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양약 대신 ‘보약’이라고 하면서 ‘한약’을 먹어 봤을 것이다. 최근의 ‘한의약’은 우리 고유의 의학으로서, 세계적으로도 예방 및 치료의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나아가 옛날의 고리타분한 의학이 아니라 무병장수의 꿈을 실현해줄 ‘미래의학’으로 재조명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국내에서의 인식은 이러한 높은 위상과는 달리 단순히 ‘보약’ 정도로만 여겨지는 게 현실이었다.
‘2010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 처음 이 엑스포를 기획한 우리는 이렇듯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과거의 학문’이 아니라 ‘미래의 과학’으로서의 한의약의 실체를 정확하게 보여주어 더 쉽게 이해하고 더 가까이 체험시키는 데 초점을 두었다. 컨셉트 또한 한의약의 올바른 모습과 미래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한방의 재발견’으로 정하고, 이를 ‘제천’과 연결시켜 스토리화하고자 했다.
사실 제천은 인구 14만 명의 지방 소도시로, 그동안 ‘제천’하면 떠오르는 건 ‘박달재’ 정도였다. 물론 최근에 ‘제천국제영화음악제’ 및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 유치 등을 통해 영상산업을 키우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영상산업은 부산과 부천 등 여러 도시에서 이미 선점한 산업이라 제천시만의 뚜렷한 컨셉트라고 할 수 없었다. 또한 기타 산업동력 역시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제천의 인구는 점점 인근 도시인 원주 등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므로 당연히 제천만의 독특한 컨셉트가 필요했다. 제천은 그 대안으로 시대적 트렌드인 ‘웰빙과 휴양’을 바탕으로 지역적인 특성(청풍호)과 산업적 특성(대규모 약재시장 및 황기 생산·유통의 메카), 학문적 특성(세명대 한의학과)을 살려 ‘건강 휴양도시 제천’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했다.
제천만의 스토리를 담은 ‘한방의 재발견’
‘2010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는 9월 16일〜10월 16일까지 총 31일간 제2바이오밸리 약 17만평(주차장 포함)의 부지에서 열렸다. ‘한방의 재발견’을 테마로 하고, 한방엑스포를 통해 삶의 질 향상과 한방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생기(生氣)·정기(精氣)·활기(活氣)’를 모티브로 해서 제천의 스토리와 연결한 것이 그 특징.
주제 전시존인 미래한방관과 한방생명과학관에서는 한의약의 원리부터 미래 산업으로서의 한의약까지 보여주었는데, 국책기관인 한의학연구원을 통해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정확한 사상체질 진단기를 개발, 국내 최초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상체질을 진단해주기도 했다. 또한 약초탐구관과 전통한의원에서는 다양한 약초의 종류와 효능, 한의약의 치료과정 및 약재 제조과정 등을 보여주어 교육적인 효과를 높였다. 특히 약초탐구관에서는 <동의보감> ‘탕액’편에 나오는 약초 300여 종의 그림과 약재 모습·액침 등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마련, 학생들과 한의약 관련자들에게 최고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산업존은 한의약의 세계화를 보여주고 산업으로서의 한의약 모습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공간. 각국의 전통의학과 대체의학을 보여준 세계전통의학관과, 전국의 명문 한방병원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보여준 명문 한방병원관, 한의약 관련 20여 기관과 지역이 참여한 한방특구관, 한의약의 산업적 모습을 보여준 산업관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인류의 마지막 약재의 보고’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약재와 실제 아마존에서 의사의 역할을 하는 주술사, 그곳에 사는 말로까와 아마존 부족민을 직접 초대해 소개함으로써 관람객은 물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도 했다.
방도 체험하고 공연도 즐기고~
이번 엑스포는 다양한 문화체험행사를 통해 관람객이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야외상설무대에서는 엑스포 개·폐막식을 비롯해 지역 문화단체 및 전문공연단의 공연과 패션쇼·콘서트 등이 매일 매시간 펼쳐졌다. 한방체험장은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체험이 가능하도록 운영됐는데,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사암침봉사단의 침치료실과 반신욕 체험장에는 항상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릴 정도. 또한 에어캐빈체험장·세명대 한방치료관 등에서도 최대한의 인원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다.
엑스포극장에서의 악극 <울고 넘는 박달재>, 뮤지컬 <허준> 공연 및 한방 관련 유명 전문가들의 강연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프로그램. 그 외에 한방음식체험관·다도체험장 및 각 전시관 내부에서 진행된 체험 이벤트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다양했다. 또한 이번 엑스포에서는 인체경락과 기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규명해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봉한학 국제심포지엄‘을 비롯해 ‘발효한약 국제심포지엄’ 등 8개의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사실 ‘행사준비’하면 ‘비와의 사투’라는 말부터 생각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행사장은 원래 공장부지로, 바닥이 마사토이고 높낮이가 3도 이상 차이가 있는 환경이었다. 행사장 계획 때부터 이에 따른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으나 예산상의 문제로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행사장 조성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역시 우려가 현실화되었다. 행사 두 달 전부터 매일 비가 내린 것이다. 특히 행사 한 달을 남겨두고는 30일 중 25일 강수기록까지 보였으니 천재지변이 따로 없었다.
8월 15일 광복절 새벽. ‘꽝! 꽝! 찌지직〜’ 번개소리와 베란다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 놀라 잠자다 말고 일어났다. 그때 시간은 아마도 3〜4시경. 칠흑 같은 어둠과 비를 뚫고 행사장에 도착했을 즈음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더 심하게 쏟아졌다. 얼마 후 미당천 측면 법면이 터져 목재계단이 떠내려가기 일보직전이고, 행사장 곳곳엔 물길이 생기더니 사방 천지가 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 뿐이랴. 떠내려 온 마사토에 배수관이 완전히 막혀서 전시관 내부가 침수되는 상황이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30분 사이에 벌어진 일.
그날 새벽부터 조직위와 대행사 모두 3일간 밤새 복구작업에 몰두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 사람이 하면 불가능한 게 없음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날의 폭우가 어쩌면 행사를 더 성공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듯하다. 폭우로 조직위와 우리는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예산상의 문제로 보류되었던 수해대책을 진행하게 됐고, 그 결과 행사 2주를 남겨두고 닥쳐온 태풍과 네댓 차례의 집중호우에도 큰 문제없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정말 2년간 모든 노력을 다 바친 행사, 그리고 몇 번의 난관과 어려움…. 하지만 결국 당초 예상한 105만을 휠씬 넘은 136만 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2010 제천국제한방바이오엑스포’는 ‘2002 오성 바이오엑스포’에 이어 HS애드가 진행한 단일 엑스포 중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엑스포다. 초기, 지역민과 공무원들의 엑스포에 대한 인식부족과 한방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또한 행사 콘텐츠 면에서도 ‘한의약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떻게 쉽게 전시에서 이해시킬 것인가’부터 주 타깃이 되는 ‘노인’들의 안전 문제 등 운영에서도 변수와 어려움이 많았던 행사였다. 그러나 이러한 난관들도 결국 노력과 창의성으로 헤쳐 나갈 때 하나하나 풀렸다.
폐막식과 함께 폭죽이 터지던 순간. 이제 엑스포가 끝났구나 하는 허탈감과 함께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자신감이 교차되었다. 그 묘한 감정은 아마도 우리가 누리는 특권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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