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는 취향과 전략의 싸움인 듯합니다.
마케팅의 역할 나아가 전략이 중요해지면서 전략이 전부인 듯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끗 차이, 취향입니다. 웃긴 걸 좋아하는 취향, 감동적인 걸 좋아하는 취향, 사실적인 걸 좋아하는 취향, 라이프에서 따온 걸 좋아하는 취향, 동화적인 걸 좋아하는 취향. 전략은 데이터를 통해서, 소비자 트렌드를 통해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되지만, 표현의 차이인 취향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 특강>에서 ‘취향을 두고 논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검증이 불가능한 주제로 논쟁을 하면 누구도 반박할 수도, 주장할 수도 없다는 거죠. 단지 차이만 존재할 뿐. 하지만 광고는 취향을 갖고 논쟁하는 분야입니다. 유머 광고가 맞는지, 감동을 만드는 게 맞는지. 전략을 세우고 나면 그에 따른 콘텐츠 만들기는 누군가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광고가 만들어지면, 소비자 반응과 매출에 도움이 되는 ‘취향’이었는지 검증하는 단계를 거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들어지기 전엔 누구도 정확하게 맞다고 주장하기는 힘들죠. 그래서 좋은 콘텐츠 하나 만들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anomaly한 취향을 가진 에이전시, Anomaly
언젠가부터 가장 핫한 메시지를 많이 만들고 있는 광고대행사, Anomaly. anomaly라는 단어는 “파격, 모순, 변칙, 이상한 것”등의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름을 ‘anomaly’로 정할 만큼, 그들은 파격적인 콘텐츠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비상하고요. 올겨울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만들고 있는 Anomaly. 올해 Anomaly London은 어떤 크리스마스에도 본 적이 없는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산타가 주인공이 아닌 사탄이 주인공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어린 여자 아이의 실수로 시작됩니다. Santa라고 적어야 할 편지에 순서를 잘못 적어, Satan이라고 적은 거죠. 그녀는 ‘당신은 특별하고 좋은 사람이며 올 크리스마스엔 강아지를 선물로 받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죠. 미움과 저주 투성이의 편지만을 읽던 사탄에게 어린 소녀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같은 내용의 편지겠거니 하고 읽은 사탄은 충격을 받죠. 칭찬과 존경이 가득 담긴 편지니까요. 특별하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며, 그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당황합니다. 처음 느껴본 동정심, 공감, 측은지심 같은 ‘역겨운 감정’에 사탄은 구토까지 합니다. 하지만, 소녀의 칭찬이 만들어낸 감정은 강했습니다. 어떡하면 지옥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 사탄을 고민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사탄은 지옥의 모든 악마들을 불러놓고 ‘하나가 되는 법’과 ‘함께하는 법’에 대해 강의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악마들 또한 충격을 받습니다. 비밀 모임을 통해 사탄을 저주하고 지옥에서 내쫓아 버리죠. 사탄은 쇼디치에 글루틴 프리 베이커리를 엽니다. 빵을 구워서 열심히 돈을 모으죠. 열심히 일한 사탄은 마침내 소녀를 위한 강아지를 구하러 빵집을 나섭니다. 하지만 그때 알게 됩니다. 소녀가 보낸 편지는 자신이 아닌 산타에게 보낸 거라는 걸. 사탄은 실망감과 분노에 산타를 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산타가 없어지는 걸 본 소녀는 사탄을 원망합니다. 당신이 내 크리스마스를 망쳐버렸다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아침이 됩니다. 산타가 없는 크리스마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매년 그랬듯 선물이 배달됩니다. 다만 매년 받던 평범한 선물이 아닌 좀 더 특별한 선물이 배달되죠. 머리가 셋 달리고 번개를 뿜는 강아지 같은. 어쨌든 강아지를 갖고 싶어한 소녀의 소원은 이뤄집니다. 결국 사탄이 산타 대신 해피한 크리스마스를 만들었습니다.
산타를 사탄으로 잘못 써서 생긴 6분 남짓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실제로 anomaly의 직원이 어떤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만들까 고민하던 중, 산타를 ‘사탄’이라고 잘못 쓴 단어를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에 늘 등장하는 산타가 아닌 ‘사탄’이 만들어내는 크리스마스. 내레이션은 영국의 유명한 영화배우인 패트릭 스튜어트가 맡아, 더 익살스럽고 비밀스럽습니다.
누구나 따뜻하고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를 원합니다. Anomaly의 전략 또한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을 겁니다. 하지만 방법은 어떤 크리스마스와도 차별화되는 메시지로 가는 거였겠죠. 악마적이지만 귀엽고 친근한 ‘파격적인 취향.’ 그 취향이 Anomaly의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감동의 엔딩을 좋아하는 구글
2017년 한 해 동안 어떤 일이 있었으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한 내용은 뭔지 알고 싶다면 구글 광고를 보세요. 매년 구글이 만드는 콘텐츠, ‘Year in search.’ 가장 많이 검색한 내용을 모아 만드는 콘텐츠는 올해도 감동적인 결말로 이어집니다.
