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 신데렐라. 성냥팔이 소녀...
어릴 때 수많은 아이들에게 교훈과 동심을 심어주던 이야기들입니다. 전세계 어린이들이 한 번쯤은 읽는 필독서죠. 하지만 사람들은 이 이야기들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왜 거북이는 토끼를 깨워 함께 가지 못했을까? 꼭 경쟁해야 했을까? 왜 신데렐라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왕자의 구조를 기다리는 걸까? 왜 아무도 성냥팔이 소녀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문제. 그것은 팩트입니다. 어디선가 피해를 만들거나 어려움을 낳는 사실이죠. 하지만 그 사실이 존재한다고 다 문제가 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 이상함을 발견하고 혹은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많은 마케터와 크리에이터들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사람들이 공감하고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수만 명이 같은 생각을 해주어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니까요. 하지만 또 몇몇의 크리에이터들은 좋은 방법을 생각해냅니다.
세서미 스트리트가 전하는 문제
세서미 스트리트. 쿠키 몬스터, 엘모, 머핏 등의 인형들이 등장해 아이와 함께하는 프로그램. 우리나라에도 방영된 적이 있는 역사가 긴 미국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50년 가까이 된 역사를 지닌 만큼 모르는 이들이 없죠. 하지만 세서미 스트리트가 달라졌습니다. 어린이가 아닌 당신을 가르치기로 했으니까요. 그것도 아주 쇼킹한 방식으로.
영상은 모두 3개로 구성됐습니다. 처음 영상을 본 사람들은 늘 보던, 아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상이 끝나는 순간 예기치 못한 문제를 발견합니다. 세서미 스트리트에서 가르치는 건 차에서 총을 쏠 때 죽지 않는 법, 엄마가 약물에 중독된 걸 알아차리는 법, 배고픈데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영상 타이틀은 “이웃에서 배운 교훈”입니다.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들이 경쾌하게 노래를 시작합니다. 노래와 율동은 중독성을 보일 만큼 신납니다. 하지만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차에서 쏘는 총은 위험하니, 절대로 무서워하거나 뛰지 말고 재빨리 피하거나 숨고 몸을 낮추라고 하죠. 그러면 살 수 있다며, 마치 사탕을 얻는 방법을 노래하듯 가볍고 경쾌하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들이 제안하는 생존방법이 실제로 총기사건을 보고 자라난 9세의 안토니오가 한 말입니다.
두 번째는 약물중독에 대한 내용입니다. 약물 중독된 엄마를 돕는 유일한 방법은 약물중독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방법을 아는 거라고 가르치죠. 몸을 떨거나 거품을 물거나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면 약물중독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엔 앰뷸런스를 부르지 말라고 하죠. 역시 분위기는 시종일관 경쾌하고 가볍습니다. 약물중독이 아니라 엄마의 감기에 대한 얘기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이 내용 또한 6살 조시의 실제 경험입니다.
세 번째는 배고픔에 대한 얘기로 풀어갑니다. 배가 고픈데 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을 땐 큰 유리잔에 물을 따라서 빠르게 마시라고 합니다. 그러면 배고픔이 빨리 가신다고 하죠. 그래도 배가 고플 땐 공기를 삼킨 후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잠에 드는 거라고 합니다. 7살 모건의 이야기입니다.
시종일관 경쾌한 노래로 즐거운 분위기지만 내용은 참혹한 현실을 풍자해서 보여주는 세서미 스트리트.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비영리 단체, Youth Ambassadors와 캔자스 시티, 그리고 대행사 VML이 만든 캠페인입니다. Youth Ambassadors는 총기 사고와 살인, 약물중독, 가난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들이 발견해낸,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은 실제 겪은 경험을 숨기지 않고 얘기하게 하는 거라고 합니다. 영상에 담긴 레슨 내용은 이런 치유 과정을 통해 얻은 아이들의 생생한 경험이기에 더욱 충격적입니다.
Youth Ambassadors는 아이들이 배우지 말았어야 했던 것을 가장 먼저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미래의 바다가 전하는 문제
미래의 바다엔 어떤 생명체가 있을까요?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만나게 될까요?
아일랜드의 초등학생들은 ‘미래의 바다’ 전시 방문을 앞두고 매우 즐거워 보입니다. 보고 싶은 동물에 대해 얘기하며 기대감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한껏 들뜬 아이들은 드디어 아쿠아리움으로 들어서죠. 하지만 아이들은 즐겁지 않습니다. 그저 멍한 표정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동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죠.
미래의 바다를 유영하는 생명체는 모두 플라스틱 조각들입니다. 마트에서 나눠주는 비닐 봉투에 플라스틱 병에 플라스틱 컵까지... 마치 새로운 생명체인 듯 푸른 물속을 헤엄칩니다.
