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드릭 라마의 다섯 번째 정규앨범 <Mr. Morale & The Big Stepper>가 올해 5월에 나왔습니다. 4집 <DAMN.>이 2017년에 나왔으니 근 5년 만에 나온 셈인데요. 많은 이들의 기다림 덕분인지, 명반인 역대 켄드릭 라마 앨범들을 제쳐놓고 최초로 스포티파이 첫날 스트리밍 횟수가 1억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의 4번째 빌보드 200에서 1위 앨범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켄드릭 라마는 메인스트림에 데뷔한 지 약 12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그는 미국 서부 힙합의 왕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넘어 2010년 이후 한 시대의 레전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켄드릭 라마를 모르시는 분들이 있다면 힙합의 팬이 아니더라도 이번 기회로 한 번쯤은 알고 가면 좋은 아티스트로 추천을 드립니다.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힙합 아티스트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노래가 좋으니까’, ‘랩을 잘해서’ 같은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겁니다. 실력 좋고 사랑받는 래퍼들은 켄드릭 라마 말고도 세상에 널렸으니까요. 그가 다른 래퍼들과 차별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이 갖고 있는 ‘콘텐츠’였습니다. 종교, 인종차별, 교육 등 각종 사회 이슈에 대한 고찰을 담은 가사를 쓰면서도, 동시에 대중적인 성공까지 이뤄냈죠. 본인만의 색깔과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고, 그가 의도한 방식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한 것입니다.
보통 음악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예술은 대중성까지 함께 잡기는 어렵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의 역대 앨범 판매량, 수많은 어워드, 빌보드의 성적이 그럼에도 그가 대중성까지 잡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을까요? 래퍼로서 실력을 겸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의 지난 10여 년의 성공 요인을 ‘콘텐츠’ 관점에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콘텐츠’의 단어 자체를 정의하자면 여러 가지 기준이 있기에 그 해석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콘텐츠를 단순하고 가장 직관적으로 지칭하겠습니다. 최종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정보와 메시지, 즉 ‘창작물’을 의미하는 것으로요. 그렇게 되면 오늘 여기서 켄드릭 라마의 ‘콘텐츠’는 그의 창작물과 관련된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나 폭넓은 의미입니다. 한 발짝 더 들어가서 힙합 아티스트인 만큼 노래와 가사, 뮤직비디오와 같은 영상, 다양한 퍼포먼스가 예시가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켄드릭 라마는 가사, 뮤직비디오, 퍼포먼스에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그만의 메시지를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했으며 자신의 영향력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아티스트였습니다.
1. 가사 -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노력이 음악적인 공감으로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도 있겠습니다. 바로 ‘가사를 음미하기 위해’ 듣는 사람과 ‘음악의 멜로디를 즐기기 위해’ 듣는 사람으로요.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가사는 나중에 서서히 알아가면 되고, 음악은 귀가 듣기에 좋은 것이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그런 차원에서 저는 켄드릭 라마의 음악 역시 비트가 좋았기 때문에 입문했습니다. 중독적인 훅과 강렬한 인트로를 가진 노래들이 한가득한 데다가 그만이 가진 플로우와 독특한 음색도 한몫했죠. 이렇게 하나둘씩 그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그의 앨범들을 계기로 저는 음악을 멜로디만이 아니라 가사와 음악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더 진중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곡 중에서 멜로디와 가사까지 모두 잡은 3집 <To Pimp A butterfly>의 ‘Alright’의 가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내면의 아픔과 부정적인 현실을 이겨내고 긍정적으로 살 것을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노래의 제목 ‘Alright’을 통해 ’We gon’ be alright’를 반복하면서 우린 모두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요.
Alright의 가사는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위 뮤직비디오의 인트로 영상에 들어간 켄드릭 라마의 독백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I remembered you was conflicted
네가 혼란스러웠을 때가 생각나
Misusing your influence
너의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남용했지
Sometimes I did the same
사실 나도 그런 적이 있지
Abusing my power full of resentment
분노로 가득 차서 내가 가진 힘을 막 사용했거든
Resentment that turned into a deep depression
이 분노는 내 마음속의 깊은 우울로 변질됐고
Found myself screaming in the hotel room
호텔 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내 모습을 발견했지
Lucifer was all around So I kept running until I found my safe haven
사방에서 사탄들이 쫓아오기에 내 안식처를 찾기 위해 계속 달렸어
I was trying to convince myself the stripes I got
그동안 내가 얻어온 내 수장들로 나 스스로를 안심시켰지
Making myself realize what my foundation was
내 근본이 무엇인지 내 스스로를 깨우치게 하려고 하면서 말이야
(이하 생략)
…
이렇듯 힙합 뮤지션으로서 그를 다른 뮤지션과 차별화하는 것은 랩 가사입니다. 보통 힙합의 가사들이 돈 자랑을 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죠. 이와 다르게 켄드릭 라마는 자신이 속한 흑인 사회에 통찰력 있는 가사를 전달했으며, 꾸준히 개인의 성찰을 담은 컨셔스(conscious) 랩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흑인음악의 주요 소재를 활용하지만, 단순히 불만을 외치지만은 않습니다. 그보다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각성을 야기하죠. 그런 그의 꾸준한 표현방식이 대중들의 공감과 설득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런 그의 꾸준한 활동에 2016년에는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이 켄드릭 라마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직접 만남을 가졌었습니다. 그들은 빈민 지역 문제, 청소년의 교육과 포용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는데요. 음악으로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작은 노력이 모여 또 하나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합니다.