모든 검색은 ‘how’로 시작됩니다. ‘북한의 미사일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산불은 어떻게 시작되는지,’‘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난민이 있는지’와 같은... 세계적인 이슈와 관련된 궁금증이 이어집니다. 이어서 검색은 또 다른 ‘how’로 이어지죠. ‘어떻게 난민을 도울 수 있는지,’ ‘어떻게 수재민을 도울 수 있는지,’ ‘어떻게 푸에르토 리코를 도울 수 있는지’로.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한 겁니다. 이어서 검색한 내용은 ‘세상을 바꾸는 저항’에 대한 것입니다. ‘어떻게 시위에 사용할 피켓을 만드는지’에 대해서 묻는 내용들. 곳곳의 시위 장면이 함께 이어집니다. 세계 이목을 끈 광화문 촛불집회도 등장하고요.
물론 60년 만에 찾아온 개기일식과 같이 신비로운 자연 현상에도 관심이 많았고, 어떻게 하면 여성들이 더 강해질 수 있는지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 해였습니다. 성추행과 성폭력에 맞선 여자들의 목소리인 #metoo도 등장합니다. 구글하면 단순히 자료를 찾고, 데이터를 찾는 검색용 툴인 듯 하지만,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방법을 더 많이 검색했습니다.
올해는 과거 어느 때보다 ‘how’를 묻는 검색이 많았다고 합니다. 구글에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도 ‘태풍 이마’인 만큼, 수재민을 돕는 방법과 극복 방법이 관심사였습니다. 물론 종합 검색어 2위와 3위가 아이폰8과 아이폰X일 만큼 신제품과 개인 관심사도 순위가 높았습니다.
구글이 있음으로써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세상’은 더 넓습니다. 구글은 그 점에 집중해 일 년간의 검색을 ‘감동’이라는 취향을 반영해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많이 검색된 내용을 반영해 만들어진 콘텐츠이기에 감동의 울림은 더 큽니다. 단순한 광고 콘텐츠가 아니라, 실제 데이터에 근거한 내용이니까요. 검색이 감동이 될 수 있다는 걸, 구글이 매년 만드는 ‘Year in search’를 보고 깨닫습니다. 구글은 일 년을 ‘감동’으로 끝내는 걸 참 좋아하는 듯합니다.
라이벌 구도를 잊지 않는 버거킹
버거킹은 늘 맥도날드를 잊지 않습니다. 맥도날드에게 평화의 날을 맞아 콜라보레이션 버거를 만들자는 공개 편지를 보내는가 하면, 맥도날드 앞에 입간판을 세우고 ‘버거킹까지 거리가 머니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참고 오라’고 하기도 합니다. 버거킹은 늘 경쟁을 즐깁니다.
11월 10일 아르헨티나의 버거킹은 또 한 번의 경쟁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이날 만큼은 버거킹에 들른 손님들한테 와퍼를 한 개도 팔지 않는 거죠. 점원들은 와퍼를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버거킹의 경쟁사로 가서 그들의 대표 버거를 먹으라고 권합니다.
사람들은 당황합니다. 농담하는 거냐고 묻기도 하고, 어디를 말하는 거냐고 묻기도 합니다. 점원은 ‘그릴에 굽지 않는 경쟁사’라며 작은 공격 또한 잊지 않습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황당한 손님들은 지금 ‘맥도날드’를 가라는 거라며 항의합니다. 사태는 점점 더 가관이 됩니다. 심지어 버거킹의 마스코트인 킹이 맥도날드 매장을 들러 빅맥을 주문하기에 이르니까요.
맥도날드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환영의 박수를 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날 벌어들인 수익금은 모두 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기부되기 때문이죠. 버거킹은 이날만큼은 와퍼를 먹고 싶어도 빅맥을 먹고 기부에 동참하라고 권합니다.
버거킹의 취향은 한결 같습니다. 경쟁 구도에서 생기는 위트를 잊지 않는 것. 그래서인지 요즘은 맥도날드보다 버거킹의 광고 콘텐츠들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경쟁 구도를 늘 반전의 요소로 활용해 예기치 않은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 버거킹. 이 날도 경쟁사이지만, 좋은 일하는 맥도날드를 돕겠다는 버거킹의 메시지가 돋보입니다. 다만 매 순간 위트를 섞어 말하는 걸 잊지 않죠.
취향을 만드는 안목
몇 년 전, 럭셔리를 주제로 한 미술 전시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정의하는 럭셔리는 ‘내 취향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계든 가구든 조명이든 미술 작품이든, 내 취향대로 선택하고 소유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궁극의 럭셔리라는 거죠. 럭셔리를 가장 잘 정의한 내용인 듯했습니다. 비용 때문에 맞지 않는 취향의 가구를 들이고, 맞지 않는 물품을 구입하는 것만큼 싫은 것도 없을 테니까요.
취향이라는 것에는 맞고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인지, 소수를 위한 취향인지 판단하는 거 외에는 검증할 확실한 방법이 없죠. 그래서 많은 브랜드의 모험은 시작됩니다. 크리스마스라고 꼭 따뜻한 이미지의 캐릭터만 나와야 할까, 악마는 등장할 수 없을까? 이 모험이 anomaly의 메시지를 매력적으로 만든 것처럼.
다만 내 취향을 고집하는 게 럭셔리가 되는 것처럼, 브랜드에 대한 나의 취향을 살려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은 브랜딩을 하는 방법이 될 듯합니다. 트렌드에 양보하고, 대중에게 양보하고, 흐름에 양보하는 게 아닌 내가 생각한 취향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 신선한 콘텐츠일수록 트렌드를 벗어나고 대중의 예상을 벗어나니까요. 다만 취향을 보는 안목. 그게 우리가 갖춰야 할 능력이자 기발함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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