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UN 기후협약회의가 개최됐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고, 반기문 UN총장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분야였던 만큼 지난 1997년 교토 총회와는 달리 130여 개국 정상이 모두 모여 기후변화를 논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선진국과 개도국, 저개발국 간의 의견 차를 거의 좁히지 못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환경 문제에 대한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접근은 정부적 차원의 소극적인 모습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기업들은 너도나도 ‘환경 친화적(Environmentally friendly)’이고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대해 이야기하며 소비자에게 어필하고 있다.
경기불황의 터널을 거의 다 빠져 나왔다고 생각한 것일까? 최근 영국에서는 유기농ㆍ공정무역을 이용한 기존의 단순한 그린마케팅(Green Marketing)을 넘어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다양한 전략들을 들고 나왔다. 물론 이런 현상과 기업의 전략에 의구심을 품는 전문가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과거에는 중요성이 거의 강조되지 않았던 지속가능성에 대해 지금 영국은 조금 시끄럽다.
영국에 불고 있는 지속가능성 열풍
영국 최대 유통업체 중 하나인 막스앤스펜서(Marks & Spencer, 이하 ‘M&S’)는 3월 첫째 주 지속가능한 경영전략인 ‘플랜A’를 발표했다. 플랜A는 M&S가 앞으로 5,000만 파운드(875억여 원, 2010년 3월 환율 기준)을 투자해 2015년까지 세계 최고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하는 유통업체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요지이다. 이를 위해 100가지 세부사항(100 Commitments)를 수립했으며, 이를 하나하나 진행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 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3만 6,000 개의 모든 제품 라인에 유기농 인증 혹은 공정무역 인증 마크 등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윤리적, 친환경적 시스템을 반영시키겠다는 것이다.
M&S와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세인즈버리즈(Sainsbury’s)도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에 동참했다. 세인즈버리즈의 CEO인 저스틴 킹(Justin King)은 지난 2월 16일에 열린 슈퍼마켓 공정무역회의 기조연설에서 공정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세인즈버리즈의 예를 설명했다. 공정무역은 지속가능한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 중 하나이며, 세인즈버리즈 역시 활발한 공정무역 시스템 도입을 통해 강력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세인즈버리즈는 CEO의 기조연설이 있던 날 자신들이 미국의 월마트를 제치고 공정무역 상품 거래 부문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통업체가 되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공식석상에서의 발언과 공정거래 상품 규모를 따로 카테고리화해 규모를 측정한 것 자체가 세인즈버리즈의 지속가능한 경영에 대한 관심과 욕심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맥도날드 유럽, 로고부터 간판까지 Green으로 교체
이러한 ‘녹색’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열풍은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 냈다.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경영전략에 ‘지속가능성’을 포함하고 개발하기 시작하자 지속가능성과 그린 마케팅만을 전문적으로 대행해주는 에이전시들이 생겨난 것이다. Go Green Marketing(www.gogreenmarketing.co.uk)이라는 영국의 에이전시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도움’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전략수립 대행 및 노하우 전수를 해주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이 작은 에이전시는 기업에 단순한 한두 가지 미시적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선물세트(Packages)’ 개념의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기업의 올바르고 효율적인 지속가능한 경영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이러한 현상을 5가지로 나누어서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녹색상품들이 상품의 가치를 잘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자가 충분히 구매할만한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이미 다른 일반 제품보다 싸고 질 좋은 녹색 상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둘째, 소비자들의 정보 접근성 강화 역시 녹색 붐을 일으키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온라인 검색을 통해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환경이나 윤리적 분야와 관련 있는 기업과 제품을 찾는다는 것이다. 셋째, 연예인들이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행보다. 느와르(Noir) 같은 유명 패션업체들이 친환경 소재 제품을 론칭하기 시작했고, 연예인들도 관심을 보이며 협찬을 받아가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행보는 일반인들의 관심과 따라 하기를 유발하게 마련이다. 실제로 얼마 전 <해리포터>의 여주인공이었던 엠마 왓슨의 공정무역/유기농 마크가 부착된 패션 스타일은 큰 이슈가 됐었다. 넷째, 파트너십의 등장이다. 소비자들은 윤리적, 환경적 부분에 있어서 기업의 행보를 그다지 믿지 않는 성향이 있는데, 기업들과 친환경 비영리기구와의 파트너십이 그 불신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제품에 대한 반영이다. 애플 사는 맥 북 프로 노트북 모델에 재활용이 가능한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하고 포장재의 비율을 전 모델 대비 34% 줄였다. 소니에릭슨이나 모토로라도 재활용한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들고 일회용 포장용기를 회사로 무료 반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기업들의 관심과 녹색사랑은 끊이지 않는다. 맥도날드 유럽(McDonalds Europe Restaurant)은 패스트푸드의 이미지적 단점을 친환경적인 측면으로 리포지셔닝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로고의 바탕, 매장의 간판, 홍보 캐릭터 등을 전부 녹색으로 변경하는 프로젝트를 단행했다. 유니레버(Unilever) 역시 2010년 2월 CEO인 폴 폴맨(Paul Polman)이 직접 나서 기후변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모든 브랜드들에 이러한 노력을 집중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에 대해 정치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기업의 역량과 능력으로 소비자들을 자극시켜 지속가능한 제품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고, 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소비자와 올바르게 소통하고 있는가
기업들의 지속가능성 전략 발표나 브랜드 로고 변경, CEO의 공적 발언 등이 쏟아지는 요즈음의 녹색 붐 현상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을 가진 전문가들도 많다. 기업들의 이러한 노력이 실제적으로 소비자들과 올바르게 소통하고 있는지를 되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간판과 로고를 녹색으로 바꾼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고 문을 나서면서 맥도날드와 지속가능성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얼마나 인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햄버거가 만들어지는 전체 공정에 큰 변화가 없고 패스트푸드의 영양 불균형과 일회용 포장재의 낭비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이는 그 어떤 기업의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 그린마케팅에 뛰어드는 활동 자체가 실질적인 사회적 이득 혹은 기업적 이득을 창출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게다가 그 방법과 전략에서 과연 소비자들과 정말 진실하게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앞서 예를 들었던 M&S의 ‘플랜A’나 세인즈버리즈의 사례도 비판을 받는다. 플랜A 같은 경우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그 의도는 환영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상품 라인을 가동하고 있는 M&S의 이런 강력한 조치는 기업 전체의 민첩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공급자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과중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세인즈버리즈의 역시 언론 플레이에 의존한 알맹이 없는 홍보전략이라고 비판받는다. 세인즈버리즈는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려는 실질적 노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지속가능성, 기후변화, 환경/윤리적 소비 분야이기 때문에 단지 그러한 유행을 따라가려 하고 미디어의 영향력에 편승하려는 시도일 뿐이지 미디어의 관심이 바뀌면 다시 금방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단순히 마케팅 효과만을 누리기 위한, 소비자를 눈속임하는 것이라는 점, 지속가능한 경영이라는 핑계로 마케팅 전략에 투자되는 막대한 돈의 최후는 결국 소비자에게 제품가격 상승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이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좀 더 발전적인 대한 접근을 위해 The Branding for good team의 수장인 Marie Ridgley가 제시하는 ‘지속가능한 브랜드를 위한 6가지 포인트’는 눈여겨 볼 만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