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한 살 더 나이를 먹었고 경력 연차가 1년 더 쌓였습니다. 어떤 이는 직급이 올라가거나, 새로운 직책을 맡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회사라는 곳에서 1년은 개개인에게 크고 작은 변화를 의미하는 시간의 단위로 사용됩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새겨지는 변화는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매년 축적됩니다. 한 사람의 직장인으로서 혹은 광고인으로서 존재감은 이 축적의 결과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해 이뤄낸 소기의 성과들로 인해 보람을 느끼며, 이전보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직(職)의 관점으로 보든 업(業)의 관점으로 보든 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지금 나의 일에 그다지 큰 보람을 느끼지 못하거나,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의 루틴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 더 흔한 것은 후자입니다. 나름의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스스로 그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아직 그 결과물이 뚜렷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과 근심이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나는 지금까지 광고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무엇을 성취했는가?”란 질문에 명쾌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은 비단 우리와 같은 범인(凡人)들만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한 분야의 일가를 이뤄낸 대가들 역시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인 동시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사람은 단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2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한 사람, 바로 독일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의 이야기입니다.
천재 작곡가 앞에 나타난 장벽, 교향곡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는 1833년, 우리에겐 손흥민 선수가 분데스리가에 데뷔한 고장으로 더 친숙한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악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다른 위대한 작곡가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신동의 재질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런 브람스 음악 인생에 전기(轉機)가 된 것은 스승 로베르토 슈만(Roberto Schumann)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브람스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슈만은 작곡가로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당시 유럽 최대의 음악 잡지의 편집인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그의 말 한마디, 글 한 줄이 음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이런 슈만(그리고 그의 부인 클라라까지)이 브람스라는 젊은 청년의 재능에 완전히 매료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브람스는 약관의 나이에 스승의 든든한 뒷배를 바탕으로 전도유망한 청년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이 시기 브람스는 <세레나데>를 비롯한 실내악곡과 웅장한 규모의 협주곡인 <피아노협주곡 1번 d단조> 등을 발표하면서 30세가 되기도 전에 음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브람스는 스승을 잘 만난 덕에 어렵지 않게 명성을 얻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브람스에겐 채우지 못한 갈증이 늘 존재했습니다. 바로 하이든이 만들고, 모차르트가 풍성함을 더했으며 마침내 베토벤에 의해 완성된 관현악 장르의 최고봉, 교향곡(交響曲, symphony) 앞에선 늘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실내악곡과 가곡, 협주곡과 합창곡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젊은 나이에 이미 스타 작곡가 반열에 오른 브람스입니다. 하지만 유독 교향곡에선 여전히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했습니다. 도대체 교향곡이 무엇이길래 이 젊은 대가에게 시련을 안겨준 것일까요?
▲예전에 없던 웅장한 스케일로 인해 ‘피아노가 딸린 교향곡’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는 브람스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KBS교향악단 협연
교향곡은 기악곡 장르 중 연주의 스케일이 가장 장대하고 화려한 다 악장으로 구성된 음악을 의미합니다. 현악, 목관, 금관, 타악기 ─ 그리고 때로는 사람까지도 ─ 등 수많은 악기가 동원되고, 따라서 복잡한 작곡수법이 동원됩니다. 우리에게 가장 흔히 알려진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5번)’, ‘합창 교향곡(9번)’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교향곡을 관현악의 집대성이라고 부릅니다. 교향곡 장르를 본격적으로 확립한 것은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제프 하이든(Joseph Haydn)입니다.
그는 무려 106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놀람 교향곡(Symphony No. 94 in D major, “The Surprise)’을 비롯해 수많은 명곡을 남겼으며, 이때 4악장 구성을 비롯한 교향곡의 형식적 틀이 완성되었습니다.
교향곡을 기악 장르의 정상에 올려놓은 것은 베토벤입니다. 베토벤의 초기 두 작품(1, 2번 교향곡)까지는 스승이었던 하이든과 선배 모차르트의 색깔이 상당히 엿보이지만, 세 번째 작품인 ‘영웅 교향곡(Symphony No. 3 in E-flat major, “Eroica”)’은 이전에 없던 압도적인 음악적 서사와 스타일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후 마지막 9번 교향곡인 ‘합창(Symphony No. 9 in D minor, “Choral”)’에 이르기까지 베토벤은 전 인류적 유산이라 할만한 걸작 교향곡을 쏟아냈습니다.
이후, 교향곡은 당시에 활동한 작곡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올라야 할 험준한 산맥이자, 반드시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토벤 이후 작곡가 중 그 누구도 베토벤이란 거목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거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당대의 라이징 스타로 주목 받던 브람스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브람스에게 교향곡은 아무리 잘해도 베토벤의 아류(亞流)에 불과하거나,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세상에 발표될 필요조차 없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도전 과제였습니다. 그렇다고 교향곡 작곡을 외면할 수도 없는 상황. 더구나 브람스는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으로 이어지는 19세기 독일 고전주의 악파(樂派)의 마지막 적자(嫡子)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전주의 음악의 정점이 베토벤이고 그 적통을 잇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후계자로 불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죠.
