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fference Trend
‘유명세’ 먹고살기
현대사회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기술은 스마트폰의 앱을 설치하고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인간관계에 만족하고 그것에 충실하기’일 것이다.
나는 보여진다, 고로 존재한다
유럽으로 2주간 신혼여행을 떠난 지인이 매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글을 업데이트했다.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 노출되는 데 익숙해서인가 했는데, 가만 보니 일반 직장인들도 신혼여행 가서 도통 SNS 업데이트를 포기하지 못한다.
물론 10년 전 20년 전 신혼여행에도 카메라는 늘 첫째가는 동행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둘의 신혼집에 장식할 사진, 둘만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신혼여행을 가서도 둘이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사진을 보정해 실시간으로 올리고 반응을 본다. 사진이나 글을 올리느라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올린 트윗에 대한 반응을 보느라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그 뿐인가. 얼굴이나 신상을 드러내지 않고 몇 마디의 글과 자신의 일상을 과장해서 기록한 트윗들, 혹은 평소의 그 사람보다 훨씬 과감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수많은 새로운 포스팅. SNS는 자아를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수소통과 같은 역할을 한다. 어떤 패션지 에디터는 ‘유명한’ 사람과 어울린 사진만을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소문났다. 잘 나간다는 축에 속하는 소설가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화감독, 만화가의 경우 1년에 한 번 만나도 꼭 사진을 찍어, ‘무심한 듯 시크한’ 사진설명을 달아 올린다. 이때 얼굴만 보면 알 만한 사람을 마치 옆집 사람처럼 편하게 대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다. 인맥을 과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셀러브리티’화시키는 일종의 전략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상대의 유명세’에 따라 약속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게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3년의 한국 사회에서 한 개인의 유명세를 가늠하는 것이 오프라인에서 맺는 관계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보여지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이 뒤를 이었다. 한 끼를 먹어도 맛집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올려야 하고, 공연을 가든 여행을 가든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는 건 필수다. 거기에 따른 반응에서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쾌감,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만족감을 얻기 때문이다.
스피노자형 인간이 주목받을 수 있을까
심리학자 이나미의 <한국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은 이전보다 집단지향적인 면이 점점 줄어가는 사회현상과 더불어 고독과 침묵을 두려워하는 모습에 주목한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문화를 발전시킨 주역은 고독하게 남겨졌기 때문에 눈물을 삼켜 가며 결핍과 고독을 극복해 간 아웃사이더들이다. ‘홀로됨’과 ‘침묵’을 즐길 줄 아는 배짱이 자기 개성을 찾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는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예로 라이프니츠와 스피노자를 들고 있는데, 라이프니츠는 머리가 무척 좋았지만 이런저런 모임과 직함들을 너무 좆는 바람에 정작 자신의 철학 연구를 소홀히 해서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반대로 혼자 안경을 만들면서 고독한 삶을 살았던 스피노자는 세계 지성사에 독특하고 의미 있는 궤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현대사회에서 스피노자형 인간이 주목받을 수 있을까. “새로운 소통 수단과 명품이 등장하면 재빨리 쓸 줄 아는 능력 있는 얼리어답터와 신상남·신상녀 들이 서로 어울리며 재미있는 인생을 사는 것도 뭐라 할 일은 아니다. 그들에게 혼자 지내면서 창조적인 시간을 가져 보라고 권하는 것 역시 무리다.”
오히려 인터넷과 SNS라는 도구 그리고 TV의 수많은 채널들은 ‘충분히 멋지지 않아도’ 자신을 과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제 우리는 어떤 삶의 방식이 타인의 눈에 멋지게 보이는지를 그런 매체를 통해 금세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법을 ‘카피’할 수 있다. 유명 블로거의 경우 자신의 사진이나 글을 도용당하는 일을 수시로 겪는다. 아예 모든 글을 그대로 복사한 카피 블로그를 만들거나 카피 트위터 계정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정보를 걸러 듣고, 불필요한 전달을 자제하는 것도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덕목이지만, 애초에 소셜네트워크는 절제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다. 여기서 ‘나 빼고 다른 모든 사람이 여유롭게 살고 있다’는 착각과 현실의 어려움을 돌파하는 힘의 부족이 생겨난다. 그러니 자신의 일상을 더 과장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더 그럴듯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글과 사진을 본 사람들은 또 자신의 일상을 과장해 과시하기 시작한다. 유명세와 ‘말빨’이 센 사람들에 위화감을 느낀 사람들이 ‘좋아요’ 버튼이 있는 페이스북에서 편안함을 찾는다는 농담도 있다.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일상만 포스팅한다. 그 공간에서 애인이나 배우자는 언제나 소소한 이벤트를 해주고 아이들은 귀여움을 떨고 대인관계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즐거운 모험이다.
사실 남들은 당신에게 별 관심이 없다.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실제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때로 엉뚱한 출구를 찾기도 한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건 연예인들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독특한 언행 때문에 조명 받는데, 독특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경우도 많다. 성형수술을 여러 번 했다거나 입지도 않는 옷이 몇 백벌 있는 쇼핑중독이라거나 하는 사례가 잇달아 소개된다. 고등학생임에도 돈을 많이 쓴다면 ‘신흥 귀족’이라는 타이틀이 달린다. ‘진짜 나’로 사는 법 ‘진짜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없다는 불안이 SNS 중독이나 <화성인 바이러스>의 기기묘묘한 사례 안에 숨어있는 건 아닐까. ‘페이스북과 트위터 연결은 늘어나는데 왜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는 줄어들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셰리 터클의 <외로워지는 사람들>은 ‘공감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를 다룬다. 상시 접속 커뮤니케이션과 속도 및 간결성을 내세우는 테크놀로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줄여놓았다는 것이다.
‘조명 효과’라는 게 있다. 자기중심주의와 관련이 깊은데, 우리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역시 나를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고 여긴다. 문제는 인간이 사실 타인의 일에는 사실 무관심하다는 데 있다. 모든 타인은 그저 자기 자신만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다. 파티에서건 인생에서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에 시달리지만 정작 그만한 관심은 얻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한 과장이 필요해진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닿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사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관계를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인간의 정신건강에 필요한 신체접촉을 방해한다. ’마주앉은 친구들이 대화는 하지 않고 제각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광경, 나란히 앉은 연인들이 각자의 친구들과 카톡을 하며 소일하는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건 설령 나쁜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무관심보다는 주목을 받고 싶다는 마음,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보다 인터넷상에서 존재하는 관계에서 더 큰 만족을 느끼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현대사회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기술은 스마트폰의 앱을 설치하고 사용법을 익히는 것보다 현실에서의 인간관계에 만족하고 그것에 충실하기일 것이다. ‘진짜 나’로 사는 법. 일단 스마트폰에서 떨어져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자. 타인의 ‘반응’에 중독된 것은 비단 <화성인 바이러스> 출연자들만은 아니다.
이다혜 ㅣ 씨네21 기자
<씨네21> 기자, 북칼럼니스트. 지은 책으로는 <책읽기 좋은 날>이 있고, <공형진의 씨네타운> <박혜진의 영화는 영화다>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문화에 관련한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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