게 자신의 실력을 비교 평가받아 한 계단 한 계단 에스컬레이팅하는 것이 그렇게도 큰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 대중들은 '나'와 '134만 6,401명'이 펼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마도 끔찍한 경쟁을 강요당하는 현실 속의 자신을 봤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오직 '재능'과 '노력을 승리의 요건으로 삼는 데에서 위안을 얻고 공감하며, 무한경쟁의 정글 속에서도 동등한 조건 아래 성실성을 갖춘 사람이 성공해야 한다는 '정의(Justice)'에 대한 열망을 문자 투표로, 열성적인 시청으로 표출했다.
환풍기를 수리하며 노래를 부르던 청년이 꿈을 이루는 서사... 처음에는 '재미있는 아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보기 시작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의 경쟁이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알려준 것 이상의 무언가가 전해온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꿈을 성취한 누군가가 더 큰 지향점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감동의 순간이 아닐까.

조원희
영화감독 |  owenjoe@gmail.com 

1994년부터 크고 작은 지면을 통해 대중문화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왔고, 2010년 영화 <죽이고 싶은>을 감독하면서 영화감독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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