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비틀의 탄생
독재자의 꿈으로 천재가 만들고 적에게 구원받아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상한 차가 있습니다. 아돌프 히틀(Adolf Hitler)는 1933년 집권 후에 독일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여러 분야의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는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 아우토반(Autobahn)의 건설과 함께, 독일 국민 누구나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자동차를 타고 유럽 전역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매우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꿈을 구상합니다. 이 즐거운 폴크스바겐(Volkswagen ; 국민차) 플랜의 총책임자가 바로 스포츠카 포르쉐로 유명한 “위대한 독일 공업자” 페르디난드 포르쉐(Ferdinand Porsche)입니다.
이 국민차의 요건에 대한 히틀러의 지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 독일 제국 노동부 KdF 프로그램(Kraft durch Freude. 즐거움을 통한 힘)의 일반적인 가족 단위에 맞춰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을 태울 수 있을 것.
2. 100km/h로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차일 것.
3. 가격은 1,000 라이히 마르크(당시 오토바이 1대의 가격)로 저렴하고 튼튼한 차를 만들 것.
4. RR(후륜 구동계)을 적용하되, 독일의 가혹한 겨울 환경을 고려하여 공랭 엔진을 탑재할 것.
인간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명의 산물은 자연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미술지망생 출신의 히틀러는 심지어 이 자동차의 디자인까지 직접 그려서 포르쉐 박사에게 전달합니다. 바로 딱정벌레 비틀(Beetle)의 모양이었습니다.
꽤나 까다로운 히틀러의 요구에 골머리를 앓던 포르셰 박사는 체코의 자동차 회사 타트라(Tatra)에서 생산하던 T97의 RR구동계 레이아웃과 수평대향식 박서엔진 설계를 표절하여 명령을 수행해냈고, 1938년 소위 악마와 천재의 합작품이라 불리는 폭스바겐 비틀(Beetle)이 탄생합니다. 히틀러는 독일인들에게 기념스탬프를 1주일에 5 라이히 마르크씩 구입하여 990 라이히 마르크 어치 사면 폭스바겐 비틀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적립이 거의 완료되어 사람들이 비틀을 받을 즈음이 되자 전쟁이 터져버립니다. 사람들이 적립한 돈은 모두 나치 독일의 전쟁자금이 되었고, 폴크스바겐(Volkswagen : 국민차) 생산공장은 즉각 퀴벨 바겐(Kübelwagen : 군용차)을 생산하는 군수공장이 되어버립니다. 독일 국민에게 지급된 국민차는 총 0대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의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영국군에게 넘어갑니다. 영국은 이 공장을 조각조각 분해하여 다른 기업들에게 매각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공장의 매각을 위해 부임한 영국군 책임자 이반 허스트(Ivan Hirst) 소령이 마지막 순간에 비틀을 극적으로 살려냅니다. 허스트는 “영국군에게는 차가 필요하고 독일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면서 영국군 보급단 단장에게 비틀을 주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1945년 비틀 1,785대를 제조하여 영국군에게 납품했습니다. 드디어 1947년부터는 일반인이 탈 수 있는 민간용 비틀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47년에는 9,000대, 1948년에는 19,244대가 생산되었습니다. 1955년에는 마침내 100만 번째 비틀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차를 만들어 즐겁게 세상을 여행하게 만들어 주겠다던 히틀러 총통의 약속을 적군인 허스트 소령이 이루어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Chapter 2. Lemon, 광고의 전설
유럽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폭스바겐 비틀은 그러나 독일의 전범기업이 만든 볼품없고 조그만 자동차라는 인식으로 1949년~1950년 단 2대, 1951년 511대, 52년 601대 판매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합니다. 크고, 무겁고, 강력한 자동차를 선호하는 미국 시장과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고려해 볼 때 그러한 상황은 영원히 계속될 듯했습니다. 광고사에 길이 남게 될 전설의 광고 캠페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Lemon
4. [chiefly US, informal] [count]
a product that is not made well; a product that does not work the way it should
Our new car is a lemon
'Lemon(불량품)'은 1961년 광고회사 도니데일번바크(DDB)의 줄리안 코닉(Julian Koenig)이 제작했으며 ‘Think Small’과 함께 폭스바겐 비틀을 대표하는 광고 캠페인입니다. 광고에는 '이 차는 앞 좌석 사물함 문을 장식한 크롬 도금에 작은 흠집이 나있어서 교체해야 합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근무하는 크루트 크로너라는 검사원이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3,389명의 검사원을 동원해 생산 공정의 모든 단계를 꼼꼼히 검수합니다.'라는 보디 카피가 쓰여 있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광고에 제품을 과장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내용을 담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은 결점이 있는 제품을 보여주고,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명확하게 언급함으로써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게 됐습니다. 이 광고는 간결해서 한눈에 들어오는 데다, 불량품(Lemon)이라는 자기 비하적인 네거티브 전략, 정직함 등이 더해지면서 독일 전범기업이 만든 차로 인식되던 폭스바겐 비틀의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포지셔닝하는데 아주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작고 정직한 차는 거대하고 과잉의 극치를 달리던 당시의 흥청망청(興淸亡淸)한 미국 자동차들과 대비되어 기성의 통념과 가치관에 도전하던 히피들의 상징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Chapter 3. 비틀의 시대
Lemon/Think Small 광고를 통해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을 얻게 된 비틀은 각종 영화와 예술작품에 등장하여 더욱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틀은 1968년 디즈니 영화 러브 버그(The Love Bug)에서 사람처럼 마음을 가진 자동차 ‘허비(Herbie)’로 나오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허비 효과에 1968년 비틀은 미국에서만 56만 3,500대가 판매되었습니다. 팝아트 작가 앤디 워홀(Andy Warhol)도 판화의 주제로 비틀을 애용 하였으며, 비틀즈의 마지막 레코딩 앨범인 애비로드(Abbey Road)의 커버 배경에도 비틀이 등장합니다.
