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누군가 누구를 더 많이 죽여야 끝이 난다. 인간처럼 같은 종을 그렇게 끊임없이 학살하는 류도 없는 것 같다. 오늘도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이 죽일 수 있는 기술에 골몰하고, 누군가는 하늘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
1914년 12월 24일 저녁. 무인지대에 버려진 시체들을 사이에 두고 참호 속에서 대치중이던 영국군과 독일군. 피냄새만 진동하는 절망의 공간 속에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독일군 쪽 크리스마스트리-위문용으로 보내진-에 하나둘씩 촛불이 켜지더니 수천 개의 촛불에 불이 켜지고, 트리를 밝힌 병사들은 캐럴을 부르기 시작했다. 넋을 잃고 바라보던 영국군 일부가 박수를 쳤고 머뭇머뭇하다 영국군 병사들도 캐럴을 부르며 적에게 화답했다. 박수가 터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양쪽 병사들이 참호 속을 기어 나와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악수를 나누고 담배와 비스킷을 건넸으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서로 가족과 고향 이야기를 하며, 다음 날엔 죽은 동료들을 함께 묻고 축구시합까지 벌였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불순한 해프닝에 놀란 장군들의 전열 수습으로 전쟁은 겨우(?) 다시 재개되었고, 결국엔 사상 최대의 사상자를 내며 전쟁은 종국을 맞는다.
제러미 리프킨이 쓴 <공감의 시대>는 첫 페이지를 1차대전 중 있었던 이 놀라운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로 열고 있다. 공감의 능력이야말로 인간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할 단어임을 역설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경쟁과 성과주의의 패러다임으로는 이제 새로운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시대는 소통의 시대이고 협력의 시대이다. 많은 이들이 취향과 가치로 모이고, 때로는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한다. 그 중심에 공감이 있다. 바야흐로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의 시대이다. 그리고 공감은 이제 인간의 본성이라는 위치에서 실용의 제단까지 내려오고있다. 돈을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인다. 경제도 정치도 공감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게 밥먹여주냐!”적 패러다임으로는 이해 못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밥먹여줄 거 같지 않던 것들이 밥을 먹여주고 있기도 하다. 소설가 조경란은 ‘필요한 구두는 없지만 갖고 싶은 구두는 있다’고,‘ 백화점’이라는 수필에서 고백하고 있다. 갖고 싶고, 보고 싶고… 이‘ ~싶고’라는 말을 씹어보고 또 씹어봐야 한다. ‘그게 밥먹여주냐!’적 사고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호모 엠파티쿠스의 시대에서는 감정이라는 단어가 요물이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한다. 요 감정이라는 놈을 뱀장수 뱀 다루듯이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왜 우는지 왜 웃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 말이 없는지, 왜 분노하는지. 그런데 그것은 공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으로 볼 때 가능한 것이다. 공감장애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유권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이 현 종 | 대표 CD - Chief Creative Director |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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