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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취향 저격’ 시대
- 1인 인터넷 방송 플랫폼
서창호 Window Seo
Project xT팀 차장 / windowseo@hsad.co.kr
1990년에 개봉된 영화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의 주인공, DJ 하드 해리(Hard Harry)는 밤 10시만 되면 무선 교신기의 마이크를 잡고 단파라디오를 통해 세상에 대한 부조리와 학생들의 시선,성적인 욕구, 동경의 대상에 대해 기관총처럼 말을 쏟아낸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모티브로 삼아 제안했던 아이디어를 들쳐보다 생각했다. 또래 십대들을 대변한 해적방송을 소재로 만든 <볼륨을 높여라>는 1인 인터넷 방송 시대를 예견한 영화가 아닐까?
팬덤에 수익창출까지
최근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줄임말)이라 불리는 공중파 TV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5월 31일에는 다음 tv팟 생방송에 130만 명이 접속해 총 340만 시청 횟수를 돌파했다고 한다. <마리텔>은 다섯 개의 작은 스튜디오에 BJ(Broadcasting Jockey)인 출연자들이 들어가 제한시간을 두고 진행하는 방송으로, 경쟁하는 1인 인터넷 방송의 판박이다. 사전 생방송을 통해 시청자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BJ의 방송 아이템을 선택하고 채팅에 참여해 함께 방송을 만들어간다. 안내 방송을 하는 진행자가 있고, 편집된 영상이 공중파TV를 통해 방송된다는 점이 인터넷 방송과 다를 뿐이다. <마리텔>이 화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레시피로 방송을 하드 캐리하고 있는 백종원의 역할도 크지만,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다양한 소재와 양방향 소통이라는 포맷을 지닌 1인 인터넷 방송 미디어의 특성이 시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비주류로만 여겼던 1인 인터넷 방송은 이미 방송계 전반에 파고들고 있다. 또한 인터넷 방송은 1인 창작자들의 취미활동에서 벗어나 팬덤을 양성하고, 수익까지 창출하는 생태계로서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문득 내 삶의 역사와도 궤를 함께 했던 1인 인터넷 방송의 발자취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지면관계 상 모두 다룰 수 없어 세 가지만 꼽아보았다 (무순).
윈앰프, 실시간 인터넷 음악방송의 조상
‘윈앰프(Winamp) 라디오 방송’을 기억하는가? 1997년 동영상을 압축하는 MPEG 기술에서 오디오 압축만 따로 떼어낸 파일 포맷인 MP3가 탄생했지만, 당시 컴퓨터는 불과 4~5MB 밖에 되지 않는 이 파일의 오디오 압축을 실시간으로 푸는 데에도 버거웠다.
이 시기에 PC가 덜 느려지게 음악을 재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레이어가 등장했는데, 그게 바로 널소프트(Nullsoft)라는 자그마한 팀에서 만든 PC용 MP3 플레이어, 윈앰프였다. 2.0 버전부터는 스킨을 바꿀 수 있었는데, 친구 집에 놀러갈 때면 어떤 윈앰프 스킨을 쓰는지 확인할 정도로 윈앰프 스킨 열풍이 불었다.그러던 중 윈앰프를 PC 내 음악파일재생기로 역할을 제한하지 않고 1인 인터넷 가상방송국으로 활용한 개척자들이 생겨났다. 개국에 필요한 것은 헤드셋·마이크 그리고 방송 주소를 잡고 음악을 틀기 위한 윈앰프뿐. 그들은 마치 DJ처럼 준비한 방송 코멘트를 읽어주고 정성스레 선곡한 음악을 틀어주면서‘ 나만의 방송’을 진행했다. 채팅사이트에서 채팅방을 만들어 사연을 보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등 라디오 방송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만 선곡해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 네티즌 말로‘ 취향 저격’이었다.
청취자 수는 적게는 몇 명에서 많아야 백여 명. 하지만 나와 취향이 같은 사람들과 음악을 함께 듣고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매력이 있어 정규 프로그램처럼 운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서비스가 태동하면서 윈앰프는 이렇다 할 발전과 반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난 2013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팟캐스트, 정치 이슈에서 버라이어티 방송으로
2011년에 첫 방송을 시작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정치·시사 방송‘ 나는 꼼수다’를 통해 잘 알려진 팟캐스트(Podcast)는 애플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의‘ cast’의 조합어다. 팟캐스트는 전파를 사용하지 않고 파일의 형태로 인터넷망을 통해 서비스되는 덕(?)에 기존의 방송법 적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가능해 라디오나 TV에서 다루지 못하는 민감한 이슈를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심지어 해외의 경우‘ 날씨’라는 사소한 소재 하나만으로도 방송을 만들 정도다.