중국이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을 중지하면서 당장 우리에게도 눈앞의 문제로 다가선 환경문제.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중 상당량이 바다로 흘러간다고 합니다. 영국의 마트에서 나눠주는 비닐 봉투는 한해 80만톤에 이르고요. 그린피스는 우리가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미래의 바닷속은 이렇게 플라스틱만 유영하는 바다가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비영리 단체, “바다의 목자(Sea shepherd)” 또한 같은 경고를 합니다. 조용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고요한 분위기. 마치 파도치듯 푸른 질감이 요동치며 등장하는 타이틀, ‘플라스틱 오션.’다시 잠잠해졌다 파도를 만드는 푸른 화면. 돌고래의 실루엣이 보이는가 하면 거북이와 상어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어딘가에 갇힌 듯 푸른 화면을 뚫고 나오려고 하지만 이내 사라집니다. 마치 거대한 플라스틱 수조에 갇힌 느낌이죠.
말 그대로 플라스틱 바다에 갇힌 생물의 위기를 보여주는 영상. 고요한 음악은 심각성을 더합니다. 매년 플라스틱 쓰레기로 죽음에 이르는 바다 생물은 백만 마리에 이른다고 합니다. 며칠 전 발견된 고래의 사체에는 상당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기도 했죠.
지금 바다는 플라스틱과 싸우고 있습니다. 많은 환경단체들은 충격 요법을 통해 당신도 이 싸움에 동참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 명이 하루에 쓰는 플라스틱만 해도 상당하니까요.
사이버 세상에서 전하는 문제
우리는 오프라인 세상에 사는 것보다 온라인에 사는 걸 더 편하게 느낍니다. 실제로 만나는 것보다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SNS를 통해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 세상에 얼마나 큰 위험이 숨어 있는지 실감하지 못하죠.
온라인 해킹 방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Uppersafe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실험을 했습니다. 무작위로 선정한 사람들을 엿보기로 한 거죠. 방화벽이 없어 쉽게 공개되는 20개의 웹캠을 일주일간 몰래 관찰하는 겁니다. 누군가는 강아지와 뒷마당에서 놀고 있고, 남자는 유리잔을 깨뜨리고 주부는 케첩이 똑 떨어집니다. 누군가는 짧은 스마트폰 충전 줄로 인해 불편한 자세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도 하죠. Uppersafe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선물을 보냅니다. 강아지가 갖고 놀기 좋을 공, 깨진 유리잔을 대신할 새 유리잔, 케첩, 긴 충전 줄. 그들은 모르는 존재로부터 내가 뭐가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선물을 받고 당황합니다. 놀라서 박스에 씌어 있는 번호로 전화하죠. Uppersafe와 통화한 후에야 몰카를 통해 사생활이 노출됐다는 걸 알게 됩니다. 광고는 20개의 웹캠 중 영상제작에 동의한 8명만의 영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실험형태로 보여지는 영상은 위협적입니다. 누군가 나도 모르게 웹캠으로 내 사생활을 모두 엿볼 수 있다는 사실. 상업적 용도로 만든 영상이긴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하게 문제 삼을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문제에서 나의 얘기로
현대는 모든 게 빠르게 등장하고 빠르게 사라집니다. 그 중엔 패션도 한몫하고 있죠. SPA브랜드가 각광을 받으면서 패션 사이클은 더 빠르게 움직입니다. 노동자들이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공정하게 대가를 받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의류산업의 노동자들. 명품 패션이든 SPA패션이든 그들이 감추고 있는 문제는 비슷합니다.
비영리단체 Fashion Revolution. 그들은 그래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내 옷은 대체 누가 만들었나요?”
뮤지컬을 보듯 세련되게 연출된 영상이지만, 목화를 재배한 아프리카 여인도, 염색을 하는 인도 여인도, 재봉틀을 돌리는 중국의 여인도, 가봉을 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할아버지도 같은 ‘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장시간 노동하지만 여전히 가난하고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니까요. 이 단체는 4월말 패션 레볼루션 주간을 맞아, 누가 내 옷을 만들었는지 질문을 던지며 변화를 만들고 공정무역을 시작하자고 합니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실’입니다.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를 만드는 어린이들이 공익광고에 등장하기도 했고, 방글라데시의 수많은 의류 노동자들이 사고로 숨지기도 했지만 우리는 아직 화려한 옷 뒤에 감춰진 문제를 직시하지 못합니다. 패션 레볼루션은 그 문제를 문제 삼기 시작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려면 “내 얘기”가 돼야 합니다. 플라스틱이 가득한 바다가 곧 내가 사는 이 곳의 문제가 돼야 하고, 사이버 해킹은 내가 노출된 위험이어야 경각심을 가지며, 소외된 계층의 이야기도 나의 충격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크리에이터에게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모든 문제는 결국 수많은 ‘나’에게 연결돼야 하니까요. 그 연결은 결국 크리에이터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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