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들은 익숙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꿔야 할 것들은 모두 ‘익숙한 것’들에 있죠. 익숙하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 바꾸면 크게 달라질 것들. 그래서 익숙함은 익숙함을 버리고 새롭게 보일 만한 아이디어를 찾아야 합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내전이 지속될 때마다 우리는 난민을 마주하게 됩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국경을 걸어 잠그고 불어나는 난민 수용을 거절하죠. 하지만 그 난민 중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면 어떨까요?
2015년 서유럽에서 가장 큰 난민촌인 프랑스 칼레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이 등장합니다.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라는 캡션과 함께. 그는 스티브 잡스입니다. 난민촌에 뱅크시가 그린 그라피티로, 초기 매킨토시 컴퓨터와 난민을 상징하는 짐꾸러미를 들고 있습니다. 뱅크시는 이 작품에 대해 ‘미국에 엄청난 세금을 내는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이주민의 아들이었으며, 미국이 시리아에서 온 이주민을 받아들였기에 애플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주민 나아가 난민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가지고 있을 때, 뱅크시는 스티브 잡스의 그라피티 하나로 새로운 시각을 만들었습니다. 난민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미래의 이웃이라는 시각으로.
집 없는 강아지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
사료 브랜드 페디그리(Pedigree)에 따르면, 미국에서만 310만 마리에 이르는 개들이 보호소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보호소에 맡겨진 개들 중, 절반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누구나 집 잃은 불쌍한 개를 보면 관심을 갖지만, 바쁜 생활 속에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죠. 그렇다면 바쁜 현대인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이 집 없는 개들과 가까워지게 할 수 있을까요?
페디그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집 없는 보호소의 개들과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가까워질 수 있는 세상. 이른바, Fosterverse. 개를 키울 수 있는 메타버스입니다. 가상 세계 플랫폼인 Decentraland에 가상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누구나 ‘가상의 개’를 입양할 수 있습니다. 이름도 있고, 살아온 배경도 있죠. 개들의 특징도 알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고요. 사실, 이 개들은 실제 생존하고 있는 보호소의 개들입니다. 가상 세계에서 이 개들에 대해 점점 더 가까워지고 교감하게 되면, 실제로 입양할 수도 있고 기부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부담 없이 시작하고,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방법이죠.
참여하려면 Fosterverse에 들어가서 보호소의 개들 중, Decentraland에서 키우고 싶은 개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개의 아바타를 다운로드한 다음, Decentraland에 업로드하는 거죠. 그때부터 새로운 세계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현대인에겐 개를 임시 보호하는 쉼터보다 메타버스가 훨씬 더 가깝고 친숙한 곳입니다. 페디그리는 최초로 ‘Fosterverse’를 만든 것에 뿌듯해합니다. 더 많은 개들이 더 많이 가정을 찾아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알츠하이머를 체험한다는 것
기억을 상실하는 증세로 가장 잘 알려진 알츠하이머. 우리나라는 치매라고 부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 병은 기억을 잃는 것으로만 막연히 알려져 있죠. 이에 독일의 비영리 단체인, 알츠하이머 연구 재단(Alzheimer Forschung)은 환자들이 세상을 어떻게 맞닥뜨리는지 더 실감 나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알츠하이머를 모르는 이들에겐 도움이 절실한 증세를 간접 경험하게 하고,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는 이들에겐 공감과 위로를 건네기 위해.
화면은 어느 여성의 시점뷰(POV)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또렷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세상이 디지털 그림처럼 픽셀이 깨지고 번져 보이며, 아는 사람이 낯선 사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누군가는 옷을 입지 않고 있으며, 말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해집니다. 모든 게 평소와 달라 당황하게 되죠. 입고 있는 옷의 컬러가 다르게 보이기도 하며, 커피를 넘치게 따라서 손을 데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순간, 위험을 마주하게 되는 질병. 영상은 틱톡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Data moshing 기법과 시점뷰를 활용해, 환자의 경험을 실제 경험처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Data moshing은 화면이 번지고 깨지는 것처럼 표현되는 기법입니다.
