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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타고 멀리 출장이나 촬영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 들어서며 부랴부랴 신문을 찾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 소식이 궁금해 신문을 샅샅이 읽다 보면 몸과 마음속으로 한국이 다시 슬금슬금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잊혔던 혹은 잊고 싶었던 일상들이 온몸을 조여오는 잠수복처럼 물 샐 틈 없이 나를 감싸면, 어느새 나는 일상인으로 재부팅되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어딜 가도 세상 소식을 다 보고 다 들을 수 있는 무경계의 삶은 단절과 이별을 잘 못 느끼게 한다. 울란바토르를 가도 모로코 사막을 가도 예전과 같은 철저한 ‘일상의 부재’는 이제 경험하기 어렵다. 때문에 일상으로의 귀환도 그만큼 덜 쫄깃해진 것 같다. 

면역학적 관점에서 타인은 지옥이다. 피사로-정복자 피사로가 아니라 침략자 피사로로 불리는 것이 합당할 듯한-가 168명의 군사를 데리고 남의 집을 무단 침입하여 잉카 제국 군대 8만을 몰살시키면서 남미를 부당 취득할 때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무기도 용기도 아닌 천연두였다. 인간이 오랜 세월 낯선 자를 경계하고 더 높이 성을 쌓아온 데에는 세균과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한 생물학적 보호 본능의 그림자도 깔려 있다. 낯선 자는 낯선 얼굴, 낯선 생각을 가진 자이기도 하지만 낯선 균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물로서의 인간이 이방인을 경계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역사는 막으려는 자들보다는 들어가려는 자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장벽은 막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허물어지기 위해 존재했다. 또한 면역학은 백신을 발명해 낯선 균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으며, 우리의 기술은 점점 더 무경계의 삶을 사는 데 익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종식시키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늘 생겼다 사라질 뿐이지 죽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인간과 바이러스의 싸움은 진행 중이다. 생태계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 위대한 유기 생명체와 미물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의 미물인, 보이지도 않는 한낱 유전자 정보체에 불과한 이 생명체와의 싸움에 온 인류가 속수무책이라니! 아니 몇 가지 방법은 있다. 손 잘 씻기, 마스크 쓰기 그리고 사람들끼리 덜 만나고 거리 두기와 같은… 만일 지구의 종말까지 누가 남을지 투표해 본다면 지금으로선 바이러스에게 한 표 던질 것 같다. 

그래도 위안을 삼자면 바이러스라도 있으니, 그나마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새삼 돌아보게 해준다. 풀 한 포기도 오롯이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화이트헤드의 일침도 떠오르게 해주고. 또한, 인간의 비극도 희망도 결국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군집 동물이라는 데 있으며 희망은 우리가 그 어느 생명체 보다 협동 지향적이라는 사실에 있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냈던 일상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바이러스여!(좀 전에 함부로 말한 점 사과하오), 이제 우리의 잘못을 눈물로 회개하노니 하루빨리 일상으로의 귀환을 허하기를 간청하노라. 

이번 귀환에서는 일상의 즐거움들에 특별한 감사를 전해야 할 것 같다.  

 

PS.
믿어지지 않지만, 손잡고 얼굴 보며 웃고 떠드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지요. 아마 그때가 되면 우리는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다들 그리고 여러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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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S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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