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4 : 광고나라 산책 - 영화가 있는 광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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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나라 산책 _ ② 영화가 있는 광고
  광고나라에는
할리우드 키드가 산다
 
이희복 |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boccaccio@hanmail.net

30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영상 콘텐츠가 많지 않아 학교에서 단체관람이 아니면 일 년에 몇 번 영화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거의가 교육적 목적(?)을 위한 반공영화 관람 일색이었다. 그나마 텔레비전 안테나 맞춰가며 주말의 명화나 600만 불의 사나이·소머즈·원더우먼·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외화 시리즈, 그러니까 지금으로 말하면 미드(미국 드라마)가 TV극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었다. 요즘처럼 자본과 기술, 인재들이 영화판에 등장하지 않은 때였으니 방화는 당연히 찬밥 신세였다. 필름이 낡아 스크린에 비가 내려도, 손님들 더 찰 때까지 휴식시간이 계속되어도 영화관에서의 시간은 몹시도 빨리 지나갔다.
40대 전후 세대라면 누구에게나 이 같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한국전쟁 이후 정신적인 공허와 경제적인 빈곤의 대안을 영화에서 찾았던 청소년들을 그린 안정효의 자전적 소설)’ 한 순간쯤은 있었을 것이다. 무작정 영화가 좋았던 할키(할리우드 키드)는 초보 영화 마니아가 아니었을까? 아련했던 영화관의 추억은 좌석과 스크린 각도까지 지정하는 인터넷 예매와 여러 편의 영화를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멀티플렉스의 풍요 속에 묻혀 버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같은 광고, 광고 같은 영화
광고 이야기를 꺼내려다 괜히 할리우드키드까지 들먹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영화와 광고가 매우 닮았다는 사실이다. 기획과 제작, 그리고 시사와 평가 등 전체적인 흐름이 그러하고, 결과에 따라 대박을 터뜨리거나 쪽박을 차게 된다는 것 역시 똑같다. 시사가 매우 중요하며, 자본이 있어야만 제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다르다면, 한 쪽은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상영된다면, 다른 한 쪽은 미디어라는 시간과 공간에 실리게 된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흔히 씨에프(CF)라고 부르는 영상광고는 커머셜 필름(Commercial Film)을 줄인 말이다. 한동안 일본식 영어라며 커머셜이나 커머셜 메시지(CM)로 부르도록 권장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씨에프를 더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필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광고는 영화와 흡사하다. 또한 광고는 영화 제작 메커니즘과 다름이 없다. 35mm 영화필름이 동일하게 사용되며, 조명과 녹음·세트·로케이션·메이크업·코디 등 촬영과 후반 작업, 편집과 CG나 FX 등 애프터 이펙트는 다를 바 없다. 스토리보드나 콘티라는 용어도 그렇다. 다만 러닝타임에 있어서 100분과 15초의 시간 차이가 있다.
광고는 영화를 동경하고 영화를 모방한다. 예술 분야에서도 순수는 응용을 동경하고 응용은 순수를 동경하듯, 서로가 서로를 흉내 내고 따라한다. 광고 역시 영화를 좋아하고 모방하며 차용한다. 물론, 광고와 광고인이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왓 애드맨 원츠?
광고인이라면 누구나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이 있었으면 할 것이다. 물론, 광고주의 마음을 읽는 데 더 요긴하겠지만. 영화 <왓 위민 원츠>에서 멜 깁슨은 잘 나가는 광고회사 AE, 닉으로 등장한다. 명성과 돈, 어느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승진의 문턱에서 경쟁사 여자 직원 달시에게 빼앗겨 버린다. 역전을 노린 닉은 여자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이 ‘여자 되기’를 결심한다. 팩을 하고, 립스틱을 바르고, 스타킹도 신어본 닉, 드디어 여자들이 원하는 컨셉트의 광고를 기획할 자신을 얻는데, 그 순간 욕실 바닥에 넘어져 여성들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얻는다. 우여곡절 끝에 진정한 한 여성의 사랑, ‘왓 위민 원츠’를 얻게 된다. 비록 영화라는 상상의 세계였지만 광고인들이 원하는 소비자 통찰력(Consumer Insight), 즉 ‘광고의 시크릿’을 우회하여 설명한 것이다.

영화를 패러디한 광고
영화와 광고를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도 영화를 패러디한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본격적으로