2. 뮤직비디오 -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과 영상미
앞서 소개한 앨범 3집으로 음악으로 사회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변화에 있어 한계를 느꼈던 그는 다음 앨범 4집 <DAMN.>에서 한층 더 내면의 감정을 중심으로 가사를 전개합니다. 그렇기에 노래들의 제목도 전부 ‘FEEL.’, ‘PRIDE.’, ‘FEAR.’와 같이 모두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들이죠.
명곡으로서도 자주 회자되는 것은 물론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의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일으킨 <HUMBLE.>을 소개합니다.
이 노래는 종교적인 것 같으면서도 과감합니다. 켄드릭 라마 본인 스스로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표현하며, 다른 이들은 모두 다 자신 앞에서 겸손해지라는, 힙합의 단어를 사용하자면 ‘swag’ 넘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요. 이 뮤직비디오는 텅 빈 성당에서 사제복을 입은 켄드릭 라마를 멀리서 비추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중간쯤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장면이 나타나기도 하죠. 이는 노래의 주제에 맞게 자신을 신격화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머리가 불에 탄 채 래핑을 하는 모습은 성경의 한 장면에 착안해서 표현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이 뮤직비디오는 장면이 가지는 상징성을 해석하는 것도 재밌지만, 영상에 담긴 테크닉을 뜯어보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표현 방식에 있어 옛날의 명작을 오마주 하는 방식들이 여럿 있는데요. 80~90년대의 뮤직비디오를 오마주 하기도 하고, 특히 수많은 대머리들 사이에서 중간에서 가사를 내뱉는 켄드릭 라마의 모습을 담은 장면도 많이 회자됩니다. 저 역시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비주얼적으로 충격적인 느낌이었는데, 이는 영화 <존 말코 비치되기>가 떠올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4집 앨범은 발매 첫 주에 60만 장을 팔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했고, 수많은 매체에서 올해의 앨범 1위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이 앨범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됩니다. 이 상은 언론과 예술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수여하는 세계에서 권위 있는 상중 하나로, 퓰리처 음악상은 보통 클래식, 재즈 음악에만 상을 주는데 켄드릭 라마는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최초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 겁니다.
<가디언>은 당시에 수상 소식을 보도하면서 “기교적인 면과 음악적 깊이와 폭, 여기에 위트와 정치적·도덕적 메시지, 공감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는 그는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유일한 MC(mic checker 혹은 mic controller의 줄임말로 래퍼를 지칭하는 다른 표현)”라고 평가한 것을 보면 그의 음악은 대중음악을 넘어 하나의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3. 메시지로 화제를 만드는 퍼포먼스와 창작활동
켄드릭 라마는 최근 파리 패션 위크에서 열린 루이뷔통 2023 s/s 남성 컬렉션에서 5집 <Mr. Morale & The Big Steppers>을 공연했습니다. 그는 가시관을 쓰고 관객석에 앉아서 노래를 불렀는데 마치 시를 읊조리는듯한 느낌을 주었죠.
5집 <Mr. Morale & The Big Steppers> ’N95’를 부르는데 패션쇼에서 이 노래의 가사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Take off the foo-foo,
쓸데없이 허세 부리지 마
Take off the clout chase,
유명세를 좇지 말고
Take off the Wi-Fi
와이파이도 꺼
Take off the money phone
자본주의도 돈 자랑도 그만
Take off the car loan
자동차 대출금도 다 쳐내고
Take off the flex and the white lies
잘난 체하면서 서로 거짓으로 칭찬하지 말기를
Take off the weird-ass jewelry
이상한 그 주얼리도 갖다 버리고,
(이하 생략)
…
한편, 이런 이벤트와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켄드릭 라마는 꾸준히 콘텐츠 제작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2018년의 마블 영화 <블랙 팬서>를 기억하시나요? 웅장한 영상과 매력적인 출연진으로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있는데, 블랙 팬서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OST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OST에 켄드릭 라마가 총괄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립니다. 위켄드를 비롯해 SZA, 앤더슨 팍 등 세계적인 흑인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영화의 내용만큼이나 이 음반 역시 흑인에 의한 음악이었죠. 그는 영화 음악을 통해서도 꾸준히 흑인 사회에 대한 그의 응원과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힙합과 블랙펜서가 어울릴까 싶은데 역시나 켄드릭 라마는 그만의 스타일로 블랙 팬서를 웅장하게 노래합니다.
그가 오랫동안 롱런하며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의 음악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노력과 콘텐츠의 진정성 모여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자신의 영향력으로 또 한 번 자신이 속한 사회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보여줬고요. 이런 그를 바라보면서 저 역시 광고인이자 한 직업인으로서, 매 프로젝트마다 나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게 됩니다. 그저 일상적인 업무에 불과할 수 있지만 결국 내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나비효과처럼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기획의 시작이 세상에 갖고 올 영향력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마음가짐을 달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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