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조지 오웰의 명작, ‘동물농장’의 마지막 글귀입니다. 그는 권력욕에 취하고 부패하는 사람들을 담기 위해 동물을 등장시켰습니다. 동물들에 권력을 탐하는 시대상을 투영하여 명작을 남겼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 등장하는 것보다 더 큰 임팩트가 있습니다.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것엔 임팩트가 없습니다. 그래서 비유를 쓰고 은유로 표현합니다. 살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는 팍팍한 일상을 비유한 오징어 게임, 누구나 영웅도 될 수 있고 괴물도 될 수 있다는 말을 담기 위해 초능력자를 등장시킨 무빙. 많은 콘텐츠들이 주제를 임팩트 있게 전하기 위해 ‘돌려’ 말합니다. 마케팅에도 같은 법칙이 존재합니다. 임팩트를 위해선 ‘단독직입’이 아니라 예측 못한 혹은 흥미로운 전개가 필요하죠.그래서 유머부터 비유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겁니다.
브랜드의 유머 감각
전자제품 매장에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집어 들었는데, 그 안엔 카프리썬이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라면 어디서 팔아야 효과적일까요? 과즙 음료 브랜드, 카프리썬. 그들은 개학 시즌을 맞아 바쁜 부모들을 위해 재미있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평균 카프리썬을 마시는 데 드는 시간은 50초. 그 50초 동안 시끄럽던 아이들은 조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부모들에겐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죠. 카프리썬은 그 시간을 재미있게 해석했습니다. 바로, ‘키즈 노이즈 캔슬링’으로.
첨단 헤드폰의 기능 중 하나인, 주변 소음을 확실히 차단해 주는 노이즈 캔슬링. 카프리썬도 50초 동안 아이들이 내는 소음을 차단해 부모들에게 ‘짧지만 소중한 평화’를 줄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게다가 그 기능에 맞게 판매 채널도 맞췄습니다. 포장도 헤드폰처럼 단단한 박스에 두 개의 파우치를 넣은 후, 전자제품 코너에 진열한 거죠. 부모들은 판매사원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엄청난 제품을 기대하지만, 박스를 열면 들어있는 건 두 개의 카프리썬입니다. 부모들은 수긍하면서도 황당하다는 표정입니다. 허무하지 않게 집안의 힘든 일들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 브랜드인 TaskRabbit과 협업해 할인 쿠폰도 함께 제공합니다.
맛과 무설탕 등 제품의 특징을 강조하는 대신,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는 부모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으로 소구 하는 카프리썬의 유머. 유연하게 브랜드 매력을 올렸습니다.
1년 전, 핫도그를 새롭게 이용하는 사람의 영상이 화제가 됐습니다. NewYorkNico의 계정에 올라온 영상. 야구를 즐기던 남자가 핫도그 포장에서 소시지를 꺼냅니다. 그리고 빨대로 소시지 한가운데 구멍을 내죠. 그리고 맥주를 소시지 빨대로 빨아먹습니다.이 영상은 한 편에선 메스껍다는 반응, 한 편에선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어쨌든 많은 곳에 바이럴이 됐죠.
핫도그 브랜드 Oscar Mayer는 그때의 화제를 잊지 않았습니다. 1년 후, 똑같은 모양의 핫도그 빨대를 출시했습니다.
더 이상 그때의 남자처럼 스스로 소시지에 구멍을 내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죠. 단, 이 빨대는 인체에 무해한 실리콘으로 만든 영구 사용 가능한 빨대로 먹을 수는 없습니다. Oscar Mayer는 화제가 됐던 영상을 리메이킹 하여 역시 NewYorkNico 계정에 올렸습니다. 이번엔 점퍼에서 자연스럽게 Oscar Mayer 소시지 빨대를 꺼내 그대로 맥주에 꽂아 마시는 장면이죠. 1년 전 영상의 앵글과 모델의 옷, 포즈까지 모두 같아, 브랜드가 이 영상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재고 소진 시까지 프리 오더로 판매됩니다.
유머 감각은 임팩트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브랜드의 철학을 가장 유연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자 마케팅 무기가 되죠. 브랜드에게도 유머 감각은 필수입니다.
몰입감을 높여주는 ‘돌려 말하기’
어느 날, 로스앤젤레스엔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 광고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사가 한창인 곳, 그곳 벽엔 새로운 고급 주택 광고가 등장했습니다. 이름하여, ‘사일로 레지던스.’ 지하 144층으로, 한번 들어가면 당신은 다시는 지상으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Live Life Deeper'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이 메시지는 ‘더 깊이 있게 살라’는 메시지도 될 수 있고 그야말로 ‘더 깊은 곳에서 살라’는 메시지도 됩니다. 결국 지하 깊이 사는 것이 더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중의적인 표현이죠.
공사가 한창인 곳에 광고가 붙으니, 마치 실제 지하 144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광고에 붙어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https://siloresidences.com/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사이트에선 아파트를 자세히 소개합니다. 그곳에서 즐길 수 있는 다이닝과 쇼핑, 공동 공간 등을 보여줍니다. 유기농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농산물, 그들끼리의 커뮤니티,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채 더 깊은 평화를 즐길 수 있는 곳. 다소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무드를 풍기지만, 새로운 럭셔리임을 소구 합니다. 고급 주택을 포스팅하는 ‘luxury_listings'계정에도 등장했습니다. 지하 세계에 사는 첫 번째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의미 부여합니다.
