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ing is Everything
고령화 브랜드
노인으로 존중 받는 것과 그냥 노인이 되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브랜드의 관점에서 보면 늙어서 죽어버리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는 세대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죠.
오늘도 역시 비가 오는군요…. 출근길에 유리창에 뚝뚝 떨어지는 비를 보니, 정말 눈물이 뚝뚝 떨어질 뻔 했습니다. “또 비야?” 저번 주 내내 단 하루도 해가 비치지 않았는데, 이번 주도 그럴 모양입니다. 하루쯤 해가 나도 좋을 텐데…. 덮고 자는 이불도, 입고 다니는 옷도 축축하고, 내 주변을 둘러싼 공기마저 축축하니 기분도 컨디션도 꿉꿉하기 이를 데가 없네요. 사람은 해를 먹고 자라는 동물임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끼면서 회의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때쯤엔 좀 나아질까요?
너무 치명적인 한 마디, “넌 참 올드해”
얼마 전 천명관 작가의 <고령화가족>을 읽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이렇게 빨리 독파한 적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더라고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좋습니다. 평균 나이 49세의 다섯 식구가 한 집에 사는 이야기는 처량하면서도 흥미진진합니다. 그 모두가 아직은 엄마의 아들이고 엄마의 딸이지만 나이가 훌쩍 먹어 버린…. 나름의 이유로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지만 가족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는, 제목 그대로 고령화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책을 다 읽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가 가진 제품들은 몇 살이지? 나랑 같이 한 지 몇 년 된 거지?’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쓰는 스마트폰 브랜드는 저와 함께 한 지는 4년밖에 안 됐지만 브랜드 나이로만 보면 30살 정도가 됐고, 제가 찬 시계는 저와 함께 한 지는 20년이 됐지만(헉! 20년을 찼네! 라며 새삼 놀랐답니다) 브랜드 나이로만 보면 거의 저희 할머니 할아버지와 친구더라고요.
이 브랜드들도 나이 먹는 것이 우리만큼 두려울까요? 싫을까요? 아님, 자연스럽다고 생각할까요? 그들도 보톡스를 맞고 싶을까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을까요?
이렇게 혼자 재미있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작년 부산국제광고제(AD Star)에서 들었던 한 세미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바로 코카콜라의 세미나였는데요, 코카콜라는 127살이나 된 노장 브랜드입니다. 하지만 참 따끈따끈하고 새끈새끈해 보이지요? 세미나의 주제는 자신들이 얼마나 늙어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가 하는 것이었답니다.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한방에 보내버리는 방법은 “나 너 싫어”도 아니고 “너 정말 별로야”도 아닌, “넌 참 올드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이 말을 처음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사실이었거든요. 특히 우리네들처럼 ‘광고’와‘ 크리에이티브’를 생산해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요. 외모부터 취향, 보는 눈까지 올드해 보인다는 말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코카콜라는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올드’해지지 않기 위해서요.
일단 자신의 브랜드가 창의력을 발휘하는 대상을 항상 Young Generation에 맞춰보는 연습과 다각도의 분석을 한다고 합니다. 단 한 해도 놓치지 않고요. 왜냐하면 Young Generation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시대가 지날수록 그들의 생각과 문화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그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어른 브랜드, 먼 브랜드, 할아버지 브랜드가 되지 않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들을 한다고 합니다.
127살 브랜드의 Young한 노력
그 얘기를 듣다 보니 ‘아~ 그래서 저런 크리에이티브 활동들을 하는구나~’라고 떠오른 캠페인이 있습니다. 바로 코카콜라의 자판기 캠페인들입니다. 유튜브에서 많이 보셨겠지만, 코카콜라는 해마다 귀엽고 행복 돋는 아이디어들로 자판기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자판기 하나로 코카콜라는 선물도 됐다가, 우정의 상징도 됐다가, 개성의 무대도 됐다가, 국경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 아웃풋만 보면 그 아이디어 쉬워 보이지요? 원래 쉬워 보이는 아이디어가 정말 고민도 많이 하고 공부도 많이 하고 연구도 충분히 했을 때 나오는 아이디어라는 거, 우리끼리는 느낌 아니까~ 다 아시죠?
왜 자판기인지, 왜 캠퍼스에서 했는지, 왜 동전 투입구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았는지, 솔직히 생각해보면 해 볼수록 참 치밀하고 신선합니다. 얼마나 더 재미난 시도를 할지 궁금도 하구요. Young Generation을 이해하려 하고 가까워지고 싶어 하고, 마치 친구처럼 지내려는 127살의 브랜드를 보니 애처롭기는 하지만 쉽게 늙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사람의 인생으로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늙음이 아니라 연륜으로, 고집이 아니라 지혜로, 천대가 아니라 존중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인으로 존중 받는 것과 그냥 노인이 되는 것은 다르다고 봅니다. 특히 브랜드의 관점에서 보면 늙어서 죽어버리는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되는 세대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죠.
저도 이제 관록(?)이 있는 세대가 되다 보니, 제가 어릴 때는 그렇게도 증오하던 몹쓸 태도와 아집들이 종종 나옵니다. 그러고는 후회하죠. 아 나도 늙었구나…. 우리가 Young Generation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Young Generation을 공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고령화됨을 걱정만 하지 말고,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을 위해 시도하고 말을 걸어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브랜드는 어느 계절쯤에 있나요?
고령화된다고 전부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연륜과 지혜 말고도 더 강력한 ‘여유’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고령이니까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래가 볼 수 없는 점들도 발견할 수도 있고, 자신의 그때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볼 수도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매력이지 않습니까? 코카콜라의 저 캠페인들도 또래 세대의 브랜드라면 과연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대단한 여유가 있지 않으면 저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나이가 먹어가는 브랜드들이 마치 불로초를 먹은 것 마냥, 매해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늘 자신들의 편인 것처럼 생각되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다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단,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데 ‘난 그냥 철이 없으니까, 젊어 보이니까 괜찮아’라는 독단은 금물입니다.
소설 <고령화가족>에서 내일모레 50세인 주인공 인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인생의 가을쯤에 해당되는 시기에 도달해 있다.” 여러분이 맡은 브랜드들은 어느 계절쯤 와 있나요? 만약 여름이어도, 이렇게 비 오는 장마철은 아니시길 기원합니다.
조성은
ACD l chocopy@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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