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이 있었다. 사람의 입을 당장에 매체라 상상하기엔 어렵겠지만, 전달되어야 하는 메시지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고, 그 말을 어떤 수단으로 전달해야 하는 것이라면 ‘입’도 하나의 매체로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이런 말의 시대를 대부분 살아왔다고 추측된다. 오직 입이 단일 매체로만 존재했던 건 아주 긴 시대다.
이후의 본격적인 매체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를 뜻한다. 즉, 휘발적이었던 말의 시대를 지나 본격적인 전승 가능한 메시지로서 문자의 탄생과 ‘점토판, 양피지, 종이, 그 어디든’ 매체에 새겨진 문자의 역사는 곧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역사가 매체 역사 자체라는 것을 말해준다. 최초의 문자가 점토판에 새겨진 쐐기문자라고 본다면 그 시점은 대략 3,000년 전. 지워지고, 사라지고 기록을 고려하고, 여러 학술적 논란을 감안해도 대략 5,000년 전후밖에 되지 않았다고 보인다. 인간의 기원을 호모 사피엔스부터 봤을 때, 60~70만 년동안 지속된 인간의 시간에서 기록된 문자로 말을 전달할 수 있었던 매체의 시대는 고작 1%가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기까지 메시지는 대부분 ‘상상’, 나쁘게 표현하자면 ‘거짓’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왜곡된 진실을 담기에 좋았던 매체 환경이라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이나 문자는 매체로서의 즉각적 전달력은 뛰어나지만 몇 사람, 몇 세대를 거치며 의도되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왜곡되거나 과장되기 마련이다. 특히 문자가 갖는 한계인 아무리 자세한 묘사라 할지라도 많은 것을 놓칠 수밖에 없는 특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부재한 부분들을 다시 자의적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삽화나 회화 같은 문자를 돕는 이미지적 메시지도 함께 존재했으나, 어디까지나 이 이미지들은 문자와 말을 돕는 기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 시기, 신화와 종교가 세계의 큰 작동 원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말과 문자라는 매체 환경의 영향이라는 것이 크게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를 뒤엎는 사건은 고작 200여 년 전 남짓, 그러니까 문자의 시대에 불과 1/10 밖에 되지 않는 시기에 일어났다. 바로 사진과 뒤이어 나타난 영상 기술의 발명이다.
사진은 그동안 전달됐던 문자 중심의 매체 환경을 이미지 중심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인쇄와 전송 기술도 덩달아 발전하면서 문자가 아닌 이미지를 중심으로 사람들은 이제야 진실에 가까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미지는 다시 영상으로, 앞뒤 시간적 맥락까지 포함하며 보다 생생하고 진실된 메시지에 대한 요구에 부합했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처음에 사진은 인쇄 매체를, 영상은 방송 매체에 힘을 불어넣었다. 특히 단순히 시각화된 이미지로서의 사진과 영상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기획되어 확장, 구성된 메시지, 즉 스펙터클은 이제껏 문자로 읽던 메시지가 각자의 상상을 기반으로 하여 개인별로 다를 수밖에 없는 해석의 차이를 넘어 단박에 보는 사람 모두에게 공통적인 큰 공감과 반응을 만들었다. 그에 대표적인 사례가 방송으로 끊임없이 생중계됐던 전쟁 보도류다.
이런 시각화된 인쇄와 방송 매체는 매체의 종착역일 것이라고 간주됐다. 그도 그럴 것이 메시지의 스펙터클을 구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천문학적 자본의 시스템은 오로지 선택된 몇몇에 의해서만 가능했다. 당연히 광고 산업은 이러한 선택된 매체들과의 공생 관계로 전성기를 함께 했는데, 진실성을 요구하는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는 메시지를 생산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우회적인 방식으로 지불하게 만든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특히 스펙터클한 메시지 사이에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광고 역시 스펙터클한 메시지의 방식을 택했는데, 영화 같은 광고, 드라마 같은 광고는 모두 이 방식의 하나로서 대중에게 먹혀들었다.
한동안 나름 안정적으로 작동되어 온 인쇄, 방송 매체와 광고 시스템에 변화를 만든 건 고작 이제 10년 정도 된 모바일 매체다. 모바일 매체는 그간 이뤄져 왔던 매체의 진화 방식인 메시지의 확장 형태를 따르지 않았다. 과거에 말과 문자로만 이뤄지던 매체의 시대처럼 대중이 직접 손쉬운 메시지 제작과 전송이 가능해지자, 발신과 수신 방식을 다시 과거처럼 개인에게 파편화된 방식으로 진화시켰다. 기존에 큰 자본이 필요했던 메시지의 생산과 전송이, 카메라가 달리고 즉각 전송이 가능한 모바일 안에서 쉽게 이뤄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해서 메시지의 진실성에 대한 요구에 있어서 기존 인쇄나 방송 매체가 가진 ‘편향성’, ‘정부, 산업과의 이해관계에 의한 눈치 보기’ 등 그간 쌓여왔던 불만이 쏟아지며 일시에 모바일 매체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최초의 ‘나꼼수 현상’ 이후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대표적일 것이다.
오늘의 이 글을 “매체의 작은 역사”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건 이러한 모바일 매체의 등장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지금도 많은 수의 광고는 기존의 스펙터클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인쇄와 방송 매체를 타고 전달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스펙터클의 메시지를 모바일 매체에도 동일하게 심어 고스란히 기존 방식대로 전이된 매체 비즈니스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모바일 매체는 말과 문자가 만들던 시대의 매체 방식에 가깝다는 점을 상기하면, 매체와 친숙하지 않은 메시지는 분위기를 못 맞추는 파티 참여자처럼 벽 앞에만 서 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런 말과 문자의 매체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례는 “최저가 경쟁”의 지금 마케팅 시장일 수 있다. 파편화된 매체의 속성에 맞춰 일일이 모든 말을 스펙터클한 메시지로 만든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특정 개인은 그런 작업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보편적인 메시지 발신자들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마케팅은 단지 “싸다”는 것 정도다. (말과 문자가 마케팅의 대부분인 남대문 시장에서 볼 수 있는 그 광경 말이다.) 거기에 신화적이고 과장된 말들은 마치 기존 방송처럼 스펙터클을 위해 제작된 메시지처럼 위장하나, 들여다보면 저렴하고, 쉽게 쏟아낸 공산품적 메시지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매체에 담기던 메시지가 모바일 매체 내 비교 경쟁에서 이기기란 쉽지 않다.
인류의 시간 60만 년, 문자와 함께한 시간은 3,000년, 사진과 함께한 시간은 200년, 모바일과 함께한 시간은 10년. 아주 짧은 시간에 겪는 이 무수한 변화들이 앞으로도 더 급박한 변화의 주기로 돌아올지, 아니면 이 정도로 변화를 끝내고 어느 정도 완숙기로 접어들지, 아직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변화 양상 한가운데서 “매체” 담당자라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이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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