재미있는 건 이 모든 게 애플 티비의 시리즈물인 ‘Silo'의 홍보라는 거죠. 지구가 오염돼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지하에 주거지를 짓고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시리즈. 애플 티비는 이 콘텐츠에 호기심을 더하기 위해 실제 부동산 광고인 것처럼 모든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새로운 주거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데 초점을 맞춰, 마케팅도 새로운 아파트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접근한 애플티비. 콘텐츠의 배경을 잘 살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KFC는 코로나19가 한창인 때 뭇매를 맞은 적 있습니다. 위생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 손으로 치킨을 먹는 모습을 콘텐츠에 담아 내보냈다가 심한 비판을 받았죠. 그래서 'it’s Finger Lickin’ Good' 슬로건에서 Finger Lickin'을 지운 바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지금, 그에 복수하듯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모든 식기들에게 사과하는 영상. 마치 Ikea의 Lamp 편에 등장한 램프처럼 모든 식기들은 슬퍼 보입니다. 선택되지 못한 존재의 슬픔. 그런 식기들에게 행복하게 손을 핥으며 치킨을 먹는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이 비치죠. 다시 마음껏 손으로 먹을 수 있게 된 시대를 식기의 입장에서 비틀어서 표현했습니다. 손으로 핥아먹는 즐거움 또한 고마운 우리의 일상이었음을 느끼게 하죠.
이야기 속에 녹아든 브랜드
캐나다의 할인 쇼핑몰, BJ's wholesale Club. 그들은 무슨 얘기를 하든 먼저 등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먼저 웃기거나 몰입을 하게 만든 다음, 슬쩍 브랜드 이야기를 꺼내죠. 그래서 때론 공감을 하게 하고, 때론 웃음을 유발합니다.
시리즈로 만들어진 콘텐츠. 첫 번째는 파티용품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가게에 들어선 남자, 그는 가스가 새고 있음을 감지하고 주인에게 알립니다. 하지만 무기력해 보이는 주인은 난데없이 가스비가 많이 오르고 있다며 얘기를 꺼내죠. 이미 새고 있는 헬륨 가스를 마셔 목소리는 변조됐습니다. 그 목소리로 서로 가스비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허무한 웃음을 주고받죠. 그리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가스비가 싼 BJ's wholesale club으로 옮겼다고.
두 번째는 심령술사에게 찾아간 할머니가 등장합니다.
할머니는 심령술사를 통해, 25년 동안의 와이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며 남편의 영혼을 불러냅니다. 그러자 심령술사에게 빙의된 남편은 갑자기 말하죠. BJ's club에선 식료품을 25%나 싸게 살 수 있다고. 할머니가 다시 묻자 이마를 치며 아주 가벼운 태도로 응수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지금 그런 태도 때문에 당신의 수프에 독을 탔다며 화를 냅니다.
세 번째는 병원에 누워 있는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의사가 들어서자 굿 뉴스냐, 배드 뉴스냐 묻죠. 창밖을 본 의사는 BJ광고를 발견하고 놀라며, 그레잇 뉴스라고 말합니다. BJ's Wholesale club에선 식료품을 25% 싸게 살 수 있다고. 그러자 병석에 누워 있는 남자도 호응합니다. 식료품 물가가 우리를 죽이고 있다고. 의사는 답합니다. 당신을 죽이고 있는 게 식료품 물가만은 아니라고.
25% 할인가로 팔고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브랜드. 그들은 그들의 할인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슬쩍’ 등장시킵니다. 그 점이 오히려 유머를 유발하죠. 브랜드의 장점을 흘려 말하지만 광고는 흘러가지 않고 기억될 것 같습니다.
효과적으로 말하는 법
이케아는 옥외광고에 어떤 카피도 넣지 않았습니다.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등장한 거대한 이케아 쇼핑백, 일명 Frakta. 엄청난 규모의 백엔 어떤 글도 쓰여 있지 않고 늘어진 쇼핑백 스트랩에만 Ikea라고 적혀 있죠. 미국에서도 이케아 백은 여행 중입니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등장한 거대한 이케아 백. tag에 달린 QR코드에 접속하면 AR쇼핑을 즐길 수도 있고 할인쿠폰도 받을 수 있습니다.
브랜드의 자신감입니다. 브랜드가 소구 하는 장점을 일일이 열거하기보다는 누구나 아는 이케아의 쇼핑백을 보여줌으로써 브랜드를 리마인드 하는 스마트함. 게다가 누구도 지나칠 수 없는 거대한 사이즈의 백은 오히려 브랜드를 신선하게 만듭니다. 많은 것을 생략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요점만 분명히 말할 수도 있고, 은유와 유머를 적절히 섞어 듣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좀 더 편안하게 대화할 수도 있죠. 마케팅 상황이나 브랜드가 처한 위치에 따라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야겠죠. 어쨌든 이렇게 브랜드를 100% 채우지 않아도,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매력을 발견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 브랜드를 내려놓고 유연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신숙자 CD의 해외 크리에이티브 2023.09
'애드이야기 > 신숙자 CD의 해외 크리에이티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나요? (0) | 2023.11.02 |
---|---|
누구를 응원하나요 (0) | 2023.10.18 |
잊지 못할 경험이 되다 (0) | 2023.08.10 |
크리에이티브한 영향력 (0) | 2023.07.05 |
큰 변화의 시작은 늘 작습니다 (0) | 2023.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