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나라 사람들을 흥의 민족이라고 하죠. 우리나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여겨지는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도 한반도의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나와 있습니다. 지난해 방영된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댄서들이 자유롭게 춤추는 모습으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고요. 해외 팬층을 확보하며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K-pop 댄스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춤은 어떤 존재인가요?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하는’ 것으로도 삶 속에 존재하나요? 스우파의 ‘헤이 마마’ 챌린지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어설픈 동작으로 대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은 일상에서 갑자기 춤을 추라고 하면 한껏 긴장하거나 극구 사양합니다. 결국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이미 짜인 안무를 선보일 뿐이죠.
그런데 안무 없이도 춤은 누구나 그 몸 안에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 무용가 안은미인데요. 안은미는 안무가 없는 상태를 ‘무(無)’로 보지 않고, 오히려 안무에 가려져 있던 각자의 춤, 나만의 춤을 찾을 소중한 기회로 보았습니다. 일명 ‘막춤의 대가’라고도 불리는 안은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엄마’의 춤에 귀 기울이다
화려한 클럽 조명과 음악이 무대를 채우면 할머니들이 그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듭니다. 잠시 후 앉아서 손뼉 치던 관객도 무대 위로 초청되어 할머니들의 흥 넘치는 에너지를 함께하게 됩니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이하 <조바땐>)는 안은미의 150여 작품 중 단연 가장 사랑받고 많이 상연되는 공연인데요.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일반 할머니들의 동작을 리허설도 없이 무대에 올리는 이 공연은, 몸의 언어 그 자체의 가치를 보여주는 아주 특별한 공연입니다. 팔을 옆으로 휘젓고 리듬에 맞춰 다리를 구부리는 할머니들의 친숙한 동작은 <조바땐>에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이처럼 <조바땐>은 ‘우리 어머니의 춤은 무엇일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 공연이지만, 실은 한국의 근대사에 대항하고 몸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근대화가 가져온 춤의 비 일상성
한국 근대 무용사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습니다. ‘현대 한국의 무용’이라고 일컬을 만큼 꾸준히 이어져 내려온 고유의 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지만 우리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구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새마을 운동을 거치며 부단히 진행되어 온 근대화 속에서 한국 고유의 문화는 실제 삶과 유리되어 갔습니다.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에 못 박히거나 열등한 것으로 폄하되었던 것이죠. 식민지로서의 수탈과 치욕을 겪고 전쟁까지 거쳐 온 한국 사회에, 그동안 지켜오던 고유의 삶의 방식과 생각들은 일종의 패인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를 대체할 서양 문물과 철학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의 문화는 저급하고, 부적절하며, 정교하지 않다는 낙인이 찍혀버립니다. ‘무용’이라는 고상하고 우아한 춤의 등장에 따라, 단순하고 서민적이어서 모두가 즐길 수 있었던 어깨춤은 창피한 것이 되어 사라져 갔습니다.
조상님께 바치는 땐쓰 한판
이러한 배경에서 <조바땐>이 역사와 현대인의 삶에 던지는 충격은 아주 신선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안은미는 할머니의 춤을 여러 형태로 재현하여 가시성과 경험성을 극대화하는데요. 공연은 처음에 전문 무용수들의 춤으로 시작합니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옷을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등장한 무용수들은 마치 그동안 쌓였던 한을 풀 듯 팔다리를 쭉쭉 펴고 뛰어다니고 심지어는 공중제비를 돌며 무대를 누빕니다. 답답한 육신 속 할머니들의 번뜩이는 생기를 무용수의 탁월한 신체적 능력으로 대신 해소해주는 듯한 장면이죠.
다음에는 안은미 댄스 컴퍼니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할머니들의 춤이 음악 없이 상연됩니다. 녹화된 할머니들의 춤은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특정 세대의 즉흥적 몸짓을 모았을 때 놀라운 공통점이 드러나는 이것을, 안은미는 ‘몸의 인류학’이라고 지칭합니다.
“신기한 게, 다 웃어요.”
영상이 끝나면 실제 할머니들이 무대 위에 등장합니다. 할머니들은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하고, 솔로 공연을 펼치기도 하는데요. 일체의 리허설 없이 무대에 오르는 할머니들의 춤 속에는 날것 그대로의 긴장과 불안, 어색함도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종종 실수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러나 할머니들의 표정과 에너지, 화려한 의상과 액세서리에서 설렘과 기쁨 또한 읽을 수 있죠. <조바땐>은 즉흥 춤이란 가장 솔직하게 지금의 상황에 임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다다른 자연스러운 무아지경이 아니라 지금 나 자체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것이 즉흥 춤이 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안은미는 인터뷰에서 “신기한 게, 다 웃어요.”라고 말합니다. 춤을 추면 예외 없이 모두가 웃더라는 거예요.
공연은 관객과 함께 춤을 추며 마무리되는데요. 할머니들의 즉흥적 움직임, 일명 ‘막춤’을 모티브로 한 다양한 춤은 자꾸만 기록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 문화와 역사를 살아 숨 쉬는 현재로 끌어옵니다. 할머니들의 몸과 에너지를 역사적 자료로 남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용수와 관객이 그 자리에서 춤을 전수받고 함께함으로써, 소비에서 행위로의 춤의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이렇듯 <조바땐>은 후세대를 위한 중요한 작업으로 보이는데요. 사실 이 공연은 그 무엇보다도 할머니에 의한, 할머니를 위한 작품입니다. 뛰어난 신체를 위해 마련되었던 기존 무대의 언어에 할머니들의 신체를 맞추기보다는, 할머니들에게 무대를 맞춰가지요. 이를 통해 <조바땐>은 역사적으로 부정되고 짓눌려왔던 할머니들의 몸에 주체성을 되돌려줍니다. 무대 위에서 박수받는 할머니들의 몸은 현재 진행형이며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조바땐>은 가장 험난하고 힘들었던 근대사를 거쳐 지금 우리의 존재를 가능케 한 그녀들의 몸에 경의를 표합니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경험이 간단한 움직임을 통해 더 잘 전달되지요. 어쩌면 열 마디 말보다는 솔직한 나의 춤을 추고, 또 함께 그 춤을 추고, 상대방의 몸짓을 내 몸에 담아보는 것이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에, 가장 하고 싶은 몸짓을 하며 내 몸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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