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04 : Special edition - 심리학으로 접근하는 문화역류의 네 가지 이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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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류의 사회심리학 >

심리학으로 접근하는 문화역류의 네 가지 이유
최인철 I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ichoi@snu.ac.kr



필자가 김치를 가장 많이 먹었던 시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유학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도 한국 음식이 먹고 싶었던지...
가장 서구적인 문화에서, 가장 서구적인 학문이라고 하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미국식 생활방식을 철저하게 따르겠노라고 독하게 다짐을 하면서 생활하였건만,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김치에 대한 향수는 더 커져만 갔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 필자는 옛날 버스안내원(그때는 ‘차장’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이 가끔 그리워진다. 그리 세련되지 않은 유니폼에, 때로는 ‘빵 모자’라고 불렀던 모자까지 쓰고, 대개는 유쾌하지 않은 콧소리를 내면서 정류장을 알려주곤 했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것이었다고 이렇게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런데 옛 것에 대한 이런 향수는 필자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왜 사람들은 요즘 들어 부쩍 옛 것을 찾고자 할까? 왜 이런 문화역류 현상(혹은 향수 현상)이 이렇게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심리학적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1. 개인주의적 동기와 집합주의적 동기의 상호반응

첫째, 인간은 항상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동기를 동시에 추구하며 그 동기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equilibrium)을 유지하려는 강한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한편으로는 자신이 남과 다른 독특한 존재로서 남들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려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개성을 추구한다.
이런 동기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개인주의적 동기’라고 부르자.
그런데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주의적 동기를 강하게 가지게 하는 큰 요인 중 하나는 사회의 변화이다. 사회가 서구화, 산업화, 그리고 정보화할수록 사람들은 자신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간주하여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개인주의적 동기를 강하게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상반되는 동기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이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너무 과도하게 튀는 것을 경계하며 다른 사람과의 유사성을 추구한다. 자신을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고 보고 싶어하는 동기, 이를 여기서는 ‘집합주의적 동기’라고 하자.

이 두 동기는 모든 개인에게 동시에 존재하며, 어느 동기가 강하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더 집합주의적인 사람이 된다.
이 논리는 사회 전체에도 적용된다. 어떤 사회가 극도의 전통주의적 사회였을 때, 그 구성원들은 자신만의 독특성을 추구하는 경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부쩍 독특한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개인주의적인 힘이 한 사회에 과도하게 작용하면, 그 사회에서는 다시 집합주의적 동기, 즉 전통적인 것을 추구하는 힘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사회이든간에 그 사회가 개인주의적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 그에 반대되는 과거에 대한 추구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보여지는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이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들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2. 외부적 속성에 기인하는 한국인의 정체성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점은, 이러한 과거로의 회귀가 한국인의 정체성 혹은 한국인의 자아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동창들을 연결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 ‘아이러브스쿨’이다.
이 인터넷 사이트가 서양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자신의 내부적인 속성들, 예를 들면 자신의 선호, 신념, 가치, 태도 등에서 찾는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과 신념이나 태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룬다. 그러므로 미국과 같은 경우 정치인들이 한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이적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체성은 한 개인의 내부 속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외부적 속성들, 즉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느 학교를 나왔고, 부모가 누구이며, 그리고 누구와 친분 관계가 있는가 등이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당들은 지역에 근거하여 존립하고 있으며, 신념과 무관하게 정당을 옮길 수도 있는 것이다. 비록 이 글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외국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우리 한국인에게 아주 심한 것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고, 지역 감정을 그토록 버리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여러 영역에서 일어날 수는 있지만,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과 관련이 되어 있는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다. ‘아이러브스쿨’의 성공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3. 완전히 뒤바뀌지 않는 내면심리

위의 두 설명들이 사회의 변동과 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비교적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설명이었다면 다음의 두 설명들은 개인내의 심리적 원인들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가 옛 것에 대한 선호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했을 때, 과연 우리의 옛 태도나 선호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정말 없어지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과거로의 회귀나 향수는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태도 형성과 변화에 대한 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태도가 옛 태도를 대치할 때 옛 태도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즉, 어떤 사람이 여성에 대해 전통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가 이제 새로운, 보다 진보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고 할 지라도 그의 옛 태도는 마음속에 은밀하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은밀하게 남아있는 태도는 어느 순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떨치고 나온다.
예를 들어, 술을 과도하게 먹은 경우 자신도 모르게 여성 폄하적인 실언을 하게 되는 경우가 그 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렇게 은밀하게 남아있는 태도가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새 태도보다 더 영향력이 클 수도 있다.
옛 것에 대한 우리들의 선호나 태도는 급격한 사회의 변동을 거치면서 마치 우리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것으로 착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우리의 의식 밑으로 숨어서 은밀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에 대한 향수는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가 버렸던 옛 것들에 대한 선호라기보다는 우리 속에 끈질기게 살아있는 우리의 원래 모습을 재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변화, 저장되는 인간의 기억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점은 과거에 대한 향수는 ‘인간 기억의 마술’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의 것을 있는 그대로 저장했다가 그대로 인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기나 욕구 등에 따라 때론 왜곡하기도 한다.
그 특성 중 하나로, 우리의 기억은 우리로 하여금 옛 것에 대한 좋은 점만을 기억하게끔 마술을 부린다. 필자는 가끔 어린 시절 시골에서 먹었던 간식거리들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 시절 즐겨했던 놀이들을 그리워한다. 그 시절 시골에서는 특별히 가지고 놀 기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예를 들면 비석치기와 같은 간단한 놀이들밖에 할 수가 없었다. 또 특별히 먹을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생라면을 그냥 먹거나 라면 스프를 먹곤 하였다. 그 당시 그것은 넉넉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은 그런 놀이나 간식거리에 얽힌 좋지 않은 것들은 모조리 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기억하게 하여 이제는 아주 추억과 낭만이 가득한 것들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명절때마다 그 지독한 교통난을 경험하고서도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것이 바로 세상 사는 재미’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옛 것이 잊혀지고 새 것이 도래한 것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다. 대체로 그 옛 것들이 새 것에 비하여 불편하거나, 맛과 멋이 떨어지거나 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차장이 있는 시내버스를 탈 수 없다. 그것이 불편하거나 비경제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들에 얽힌 불편하고 좋지 않았던 기억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좋은 것들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버스 차장이 입었던 그 유니폼, 그 모자, 그리고 퉁명스럽던 그 목소리, 그 모든 것이 이제는 그리워지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에 대한 향수는 일정 부분은 이러한 기억의 마술에 근거하고 있다.

문화 역류, 혹은 향수의 원인을 한 마디로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 말고도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는 급격한 사회의 변동에 사람들이 적응하고 때로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점이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