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7-08 : 대중 vs. 매니아 - 자본, 신화화된 담론에서 비껴선 매니아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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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재/효성카톨릭대 노문학과 교수

H.O.T가 씨랜드참사로 숨진 어린이를 추모하여 취입한 곡."아이야'가 수록된 4집앨범과 씨랜드 참사유족의 홈페이지.

H.O.T 팬들이 전봇대나 게시판마다 일년 전에 일어난 씨랜드 참사사건을 상기시키는 유인물을 붙여 놓았다. “저희는 H.O.T 팬인데요...” 운운. 이 팬들은 대중일까? 아니면 매니아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그저 오빠부대일 뿐? 조금 더 고상하게 말한다면 팬덤(fandom)? 씨랜드 참사사건까지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혀를 내두를 일이다. 특정 그룹을 씹을 생각은 없다. 다만 대중이란, 르 봉(Le Bon)이 “무의식적 우연의 대중”이라고 말했듯이 벌떼처럼 꿀을 찾아 떠나는 의식없는 무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씨랜드 참사사건을 상기시키는 유인물이 H.O.T의 상업화전략인데도, 그런 데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H.O.T를 꿀로 생각하는지 서태지라고 착각하는지 유인물을 붙이러 다니는 무리들은 분명 대중일 터이다.








대중문화와 매니아 문화의 차이

그렇다면 매니아란 무엇인가? 대중이 mass라면 매니아(mania)는 대중문화를 껌이나 휴지처럼 일회성 소모품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소수의 무리다. 대중이 대량의 무리라면, 매니아란 소량의 무리인 것이다. 엄정화나 이정현 등의 노래는 한번 듣고 치워버릴 휴지 같은 것이라면 신촌과 낙원동, 대학로에서 음악이라는 대중문화를 새롭게 생산해내는 록 공동체, 브레이크 댄스 공동체들은 소수의 비주류 문화, 혹은 매니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들을 가리켜 사람들은 소수문화, 하위문화라 하기도 한다. 신현준이 대중문화를 ‘일회적 오락의 차원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심미적 감상의 수단으로 삼는 현상’을 가리켜 매니아문화라고 지적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찌하다 보니 사전식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런데 실제로 매니아, 매니아 문화에 대해서는 ‘심미적 감상’이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게 매니아이니 말이다. 에로 매니아, 골프 매니아, 패션 매니아, 스포츠 매니아, 메탈 매니아, 게임 매니아 등등. 따라서 매니아 문화가 대중문화를 오락이 아니라 미적인 차원에서 감상하는 수단으로 삼는 현상이라면, 이 수많은 매니아들이 비디오, 패션, 스포츠 등등을 과연 심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인가? 그러나 자신만의 세계를 지킨다는 아이들이 부화장 같은 PC게임방에 둥지를 튼 채 게임에 미쳐 있을 때 과연 이들을 게이머라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게임 ‘매니아’라고 할 수 있을까?권력의 웹(Web of Power)으로 부상한 10대 매니아들은 소비의권력(Power of Consumption)에 길들여진 아이들일뿐이다.


신지식인 심형래 제작의 영화 '용가리'

그렇다면 대중과 매니아의 문제는 대중문화와 매니아 문화의 차이를 좀더 깊숙히 건드려 봐야 풀릴 사안이다. 대중문화가 문화를 상품화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아주 일반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가 자본의 논리에 포섭된 것이고, 문화소비주의에 침몰한 것을 대중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매니아 문화란 적어도 진정한 인디문화처럼 자본의 그물망을 비켜가고 소비보다는 생산논리를 쫓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문화소비의 논리고 매니아 문화는 문화생산의 논리라고 규정하는 것은, 일리는 있지만 너무 경직된 정의다. 이러한 정의로는 1996년 잠실올림픽 경기장에서 모 기업의 후원을 받은 페스티벌에 ‘넥스트’나 ‘크래쉬’같은 아방가르드 그룹이 출연한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적어도 그것이 매니아 문화라면 자본의 포획망은 피해가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말이야 맞지만 이렇게 지적하는것도사실은 안이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중문화와 매니아 문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여기서 ‘차이’라고 말했지만 이 차이가 대립인 것은 아니다. 과거의 민중문화 혹은 대학문화 대 대중문화하든 식으로 대중문화와 매니아 문화, 대중과 매니아를 구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매니아도 결국 대중 안에서 자라나오는 것이고 매니아 문화는 대중이 이용하는 방식과 다르게 대중문화를 전유, 생산하는 것일 뿐, 대중문화 안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는 무엇보다도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담론들을 신화화시키는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신화’라는 그룹이 있기도 하지만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욕망을 그러한 담론들로 역류시키는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매니아 문화는 그러한 신화들을 깨는 문화이자 사람들의 욕망을 사회와 접속시키는 문화다. 가령 사랑타령 뿐인 주류문화가 대중문화라면 이러한 대중문화의 지배 하에서 사랑을 거부하는 열정이 매니아적인 것이라고 할 수있다.

