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seBell
광고의 神
1492년, 콜럼부스 신대륙 발견!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음에도 연대까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꽤나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 같다.
지구는 평평해서 가다 보면 낭떠러지로 뚝 떨어질 거라는 통설을 깨고 과감히 전진을 했던 이 모험가는 위인전의 단골손님이었던 걸로도 기억되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역사라며 그이를 마구 비난했던 기억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디언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고 허무맹랑한 날조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수천,수만 년을 경작하고 있던 땅에 들어와 오순도순 살던 사람들을 죽임으로 내몰고 신대륙의 발견이라고 축하해마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한 주(州) 정도는 뚝 떼어서 인디언들에게 줄 법도 한데 말이다.
꽃샘추위에 오들오들 떨다 들어와 차 한잔 마시는데, 갑자기 인디언 썸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가, 그만 생각이 미친 말처럼 북아메리카 대평원까지 내달려버렸다. 실은 꽃샘 추위라는 말이 예쁘기도 하거니와, 추위가 가시지 않은 한낱 봄바람을 이렇게 언어화하는 사람들의 심사가 참으로 궁금하던 차, 인디언 썸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시점에 대한 비유인데, 언어를 통해 의미와 감정을 교환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마음은 동이나 서나 매한가지인 것 같아 호기심이 발동한다.
꽃샘추위가 뾰로통한 입술이라면 인디안 썸머는 기대고 싶은 어깨다. 꽃샘추위가 뜻밖의 태클이라면 인디안 썸머는 뜻밖의 행운이다. 꽃샘추위가 신고식이라면 인디안 썸머는 환송회다. 꽃샘추위가 그래도 기쁨이라면 인디안 썸머는 그래도 슬픔이다. 어쨌든 꽃샘추위나 인디안 썸머나,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는 그 무엇인데, 생명이 생기고 의미가 생기고 이야기가 생기게 되었으니, 언어의 힘이란 놀라울 따름이다.
가끔 업계 사람들이나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광고의 신은 말이야, 저 ‘죽부인’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 사람이야. 봐, 그냥 대나무 통발에 불과한 놈한테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줬으니 말이야.” 광고는 어떤 관점에서 잊혀지지 않는 의미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이며,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기이며, 어제까지 아무 관계도 없던 것들을 지금부터는 없어선 안 될 관계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 존재를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것은 권력의지도 아니고 쾌락의지도 아니고 바로 의미 의지이다’ 라고 말한 빅토어 프랑클의 통찰은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거니와 광고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생에 있어서 ‘의미’는 사는 이유(Reason to Live)가 되지만, 광고에 있어서 ‘의미’는 사는 이유(Reason to Buy)이유가 된다. 오래 전 모 아이스크림 광고를 할 때 아이스크림 이름을 영화제목으로 지어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엄마는 외계인,’ ‘아이 엠 샘’ 같은 이름을 추천하면서, 이런 말로 광고주를 설득했었던 기억이 있다. “제가 여러분을 처음 만나서 ‘안녕하세요〜 이현종입니다’ 하는 것과 ‘안녕하세요〜 넙치입니다’ 하는 것과 어떤 쪽이 더 기억에 남으세요?“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많은 분들이 이해를 해주는 쪽이었고, 제품과 광고는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가끔은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에겐 의미 없는 것이 되기도 하고,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관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현종
CCO (Chief Creative Officer) |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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