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콘텐츠가 전부라고 생각한다. 콘텐츠가 전달만 된다면, 어떤 형식을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콘텐츠는 우리가 당장 인식하는 것이고, 공감하는 것이고, 따를 수 있는 실체적인 요소다. 그러나 때로 형식이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비유해 보자면 몸과 생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런 관계들이다.
보통은 콘텐츠가 형식까지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의 관계도 있다는 것. 마음가짐이 몸의 상태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평온하다든지, 소프트웨어가 노트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또 하드웨어의 한계가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다.
매체를 다루는 일을 하면서 종종 느끼게 되는 점도 이와 비슷하다. 광고물, 즉 메시지는 항상 광고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져 많은 고민과 함께 아주 신중하게 다뤄지지만, 매체는 무조건 저렴하고, 효율적이고, 남보다 하나라도 더 노출되는 데에 집중한다. 여기서 간과되는 건 매체도 때로 메시지를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매체 업무로서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참 어렵다. 매체라는 것은 메시지와는 반대로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몇 명이 봤다”의 개념처럼 수치로 해석하고 풀어내기도 어렵고, “제 느낌이 그래요”는 한심한 설득처럼 보일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명품 브랜드의 시즌 런웨이의 무대는 이렇게 매체가 갖는 메시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루이비통은 한강 잠수교를, 구찌는 경복궁을 선택해 그들의 2023년에 바라보는 패션 트렌드라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했다. 야외는 보통 런웨이의 장소로 선택되기 어려운 곳이다. 날씨의 영향부터, 조명의 세팅, 준비 공간의 부재, 기자들의 편의성 등등 야외는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많고, 특히 잘 보여야 하는 패션 상품은 이런 변수들로 인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가 왜곡되기 쉽다.
또 준비를 위해 소요되는 비용이 예상보다 꽤 커지기도 하고, 아무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하냐는 실무자의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해본다. 굳이 뭔가를 이런 곳에서 보여준다는 결정은 그 장소적인 독특함 때문에 곧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효과가 크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SNS마다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얘기, 근처를 지나다가 이 이벤트를 봤다는 피드가 꽤나 많이 올라왔다. 이들이 다시 기사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누구나 이런 곳에서 이런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으로써 그 자체만으로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브랜드는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무리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다시 한번 자기를 올려 세우도록 만든다. 바로 이런 것이 매체를 통한 메시지, 브랜딩의 대표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보통 ‘미디어 크리에이티브’라고 한다. 많은 매체 제안 요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단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위에 명품 브랜드의 런웨이 사례처럼, 매체만으로의 메시지 전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창의적인 매체 아이디어를 뜻한다고 개인적으로는 판단한다. 물론 부가적인 이슈성은 덤이다.
하지만 보통 매체 제안을 요청하는 주체는 이슈성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많다. 남들이 안 해본 것까지는 동일하다. 단, 남들이 하지 않았지만, 노출됐을 때 효과가 좋아야 하고, 심지어 비용 대비 노출 효율성도 좋은, 자신이 아직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 달라는 개념에 가깝다. 생각해 보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렇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인데, 심지어 자신이 모를 정도로 숨어 있는 매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를 반문하게 된다. 심지어는 여기에 이런 조건이 덧붙여지면 뜨악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 한 번은 성공했던 케이스는 필수로 넣어주세요.”
광고 대행사에서의 제안서는 보통 ‘정성적’ 논리를 메시지나 전략에서, ‘정량적’ 논리는 매체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매체는 정량적이라는 특징을 기반으로, 짧은 시간에 당장 누군가를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를 선택하게 된다. 바로 수치화된 증거들이다. 이런 정략적 증거들이 향하는 논리의 종착점은 앞서 얘기했던 대로 “무조건 저렴하고, 효율적이고, 남보다 하나라도 더 노출되는 데”에 있다. 최근 매체의 화두인 페르소나, 퍼포먼스와 같은 단어는 더 적은 금액에도 규모를 크게 보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반영한 것일 뿐, 시스템적으로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손쉬운 마케팅은 아니다. 어떻게 해보지도 않고, 우리에게 적합한 타깃을 정의하고, 그 타겟에게만 효과적인 마케팅을 하겠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경험치로 보자면, 잘게 쪼개진 타겟 분류는 매체의 본질을 가리는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구매 전환이 용이할 것으로 정의된 타겟 10만 명에게 5%의 전환율은 5천 명의 전환을 의미한다. 국내 인구를 대상으로 별도의 타겟팅 없는 5000만 명에게 0.1%의 전환율은 5만 명의 전환이 된다. 타겟팅이 적용되고 아님에 따라 전환율 차이는 5%와 0.5%의 10배라고 하지만, 실제 전환 수에서는 1/10밖에 되지 않는 상황들을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된다. 심지어 구매 전환이 용이할 것으로 예상됐던 타겟팅의 전환율이 타겟팅이 없던 그룹과 비슷한 경우도 실제로는 꽤나 발생한다.
이런 전환율 이외에도 광고 지표들은 마케팅 단계와 목표마다 다양하게 설정되고, 지표들의 복잡함은 일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향으로 흐른다. 긍정적인 성과 보고를 위해 복잡하고 다양한 지표들 중 일부를 유리한 방향으로 취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광고 지표는 마케팅의 중간 단계로서 우리가 봐야 할 이정표들일뿐이다. 이정표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음을 중간중간 확인하면서 움직이고, 관리되어야 하는 속성에 가깝다. 어느새 복잡함은 매체에서 하나의 미덕이 되어가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더 이상 매체가 아니다.
매체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매체는 광고 프로세스 마지막 단계, 효율, 보너스와 같은 혜택의 총아로서만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숨 쉬면서 사람들이 이 매체에서 무엇을 하며, 그 안에서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얘기하는지 충분히 관찰하고, 이런 것들을 통해 적절한 메시지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남들과 차별적으로 메시지는 더 빛날 수 있다. 매체는 그런 본질을 가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아닌, 오늘의 매체는 그런 점이 아쉽다.
박두현 님.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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