www.neteen.net 이나 www.ch10.com 등에서 상대방, 연인, 부모, 사랑, 가족에 종속되고 접속되는 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발산해나가려는 매니아적인 에너지를 찾을 수 있을까? 부모의 뜻과 다르게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서려는 독립성이 엿보이긴 하지만, 그 독립성이 소비의 권력이나 신지식인과 같은 담론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말이다. 적어도 매니아 문화는 개인의 욕망을 사랑, 결혼, 가족, 소비, 신지식인과 단락시키고 그 에너지를 생산과 창조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스타크래프트 경연대회나 각종 대회는 문화생산이 아니라 문화를 얼마만큼 누가 더 많이 소비하는가 하는 대회에 불과하다. 적어도 그런 것들이 문화생산이 되려면 일등 신지식인만 추구할 게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폐쇄적이고 반사회적인 욕망의 담론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편집증 문화? 스키조 문화!

그러나 매니아 문화에 대한 기존의 통념은 이와 전혀 딴판이다. 매니아 문화를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통념 말이다. 물론 매니아란 말이 만화든 게임이든 어떤 대상에 몰입하고 집착하는 일종의 강박증을 갖는 것이라면, 그런 통념도 맞는말이다. 그러나 매니아 문화를 대중매체와 한 쌍이 되어 자폐적인 영역을 만들거나 전자매체를 어머니의 자궁으로 인식하여 거기에 안주하는 - 밤새도록 컴퓨터(=자궁) 앞에 앉아 PC게임을 하는 - 테크노 나르시시즘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니아 문화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다. 어린아이에게 골프를 시키고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다른 친구를 따라잡을 길이 없으며, 네가 핸드폰을 사는데 나도 핸드폰을 사야 한다는 편집증적인 강박관념 자체가 이미 매니아적인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자본주의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매니아 문화란 각 개인의 욕망을 구속하고 통제하는 자본과 신화화된 담론들로부터 욕망을 탈주(脫走)시키는 문화다.

이런 의미에서 매니아 문화는 편집증 문화가 아니라 스키조(schizo: 분열증환자 - 의학적인 의미의 정신분열증 환자에서 나온 말이지만 집착, 몰두, 접속, 수로화(水路化), 통제 등을 거부하는 키드라는 의미로 쓴 것) 문화이어야 한다. 매니아 문화를 전자처럼 생각하는 것이 대중이고 대중들의 오도된 관념이라면 진정한 매니아 문화는 편집증적인 사회, 욕망을 일정한 방향 - 일등주의, 신지식인, 영어, 가족, 사랑, 결혼 등등 - 으로만 흐르게끔 수로화하면서 자본을 축적하고 재산을 불려가며 다른 사람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게 하려고 사람들을 토끼몰이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매니아 문화가 이러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면 대중문화에 잠식될 것이고 매니아도 대중문화를 무한정 소비하는 대중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렇듯이 대중과 매니아는 동전 앞뒷 면 정도의 거리를 두고있는 차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헐리우드 키드(미국식 대중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들)들이 스키조 키드로 둔갑하는 일이란 게 그리 쉽지는 않다. 팬덤이 스타를 소비하고 대중화된 매니아가 상품화된 문화 - 음악, 스포츠, 패션, 음식, 게임, 영화 - 를 소비하기는 쉬워도 헐리우드라는 편집증적인 스크린의 시선에서 눈을 떼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공부하라는 어머니의 말은 죽어도 안 들어도, ‘일렉트로닉 마더(Electronic Mother)’의 유혹에는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넘어가는 대중들이 스키조적인 매니아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아사다 아키라는 “일정한 방향으로 숨가쁘게 달리는 편집증형의 자본주의적 인간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가 말한 편집증적인 자본주의적 인간은 90년대 이후 여전히 (통념상 수용되어 온) 매니아로 다시 부상하면서 ‘소비’라는 일정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맹주(猛走)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대중과 매니아란 것이 동일한 원환궤도를 도는 한 쌍의 존재들이라는 인식 하에 매니아가 대중으로 전락하고 대중과 경주(競走)의 끝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없는 무리로서의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발산할 때에만 매니아로 부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니아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그러한 매니아적인 욕망이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는 별도로 생각해 볼 문제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