광고의 장르론을 다룬 <방송광고장르론(이현우 외, 2007,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윤태일(3장)은 예술 텍스트로서 방송광고를 예술·문학·드라마(연극·영화·방송극), 음악·미술·춤으로 분류하여 영화를 드라마 장르로 보았다. 반면 이희복(14장)은 패러디광고를 소개하면서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 영화를 패러디한 광고, 명화(名畵)를 패러디한 광고, 사건을 패러디한 광고, 문학을 패러디한 광고로 나누었는데, 영상에서 대선배 격인 영화를 패러디한 광고가 영화를 모방하고 답습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영화를 주된 모티브로 하는 영화 패러디 광고의 경우 패러디 대상이 되는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연출하여 맥락을 살리되, 거기에 광고하고자 하는 제품을 적절하게 포함시키는 초맥락화(Trans-Contextulization) 효과를
거두고 있다.
가령, 하이마트의 ‘해리포터’편은 영화를 관람한 소비자들에게 크리에이티브와 주목성, 그리고 재미적인 요소를 제공하고 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배경으로 해리포터로 분장한 정준호와 헤르미온느로 분장한 현영이 학생들 앞에서 마법으로 다양한 디지털 가전을 만들었다. 일반인에게 낯익은 영화 <해리포터>를 낯설게 패러디한 것이 쉽게 다가왔고, 이문세의 노래 <깊은 밤을 날아서>를 개사한 멜로디가 따라 부르기도 쉽고 익숙해서인 듯하다.
현대카드 M의 사례는 영화를 통째로 가져온 경우다. 물론, 이전에 영화 <빠삐용>의 영상을 가져다 자막과 녹음을 다시 하여 광고로 활용한 부광약품 로취큐의 경우가 있었지만, 현대카드 M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패러디한 첫 번째 시도에 속한다. 시선을 압도하고 제작비와 모델료를 절감한다는 차원에서도 기획력이 돋보였다. 관람객 300만을 돌파한 작품을 대상으로 선별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와 <올드보이>의 대사와 카피를 일치시키는 고된 작업을 거쳐야 했다. 광고기획과 제작을 맡은 광고인들이 광고와 영화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인지도를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얻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영화를 패러디한 광고는 많은 관객들이 관람한 흥행 성공작을 대상으로 주요 장면을 패러디하게 되는데, 대부분 원작과 관련된 요소를 풍부한 감성과 이미지로 전달하는 형식이다. 광고는 영화와 달리 짧은 시간에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므로 가장 경제적인 패러디가 시도되어야 하며 자연스럽고 관련성이 있는 패러디로 구성되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한카드 광고는 영화의 한 장면을 재연출함으로써 영화 패러디의 초맥락효과를 기대했는데, 결과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아시아 일등카드로 당당한 새 출발을 알리기 위해 네티즌에게 호기심을 유도했으나, 광고 안의 카피처럼 ‘받고 또 받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이듯 광고 안에 너무 많은 메시지가 혼재되어 있었던 게 요인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 검색 중에 가끔 발견하는 해외 인쇄광고의 크리에이티브에 놀라곤 하는데, 떠먹는 발효유 Fit의 경우에는 영화의 인지도를 광고의 호감도로 바꾸어 놓은 사례다. 여배우 샤론 스톤과 마릴린 먼로를 ‘Fit(날씬)’이 아닌 ‘Fat(풍만)’으로 바꿔놓은 광고적 상상력에 영화가 두 손 들게 생겼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SI조차 우리나라 광고에서는 CIS로 변신한다. 이름 하여 ‘참(C)이슬(I)수사대(S)’의 이니셜 ‘CIS’다. 한 번 웃고 넘어가는 사이에 광고는 우리 두뇌 속으로 쉽고 빠르게 들어가게 된다. 공중파 TV광고에서는 볼 수 없지만 지하철과 극장 등에 노출되었는데, 방송광고 금지의 한계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돌파했다.

영화에 대한 존경, 오마주 광고

‘상처 주지 마! 상처 주지 마!’ ‘괜찮아, 이젠 상처받지 않을 테니까!’
여인의 절규와 모노톤의 흑백영상이 인상적이었던 엘라스틴 광고는 앞에 열거한 영화 패러디광고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풍자나 조롱 이외에 경의를 바탕으로 한 패러디가 있는데, 이것을 영화에서는 오마주(Hommage)라고 부른다. 엘라스틴의 경우는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제작자가 굳이 밝히지 않지만 단순한 패러디로 보기에는 광고의 구성이 너무 원작의 그것과 닮았다. 각 컷과 장면, 그리고 카메라의 앵글 등이 철저히 계산되었는데, 광고를 만든 감독의 입장에서는 적어도 히치콕 따라 하기가 단순한 재구성이 아닌, ‘잠재적인 경의(린다 허천, 1992)’가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장면 만들기를 위한 접근 자체 또한 소비자가 느끼는 유사성의 정도를 원본에 가깝게 표현하였다는 점도 패러디 안에서 오마주 구분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물론, 영화처럼 본격적인 오마주를 도입하기에 오늘날 광고를 만드는 제작자들의 입지는 매우 좁다. 그럼에도 감독의 이름을 걸고 제작하는 일정한 ‘방송광고의 작가주의’가 본격화된다면 패러디광고 안의 오마주 표현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이 밖에도 최근에는 ‘애드무비(Ad Movie)’로 불리는 광고영화가 시도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웰컴투동막골>의 박광현 감독이 기아자동차의 로체광고를 영화 형식으로 연출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제작비와 출연진, 해외 로케이션, 극장 시사회 등 일반 영화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기획과 제작을 거치게 되는데, 다만 영상미만으로 광고효과를 담보할 수 없다는 숙제가 남는다. 따라서 기존 BMW의 ‘무버셜(Movercial, Movie + Commercial)’ 사례처럼 광고시간뿐만 아니라 온라인이나 별도의 공간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브랜드 엔터테인먼트(Branded Entertainment)’ 콘텐츠로 발전해 나가야할 것이다.

닮은 듯 다른 느낌, 다른 듯 닮은 느낌. ‘광고나라에 사는 할리우드키드’. 광고인들이 바로 15초의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할리우드키드다. 그러니 더 많은 영상에 노출시켜 스스로를 감광(感光)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 순수를 동경하며 자유로운 예술혼처럼 실험적인 영상도 꿈꿔봐야 한다. 가끔은 영화관으로의 탈출도 감행해야 한다. 극장이야말로 꿈으로 가득찬 광장이고, 사랑이 거래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영화야말로 광고가 추구하는 컨셉트, 사람과 사랑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How to say)를 고민하는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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