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04 : 선전은 사라지지 않는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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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관 |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교수 / byungkwanlee@kw.ac.kr
서울대 심리학과, 동대학원 심리학 석사,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광고학 석사 및 박사. 현 광운대 산업심리학과 소비자광고심리 전공 교수로 재직중. 한국 소비자광고심리학회 학술위원장, 광고학회 등의 이사로 활동중.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는 최초로 PR 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사무실을 열어 PR을 전문 직업으로 자리 잡게 한 인물로, 선전을 변호하고 선전이 대중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하는 등 홍보를 널리 알리는 데 일생을 바쳤다. 그러면서 대통령부터 기업·단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뢰인들의 이미지나 판매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가 1928년에 저술한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선전과 홍보에 관한 고전으로 꼽힌다.
사회심리학의 집단심리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선전과 홍보에 적용하기도 한 그는 이 책을 통해 홍보를 ‘과학’과 ‘산업’으로 인식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생각이나 제품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할 경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 메커니즘을 어떻게 조작해야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지 밝히고, 둘째, ‘선전’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를 불식시키고 그 본래의 개념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아이보리 비누를 재료로 한 조각 경연대회
버네이스는 조직이나 기업이 아이디어와 제품을 성공시키려면 자본·이윤·서비스의 질보다 대중의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PR 전문가의 첫 번째 임무는 제품과 소비자를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다. 소비자를 이해하려면 소비자 숨은 동기를 파악해야 하며, 대중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연구와 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중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집단 동조, 권위에의 복종, 경쟁의식 등 사회심리학에서 발견한 중요한 현상들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적 동기가 제품구매의 동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반영하듯 버네이스는 아이디어를 확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회적인 집단형성 (Group Formation)을 활용하라고 제안한다.
그 예를 보자. 버네이스는 아이보리 비누가 조각 재료로 탁월하다는 유명 조각가의 말을 근거로 삼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아이보리 조각 비누 경연대회를 개최했는데, 이 경연대회가 미국 전역에서 인기 있는 행사로 자리 잡으면서 제품 판매는 물론 주부와 아이들의 호감도 급증했다. 이 행사의 성공의 저변에는 소비자의 심미 동기, 경쟁 동기, 군집 동기, 과시 동기, 모성 동기가 있었다.
버네이스는 그 당시 피아노 제품의 광고전략이 가격과 품질을 강조해 구매를 유도하는 하드 셀링(직접 반응) 광고였음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의 귀소 본능에 호소하도록 가정 음악실의 개념을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소비자에게 영향을 줄만한 유명 피아니스트·예술가·사회지도층을 특별행사와 기념식에 초대하고 이를 언론 매체를 통해 알림으로써 소비자의 동기와 집단심리를 효과적으로 자극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전략들은 매우 진부하다. 그러나 집단 동조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가 1930년대 사회심리학자 쉐리프(Sherif)에 의해 처음 수행되었고, 권위에의 복종 현상이 1963년 밀그램(Milgram)에 의해 실증적으로 밝혀진 사실에서 볼 때 집단심리를 홍보전략에 적용한 그의 뛰어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소비자의 동기와 가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은 고객의 가치와 경험을 강조하는 최근의 마케팅 트렌드와 일맥상통한다.
버네이스는 또한 인간의 의사소통 수단은 모두 홍보수단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양한 홍보 도구의 상대적 가치와 그러한 도구가 대중과 맺는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필요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선전 전문가는 이러한 가치의 변화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윤리적 가치와 진실에 근거하라
버네이스는 무엇보다도 홍보 전문가의 엄격한 윤리규범을 마련하는 데 헌신했다. 물론 그 자신도 홍보 의뢰인의 요구사항이 ‘진실’이라는 전제하에 업무를 수행했다. 실제로 그는 베이컨 광고주의 의뢰에 대해 의사들로 하여금 베이컨의 영양성분을 입증하도록 하는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만약 의뢰인의 진실성이 허구로 드러나게 될 경우 반대의 입장, 즉 진실의 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1928년, 여성용 담배인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의 홍보를 통해 여권신장의 이미지를 강조함으로써 여성 흡연율을 몇 배로 늘리면서 담배시장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흡연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담배회사의 홍보 대행 업무를 중단하고 미국PR협회를 상대로 흡연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로비를 벌이기도 했다.
버네이스의 말처럼 기업의 PR활동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대와 고객을 막론하고 홍보는 윤리적인 가치와 진실에 근거해야 한다.
<프로파간다>를 통해 선전의 부정적인 의미를 개선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이 과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성공 여부를 떠나서 적어도 그는 홍보와 선전이 대중과 사회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정보 조작의 아버지, 과대선전의 왕자, 선전의 교황, 민주주의의 암살자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와 홍보산업의 위상과 발전에 끼친 그의 영향력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국가·단체·기업의 홍보가 그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는 시대에 “선전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선전은… 필요한 도구라는 걸 직시한다”고 한 버네이스의 말을 되새겨 봄직하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