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5-06 : M세대 리포트 -Multiple Context를 살아가는 실용적 합리성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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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ple Context를 살아가는 실용적 합리성
 김 연 진 I 마케팅3팀
 yjkimb@lgad.lg.co.kr
 
 
디지털 시대에 미신?
최근 ‘점술 신드롬’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압구정동처럼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중심으로 적당히 세련된 인테리어와 자칭 ‘라이프 카운슬러’라고 하는 유학파 역술인들이 궁합이나 사주 뿐 아니라 학업·적성·유학이나 취업, 심지어는 이직 문제까지 상담해주는 역술상담소와 사주카페가 성업중이다.
필자 스스로 그 중 한 곳에서 재미 삼아(?) 상담을 해본 결과, 놀랍게도 올 하반기에 내가 헤드 헌터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것이며, 벤처회사나 컨설팅 업계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사주를 통해서 그런 것까지 나오냐”고 물었더니 “사주에 나온 것을 현대상황에 맞게 자신이 응용하고 해석하는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곳들이 예전의 ‘점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역술인들이 훨씬 젊고 고학력자가 많아서 단순한 호기심 충족뿐 아니라 전문적인 상담이나 라이프 컨설팅을 해준다는 것이다. 또한 그곳을 찾는 고객도 20대~30대 초반이 80%가 넘을 정도로 연령층이 낮아졌고,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대개 아줌마나 미신을 꽤 믿는 비합리적인 사람일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영화관계자나 패션업계 종사자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도 이런 곳을 찾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현실적인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을 보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사회가 나날이 자본주의화·현대화되어 합리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아이러니컬하고 재미있다.
한국사회의 다원성과 복합성
그러고 보면 참 한국이란 나라만큼 복잡하고,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이 교묘히 서로의 균형을 유지하며 혼재해 있는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전통적인 유교 질서와 포스트 모더니즘, 심지어 무속신앙까지 혼재되어 있으니 말이다. 설날에는 제사를 지내고 발렌타이 데이 때는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추석에는 성묘를 하고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또 학교에서는 심리학 실험을 위해 SPSS를 돌리기도 하면서 오후에는 친구끼리 압구정동으로 몰려가 남자문제로 사주를 보기도 하지 않는가. 이렇게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상황들이 혼재하면서 문화가 다원화되고 복잡해졌다는 것은 곧 우리가 적응해야 할 사회적인 흐름이나 상황이 복잡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는 우리가 그러한 흐름이나 상황에 맞게 적응해야 할 행동들의 복잡성이 증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문화심리학이나 사회학적 논의를 보면, 문화가 복잡하고 이질적인 사회는 단순하고 동질적인 사회보다 더 불안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덧붙여,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하는 것들은 엄청난 속도로 생성되고 있는 정보들이다. 정보란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것으로 정의되지만, 사실상 우리가 체감하는 것은 알면 알수록 무엇이 옳다고 말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에의 대처
우리는 M세대에게 절대적으로 옳은 ‘참’인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M세대가 다중성을 지니며 끓임없이 새롭고 독특한 것을 찾는 것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확실성과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한 몸부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M세대의 영웅’을 예로 들어 그들의 특성을 잠깐 살펴보자. ‘짱세대’란 말을 유행시켰던 만화 「짱」의 주인공이나 무협만화 「열혈강호」의 주인공을 보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그들은 힘이 있으되 함부로 사용하지 않으며, 권선징악적 명분이나 정의감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이익이나 재미에 민감하며, 불리한 상황에서는 재빠르게 내빼는 비겁함도 있다. 또 그들은 여성에 대해서도 엄청난 ‘껄떡남’인 동시에 로맨티스트로서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며, 성격적으로 일관성 있고 안정적이라기보다 다중적이고 융통성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혹시 다원화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사회적 상황에서 보다 적응성을 높이기 위한 지능적 대처의 일환이 아닐까?
비합리적인 믿음의 효용
그렇다면 ‘엽기’라는 코드로 대별되는 M세대의 변덕스러움과 괴팍함, 빅스타에 대한 맹목적인 열광, 상황에 맞게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적 가치관, 자기에 대한 일관되고 정합적인 상(像)이 아닌 다중적이고 융통성 있는 셀프(self) 이미지들, 그리고 디지털 세대이면서도 사주와 점술을 삶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고하는 현상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는 우선 사회의 불확실성과 엔트로피가 증가하면서 나타나는 심리적 불안 상태를 안정시키고, 다중적이면서 변화무쌍한 시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보다 융통성 있는 형태로 자신을 유지하면서 그러한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대화하려는 M세대의 한 단면이 아닐까? 점술이나 사주를 엄밀한 수준에서의 과학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완전히 비과학적인 미신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비합리적인 것 같은 M세대의 행동이 사실은 너무나도 영리하고 지능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시대를 통틀어 미신이나 비합리적인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 진리만의 세계란 존재할 수가 없다. 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어떤 논리적 합리성보다는 적정한 수준의 ‘통밥’이나, 상식적이지만 비과학적인 믿음들이 급변하는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실용적인 경우도 많다. 점을 보고 궁합을 맞추어 보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그들은 당면한 현실 문제를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럴 듯하지만 비합리적인 처방’에 의존하면서 불확실성과 불안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점술이나 사주가 내놓은 처방이 100% 맞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무언가 비합리적인 힘에 의존 할 때 일시적으로나마 심리적인 안정감과 불안을 덜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M세대를 이해하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보는 마음가짐과 태도이다. 그들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또 얼마나 기성세대보다 지능적이며 긍정성과 건강함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려 한다면, 아마 똑같은 현상도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새로운 문화현상이나 M세대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싶다. 다만 분명한 것은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커질 때 그렇게도 갈구하던 M세대의 윤곽은 드러날 것이며, 그들의 기호나 취향에 맞는 새로운 트렌드의 창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