병이란 것은 간접 경험하기 힘든 영역입니다. 알츠하이머 연구 재단은 그 무지한 영역을 알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닥친 어려움을 살려냈습니다.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은 문제를 인지했을 때 시작되니까요.
미처 몰랐던 인터넷 속의 편견
아직 세상은 온전히 평등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남녀차별은 많이 완화됐지만 여전히 편견과 부당함이 잔재하고 있죠. 여성 스포츠인을 위한 프로젝트,‘Corret the internet'은 그중, 스포츠에 퍼진 편견에 대해 얘기합니다. 미처 몰랐지만 알게 되면 놀라운 사실.
영상엔 여자 어린이가 스타디움에 등장합니다. 인터넷에게 묻죠. ‘국제 축구 대회에서 가장 득점을 많이 한 선수는?’ 인터넷은 대답합니다. 118점을 기록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이번엔 질문을 바꿉니다. ‘크리스틴 싱클레어는?’ 그러자 그녀는 190점을 기록했다고 답합니다. 아이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최다 득점 선수는 크리스틴 싱클레어잖아...’ 인터넷은 답이 없습니다. 이 대답은 실제 검색 결과입니다. 팩트로는 포르투갈의 호날두보다 캐나다의 싱클레어가 더 높은 득점을 기록했지만 인터넷은 남성 선수 위주로 대답을 찾아내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테니스 선수의 경우, 가장 오래 1위에 랭크됐던 선수를 검색하면 373주를 기록한 남성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팩트는 377주를 기록한 여성 선수, 슈테피 그라프입니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인터넷에 존재하는 편견입니다. 이 사실들은 DDB 뉴질랜드가 FIFA 여자 월드컵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알게 됐다고 합니다. 검색하다 보니, 여자 선수들도 남자 선수들 못지않은 우수한 기록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 거죠. 여성을 함께 입력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입니다. 그래서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 속 편견을 함께 찾고 함께 고쳐가자고 합니다. 각자가 발견한 편견들을 그대로 두지 말고, 고쳐달라고 피드백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면 더 많은 팩트들이 발견되겠죠.
사람이 만든 인터넷 세상. 그 안에는 실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편견들이 그대로 옮겨가 있습니다. 이제 그 사실을 새롭게 발견했으니, 고쳐가자고 말합니다.
누구도 지나칠 수 없도록
늘 있던 것을 늘 있던 곳에 두지 않고 장소를 옮기면 예술이 됩니다. 크기가 커지면 압도적인 느낌까지 주죠. 거리의 설치 예술에 시도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노숙인 자선단체 ‘Crisis UK'는 이 방법을 자신들의 캠페인에 적용했습니다. 어느 날 런던 킹스크로스 역 앞에 4.3미터의 노숙인을 등장시킨 겁니다.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죠. Crisis UK는 더 많은 사람들이 노숙인을 발견할수록, 더 많은 노숙인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존재를 의식해야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는 거죠.
여성 가슴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자 하는 스페인의 비영리 브랜드 teta&teta는 비슷하지만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편하게 아기에게 수유를 하지 못하는 환경을 꼬집기 위해, 거대한 아기를 등장시켰습니다. 아기는 서럽게 웁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죠.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뮤지엄 광장에 등장한 이 아기는 공공장소에서 당당하게 아기에게 수유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아기들이 화장실에서 모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명의 아기를 3D로 스캔해 만든 ‘자이언트 베이비’는 크기 외엔 거의 실제 아기와 같아서 지나는 이들을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아기가 전하는 메시지에 주목하게 되죠.
우리가 고쳐야 할, 설득해야 할 것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늘 홍수처럼 버려진 메시지들이 사람들 사이를 흘러갑니다. 그래서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이게 하고,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죠.
새롭게 보게 되는 순간, 생각이 새로워지고 행동이 새로워지고 나아가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신숙자 CD의 해외 크리에이티브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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