게다가 브람스는 당대에 유럽 음악계를 양분하며 대립한 리스트, 바그너를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악파와 대척점에 선 인물이었기에 그 부담이 컸을 것입니다. 더구나 브람스는 스스로 졸작이라 판단한 작품은 아예 흔적조차 남겨두지 않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브람스가 작곡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10대 때부터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의 작품이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 역시 그의 결벽에 가까운 그의 완벽주의 때문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브람스가 처음 교향곡 작곡 작업에 돌입한 시기는 21살이었던 1854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브람스로서는 상당히 일찌감치 교향곡에 도전을 한 셈인데 좀처럼 작업에 진척이 없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854년으로부터 무려 7년이 지난 1861년에 이르러서야 첫 악장을 완성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교향곡이 보통 4악장 구성이니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것이었죠. 물론 그 이 브람스가 교향곡 작곡에만 매달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 실내악곡과 가곡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며 쓴 합창곡 ‘독일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등 수많은 걸작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향곡 작곡은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했습니다.
▲<독일 레퀴엠>은 통상적인 라틴어 레퀴엠(진혼곡)이 아니라 모국어인 독일어 가사에 곡을 붙여 만들었다. 전통적인 교향곡 장르는 아니지만 브람스의 뛰어난 관현악 작곡수법이 고스란히 담긴 명곡이다.
끝없는 수정과 퇴고를 반복하는 고역이 지속된 이 기간은 무려 20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총 연주 시간이 50분이 채 되지 않는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은 착수로부터 완성까지 무려 20년이란 시간이 걸린 것이지요.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이 총 104곡, 요절한 모차르트가 41곡(최근 연구에 의하면 20여곡 이상이 추가로 발견되어 총 68곡이라는 주장도 존재)을 남긴 것에 비하면 그의 작업 속도는 터무니없다 싶을 정도로 길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앞선 두 작곡가의 교향곡은 비교적 단순한 형식에다 중간중간 자기표절의 흔적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베토벤을 뛰어넘고자 했던 브람스가 구상한 자신의 교향곡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 맞이한 1876년, 드디어 20년을 묵힌 브람스의 숙제가 완성되었습니다. 기나긴 산고(産苦)를 겪은 끝에 드디어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이 세상에 그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악보에 첫 음표를 그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을 세월이 지나 탄생한 브람스의 1번 교향곡은 그의 친구였던 펠릭스 오토 데소프에 의해 연주됩니다. 이 곡은 초연 때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그로 인해 브람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되었으며, 1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교향곡 작품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당대의 유명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는 이 교향곡을 일컬어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베토벤이 살아생전 10번 교향곡을 작곡했더라면 바로 이 교향곡처럼 작곡했을 것이란 의미와 함께 베토벤에 필적할 만한 걸작이 드디어 완성되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극찬이었습니다. 다만, 그 오랜 세월 동안 베토벤을 넘어서고자 했던 브람스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자신의 첫 번째 교향곡을 가리키며 ‘베토벤’을 언급한 것이 마냥 좋았을 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브람스가 반평생을 고스란히 바쳐 완성한 교향곡 1번.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작해 승리의 환희로 끝나는 고전주의 교향곡다운 서사가 잘 드러난 곡으로, 곡의 종결부에서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베토벤)의 발소리를 의식하면 도저히 교향곡을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브람스가 1번 교향곡을 작곡하며, 친구에게 남긴 편지글의 일부입니다. 떨쳐버릴 수 없는 거인의 존재가 얼마나 큰 부담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브람스를 ‘애정’ 할 수밖에 없는 지점은, 지리멸렬하게 이어지는 작곡과 수정의 무한 반복에도 불구하고 그 오랜 세월 동안 펜과 악보를 놓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문구가 유행인 요즘, 브람스는 150년 전 이미 이 말을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완성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는 브람스 최초의 교향곡.
그러나 작품 연주를 들어 보면 그의 20년에 단 1초도 헛된 시간은 없었음을 알게 된다.”
클래식 음악도의 좌충우돌을 소재로 한 일본 만화(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중 새롭게 구성된 교내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게 된 주인공 치아키가 우연히 스승 슈트레제만이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 1번 레코드를 듣다 내지에서 발견한 문구입니다. (치아키는 공연 선곡을 고민하다 이 레코드를 듣고 브람스 교향곡 1번을 연주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위대한 음악에 보내는 수많은 찬사 가운데 가장 멋지고도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지금의 어려움과 고난 역시 미래의 더 나은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일 테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정진한다면, 그 시간은 단 1초도 헛된 시간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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