비틀즈와 비틀
비틀즈와 비틀이 함께한 애비로드(Abbey Road) 앨범은 비틀즈 최고의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커버를 찍은 장소인 애비로드는 전 세계 비틀즈 팬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이 커버 사진은 촬영을 위해 멀리 가기 귀찮았던 해체 직전의 비틀즈 멤버들이 그냥 대충 녹음이 진행된 EMI 스튜디오가 있는 길거리에서 10분 동안 찍은 단 6장의 사진 중 하나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하얀 폭스바겐 비틀은 동네 주민이 주차해놓았던 차인데, 앨범이 발매되자마자 차 번호판 ‘LMW 281F’는 도난당했고, 이후 다른 번호판을 갈아 끼워도 계속해서 훔쳐갔다고 합니다. 애비로드의 화이트 비틀은 현재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자동차 박물관인 아우토슈타트(Autostadt)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케빈 베이컨과 비틀
영화 Footloose에서 자유를 꿈꿨던 반항아 케빈 베이컨(렌 맥코맥 역)이 떠나가는 자신의 애마 비틀에게 너무나 쿨하게 인사를 합니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비틀의 마지막 광고에서 그를 두 번 찾아봐 주세요.)
앤디 워홀과 비틀
실크스크린 기법의 ‘2백 개의 수프 깡통’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의 lemon입니다.
Chapter 4. 비틀의 끝
21세기가 되었고, 이제는 거대한 공룡 기업이 된 폭스바겐 그룹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클린 디젤’을 내세우는 수많은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2014년 미국 슈퍼볼 광고에서는 폭스바겐 차량이 10만 마일을 달릴 때마다 독일 엔지니어들이 날개 달린 천사로 변해 날아가는데, 이 광고의 메시지는 폭스바겐의 엔지니어들이 지구 환경을 위해 너무나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천사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인 2015년 디젤 게이트(Dieselgate)가 터집니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자동차 회사들이 디젤 배출 가스 양을 조작해온 사실이 발각된 것입니다. 디젤 자동차의 매연 저감 장치를 개발한 폭스바겐 등은 2005년부터 클린 디젤이라는 프로파간다를 내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배기가스가 해롭다고 생각되어 왔지만, 독일과 프랑스가 좌지우지하는 EU의 유럽 정부들까지 가세하여 이를 밀어주자 일반 소비자로부터도 클린 디젤이 정말 깨끗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호응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에 독일의 보쉬 사는 폭스바겐에 디젤 엔진 부품을 납품하면서 주행 상황에 따라 배기 부품을 껐다 켰다 하는 기능을 연구 개발 목적이 아닌 실제 판매 자동차에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경고하였으며, 2011년 폭스바겐의 한 직원은 내부 고발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리려 했으나 묵살되었습니다.
2015년 디젤 게이트의 여파로 폭스바겐 그룹의 주식 17%, 시가총액 약 20조가 날아가 버렸고 30,000여 명의 직원이 해고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고객의 신뢰를 한 순간에 잃게 된 폭스바겐은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40종의 자사 차량에 대한 단종 계획을 세웠고, 결국 2018년 3월 비틀의 단종이 발표됩니다. 2019년 7월 10일 멕시코 푸에블라 생산공장에서 마지막 비틀이 생산되었고 바로 박물관으로 보내졌습니다.
악마의 꿈으로
천재가 만들고
적에게 구해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천사의 거짓된 날갯짓에 사라진
불량 자동차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Epilogue. NOT A LEMON
2019년 12월 31일 비틀에게 헌정된 마지막 광고 ‘The Last Mile'입니다. 비틀즈의 마지막 발표곡인 'Let it be'가 흐르고 8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과 인생의 여정을 함께 달렸던 비틀은 정말로 딱정벌레가 되어 머나먼 밤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Auf Wiedersehen(아우프 비더젠), 폭스바겐 비틀(193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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