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영화’
이 유 진
디지털캠페인1팀 대리 / eg@hsad.co.kr
사람의 머릿속에 여운을 남기는 장치 중 하나인 ‘청각기억’ .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이 더 많은 정보를받아들이고 기억한다고 생각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각기억이야말로 사람이 인지하고 기억하기에 가장 쉬운 기억 장치라고 한다. 70~80년도 세대라면 공감할 만한 다양한 브랜드의 어학 테이프, 그리고 최근 어린이들이 동요처럼 흥얼거리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대부업체 광고 노래들이 바로 이 청각기억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의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해 기억을 남기는 일이 주 목적인 광고에서도 ‘청각기억’은 아주 큰 중요도를 차지한다.
이번 칼럼은 영화보다 더 오랜 기억을 남기는 영화 광고,그 중에서도 영화 광고 내 삽입된 음악을 리뷰해보겠다.
※ 주의! 영화를 안 보신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Kingsman the secret service> -‘ Hush’ by Kula Shaker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올 상반기 가장 화제가 됐던 영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요즘 흔히 말하는‘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의 정석을 보여주는,‘ 수트발 넘치는’ 영국 신사 콜린 퍼시(Colin Firth)와,아직은 대중에게 낯설지만 앳된 철부지의 모습부터 노련한 킹스맨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연기해낸 태론 에거튼(Taron Egerton)의 감각적 콜라보레이션은 영화를 본 사람들의 뇌리 속에‘ 영국 신사’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장면과 완벽하게 들어맞는 주옥같은 음악들을 선정함으로써 OST 자체로도 화제를 일으켰다.
트레일러에는 총 3가지의 음악이 삽입됐다. 이 중 쿨라 셰이커(Kula Shaker)가 리마스터링한(원곡:‘Billy Joe Royal’)‘ 허시’라는 노래는 영화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신 중 하나인 해변의 광란 신과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독특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포털 사이트에서 ‘Kingsman’을 검색하면“ 나~나나나~나나나~로 시작하는 노래가 뭐죠?”라는 질문이 쇄도하는 것으로 볼 때 이 음악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킹스맨에 대한 완벽한 청각기억을 남겼다고 본다.
<Whiplash> -‘ Whiplash’
감독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원래 선댄스영화제를 목적으로 제작됐다. 이후 선댄스와 칸을 거쳐 드디어 일반인들에게 선보인 영화 <위플래쉬>의 예고편은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의 플래시백과 드럼 비트의 교차 편집으로 보는 이들의 감정을 긴박하게 몰아붙인다. 또한 예고편 전반에는 영화 제목과 동일한 음악이 삽입돼 있다.
드럼을 좋아하는 평범한 음악학도이던 앤드류는 우연한 계기로 플랫처교수의 눈에 띄어 그의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인자한 외모와는 달리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쉽사리 만족하지 않는 플랫처 밑에서 앤드류는 뼈를 깎는 고통을 거치며 점점 괴물이 돼간다. 특히 이 음악이 가장 빛을 발휘하는 신은 천재와 천재가 낳은 괴물이 만나 서로가 서로를 밀당하는 과정 속에서‘ 위플래쉬’라는 음악이 성숙돼가는 엔딩 신이다.
마치 와인이 익어가듯 볼륨이 0에서 100을 왔다 갔다 하며 연주되는 이 장면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기립박수를 보내게 한다.
<50 Shades of Grey> -‘ Crazy in love’ by Beyonce(2014 Remix)
‘엄마들의 해리포터’라고 알려진 원작소설을 토대로 하고 있는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사실 개봉 직후‘ 가볍고도 천박하다’,‘최악의 영화’,‘ 유치한 신데렐라 스토리’ 등의 온갖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허나, 모두가 만국 공통으로 외치는 말이 있으니 바로‘ OST만은 건질만하다’는 것이다. OST를 듣기 위해 영화를 봤다는 리뷰가 있을 정도고, 음악감독의 인터뷰마저 별도로 진행됐다니 이 정도면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영화의 예고편에는 리믹스 버전의‘ 크레이지 인 러브’가 영화의 엑기스장면과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이 노래를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전혀 다른 듯한 느낌의 리믹스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영화 내용에 맞게 관능적 면모가 짙은 아티스트와 그들의 음악으로 가득 차 있는 OST는 개인적으로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OST로 인해 유치한 영화의 장면 장면들이 오버랩될 수도 있으니, 해당 장면에 대한 기억은 삭제하고 청각기억만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Boyhood> -‘ Hero’ by Family of the year
‘3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연애는 3, 6, 9달 때 가장 큰 위기가 오고,직장인은 3, 6, 9년차면 퇴직을 꿈꾼다고 한다.<보이후드>는 그런 점에서 참 특별한 영화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감독과 배우들이 동고동락하며 만들어낸, 상영시간만 장장 3시간인 긴 호흡이 필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히어로’는 미국 출신의 인디밴드 패밀리 오브 더 이어(Family of the year)가 2009년에 낸 EP의 수록곡 중 하나로, 컨트리풍의 멜로디에 서정적 가사가 매력적인 곡이다. 본편에서는 <보이후드>를 본 사람들이 단연 백미로 꼽는, 엔딩 신에서 엄마가 절규하며“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I just thought there would be more!)라고 할 때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에서 상당히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 때문에 영화 제목을 보이후드에서 마더후드(Motherhood)로 바꿔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예고편을 보면 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에 담긴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든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각기억의 힘은 실로 참 대단한 것 같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각 영화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했는데, 영화의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날 정도이니. 앞으로 우리 회사의 광고 음악을 듣고 우리 회사의 광고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치겠다.
P.S - 다음 칼럼은 ‘광고인 그리고 음악’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음악을 좀 들으신다면, 음악에 대해 할 말이 있으시다면 주저 말고 저에게 메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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