팟캐스트에 대한 초창기 열풍이 가라앉으면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대안 미디어의 핵심으로 부상했던 팟캐스트의 행보가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인기방송의 절반가량은 정치·시사 관련 방송이지만,영화·교육·스포츠·음악·종교·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도있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버라이어티한 방송으로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내 취향이다 생각되는 방송은 구독 버튼을 누르면 업데이트될 때마다 자동으로 에피소드 리스트가 갱신돼 방송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다. 요즘엔 인터넷이 아닌 ‘팟캐스트에서 들었다’.‘ 팟캐스트에서 배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아프리카TV, El Dorado를 꿈꾸는 이들이 모인 대륙
아프리카TV는‘ All FREE CAsting’, 즉, 모든 것이 자유로운 개인방송이라는 뜻이다. BJ라 불리는 방송 진행자가 웹캠 또는 PC모니터 상의 화면을 송출해 방송하면, 시청자는 전용 프로그램을 이용해 송출중인 채널의 목록 중에서 보고 싶은 채널을 선택해 접속하게 된다. 그리고 채팅을 통해 방송자와 시청자 사이의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 BJ가 화면을 보고 채팅창으로 시청자와 쉴 새 없이 대화하며 함께 방송을 만드는 1인 인터넷 방송의 장점이 극대화된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TV의 한 채널에는 최소 50명에서 최대 1,100명까지 동시 접속할 수 있고,‘ 퀵뷰’라는 유료 아이템을 시청자가 구매하거나 다른 시청자가 자신이 보고 있는 채널을‘ 중계’해 주는 중계 채널을 시청함으로써 동시 접속 제한을 피할 수도 있다. 방송의 종류는 게임 중계방송부터 ‘먹방’(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요방’(요리 방송)·‘ 음방’(음악 방송)·‘공방’(공부 방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아프리카TV는 엘도라도(El Dorado)를 꿈꾸는 이들이 몰려들도록 하는 ‘황금’을 갖고 있다. 일반인도 스타가 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BJ 중에서 양띵·대도서관·BJ효근·김이브님, PD대정령·망치부인 등은 인기 BJ이라 불리며 유튜브에까지 진출했다. 게임 방송으로 인기를 얻은 BJ‘ 양띵’은 초등학생들의 대통령, 일명‘ 초통령’이라고 불리는데, 양띵의 유튜브 구독자는 무려 130만 명이 넘는다. 역시 게임 방송을 하는 BJ‘ 대도서관’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100만 명에 달했다. 아프리카TV의 하루 최고 순방문자 수는 350만 명, 일별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47만 명으로 웬만한 케이블 방송은 넘어선 수준이다.
이전까지의 인터넷 방송과는 달리 또 하나 주목할 점은 BJ들의 수익원이다. 아프리카TV에서는 1개당 100원인‘ 별풍선’을 시청자들이 구매해 BJ에게 선물로 보낼 수 있게 하고, 받은 별풍선을 BJ가 환전하면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을 갖게 된다. 인기 BJ의 수입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인해 일부에선 방송의 선정성에 대한 문제도 대두됐다. 하지만 많은 방송이 취향을 공유한다는 차원을 벗어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얻으면서 또 다른 생태계가 형성됐다.
‘Multi Channel Network’ 등의 산업화 단계로 진입
다양한 1인 창작자의 취향을 담아낸 인터넷 방송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 콘텐츠로 자리 잡아 거두는 수익의 규모가 커지면서 창작자들을 묶어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고 배급 등을 담당하는‘ 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다.
MCN에서는 SM이나 YG 같은 대형기획사가 소속 연예인을 발굴해 육성하고 방송활동을 지원하듯 인터넷 스타들에게 촬영 스튜디오 등 방송장비·교육·콘텐츠 유통·저작권 관리·마케팅·광고 유치 등을 지원해준다. 또한 1인 창작자가 다양한 플랫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창작자와 광고수익을 나눠 갖는다. 이미 해외에는 월트디즈니나 드림웍스 같은 대형 미디어 기업이 각각 메이커 스튜디오, 어섬니스TV 등의 회사를 인수하거나 투자에 나설 정도로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MCN 사업에 최초로 뛰어든 CJ E&M이 다이아TV(Digital Influencer & Artist TV) 런칭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사업모델 발굴, 플랫폼 확대, 해외진출 등의 3대 지원정책을 알렸다. 한 때 개개인의 마니아적 취미로만 여겨졌던 1인 인터넷 방송은 점점 진화해 공중파 방송의 컨셉트로 차용될 뿐 아니라, 갈수록 큰 경제적 효과를 보이는 미디어 산업으로까지 성장하고 있다.
대중의 니즈(Needs)를 좇지 않더라도 개개인의 기호나 취향이 주류미디어에서 주목하는 콘텐츠가 되는 시대. 20대 초반, 흑인음악을 소재로 윈앰프 방송을 하다가 군입대로 중단한 후 끝내 재개하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해본다. 당신의 취향은 무엇인가? 자,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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