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글고 소금은 짠맛이며 불은 뜨거운 것처럼, 마이클 잭슨이 ‘팝의 황제’라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입니다. 팝스타를 넘어 팝 그 자체로 불리는 마이클 잭슨은 음악은 물론 댄스와 공연예술, 영상 등 현대 대중문화사에 수많은 족적을 남긴 후 2009년 6월 25일 홀연히 자기 별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HS애드 블로그에서는 팝의 상징이자 팝 그 자체가 되어버린 뮤지션 마이클 잭슨의 자취와 그가 광고를 비롯한 문화계에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엿보인 ‘음악적 천재성’
1958년에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자식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가 아들들을 모아 결성한 ‘잭슨 파이브’에서 형 저메인 잭슨과 함께 보컬을 담당하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서서히 폭발시키게 됩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마이클을 앞세운 잭슨 파이브는 당시 최고의 레이블인 모타운과 계약했고 'ABC',' The Love You Save', 'I'll Be There’, 'I want You Back’ 등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최고의 보이그룹이라는 영예를 거머쥐는데요. 'I want You Back’ 싱글은 무려 2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며 미국의 음악 전문 매체 피치포크가 선정한 1970년대 가장 위대한 곡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꼬마 마이클의 노래는 이때부터 기본기가 완성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1971년에 그는 드디어 솔로 앨범을 내며 ‘Ben’ 등의 히트곡을 발매하지만, 계약 문제로 모타운 레코드를 나와 에픽 레코드와 계약하고 잭슨 파이브 대신 ‘잭슨스’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시대별 과거 영상을 보면 그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커버린 몸만큼 그의 창작욕도 끊임없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위 영상은 LG유플러스의 5G 모바일 통신망과 VR 기술을 활용한 ‘멸종동물공원’의 광고입니다. 첨단 5G 네트워크와 VR 기술을 통해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아메리칸 피카, 갈색목 세발가락 나무늘보, 북극여우 등 동물을 만나보는 동시에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등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환경의 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광고인데요. LG유플러스는 이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마이클 잭슨의 솔로 2집 셀프 타이틀곡 ‘Ben’을 활용했습니다. 힘들어하는 벤에게 친구가 되어주겠다는 가사가 멸종 위기로 힘들어하는 동물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퀸시 존스를 만나 그만의 개성을 찾아내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가수만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꽃피운 것은 괴물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합을 맞추면서부터입니다. 영화 촬영 중 만난 재즈 전문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레코드사에 고집을 부려 1979년 발매한 앨범 ‘Off The Wall’은 1970년대 말 유행하던 디스코와 훵크, 소울과 R&B가 한데 섞인 음악으로 발매하자마자 엄청난 지지를 받으며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당시 퀸시 존스와 마이클 잭슨 자신은 몰랐겠지만, 이 앨범은 팝 씬의 트렌드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로큰롤, 가스펠과 결합한 소울 음악으로 양분되었던 팝 음악계에 이 모든 것이 융합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앨범 이후로 팝 음악의 트렌드가 바뀌고, 그는 팝 음악의 초신성을 넘어 팝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인종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하던 시절, 이 앨범은 당대 최고의 업적을 이뤘음에도 그래미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데 실패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 제안한 미국의 유명 잡지 ‘롤링스톤즈’의 표지 모델 역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하면서, 그는 다시 한번 굳은 다짐으로 칼을 갈게 됩니다.
천재가 독하게 마음먹고 갈아놓은 칼을 휘두른 결과, 그 파장은 놀라웠습니다. 록과 소울, 재즈, 디스코 등을 팝이라는 이름 아래 효과적으로 크로스오버한 ‘Thriller’는 대중음악상 가장 역사적인 음반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또한 'Billie Jean'과 'Beat It', ‘Thriller' 등에서 영화계 스태프들과 협업해 스토리텔링에 맞춘 춤과 퍼포먼스, 특수효과를 통해 음악을 전달한 마이클 잭슨은 MTV로 대표되는 ‘보는 음악’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BTS가 보여주는 화려한 군무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괴물과 함께한 ’Thriller’의 역동적인 군무 장면이나 미끄러지듯 뒤로 걷는 ‘문워크’가 화제가 된 ‘Billie Jean’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선사하며 문화계에서 피부색으로 차별하던 사람들의 편견을 없애는데 일조합니다. 모든 댄서가 흠모해 마지않던, 누구나 한번쯤은 따라 해봤을 법한 그의 문워크도 한번 감상해 보시죠!
음악과 영상을 아우르는 문화의 아이콘이 되다
마이클 잭슨은 ‘Off The Wall’과는 달리 ‘Thriller’ 앨범으로 그래미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8개의 상을 휩쓸며 그래미 최다 후보/최다 수상이라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무려 7년 만에 발매한 새 앨범 ‘BAD'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연속으로 발매된 싱글 5곡이 모두 빌보드 1위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죠. ‘디 아이리쉬맨’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뮤직비디오 역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때 마이클 잭슨은 인종을 넘어 모든 세대에게 인기를 구가하는 뮤지션으로 완벽히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하고자 했던 ‘펩시콜라’의 러브콜을 흔쾌히 받아들인 마이클 잭슨은 그의 히트곡 ‘Billie Jean’의 후렴구 ‘Billie Jean is not my lover’를 ‘Join The Pepsi Generation’으로 바꿔 부르기까지 한 ‘Pepsi Generation'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이를 통해 펩시는 라이벌인 코카콜라를 잠시 넘어섰을 정도의 톡톡한 광고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 광고 25초~32초 부근의 스파크 장면을 촬영할 당시 그의 머리에 불이 옮겨붙어 화상을 입으면서, 이전부터 앓고 있던 그의 백반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한평생 그를 따라다니던 성형 중독과 같은 루머 역시 이로 인해 생긴 것입니다.
이후 뉴잭스윙 아티스트 테디 라일리를 영입해 제작한 ‘Dangerous’는 록과 발라드, 당시 새로 떠오르는 뉴잭스윙을 팝에 접목해 탄생한 앨범으로 수록곡 11곡 중 9곡의 뮤직비디오를 전부 제작해 음악은 물론 영상 모두가 사랑 받았습니다. 사랑과 평화, 인종차별 등 다양한 주제를 담아낸 ‘Dangerous’는 마이클 잭슨의 팬을 비롯한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으며, 27개국에 동시 방영된 ‘Black or White’는 2시간 동안 5억 명이 시청하면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생전 음성 메모를 통해 “관객이 공연장 밖을 나설 때 ‘한 번도 본 적 없는 최고의 공연이었어’라고 말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는데요. 무대 연출 면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탁월한 공연 아티스트임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공연은 항상 획기적인 무대 장비와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기획으로 가득했습니다. 요즘 아이돌이 많이 시도하는, 불꽃과 함께 무대로 솟아오르며 등장하는 연출은 이미 마이클 잭슨이 ‘Dangerous Tour’에서 토스터라는 이름으로 시도한 그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특수장치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엔딩이나 관 속으로 퇴장해 생각도 못한 방향에서 등장하는 연출도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지요. 아래 영상은 토스터 연출의 메이킹 필름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팝 황제의 죽음, 그 이후
그러나 이 앨범 직후 제작사인 소니 엔터테인먼트와의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고, 이후 발매한 베스트 앨범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과 리믹스 앨범 ‘Blood on the Dance Floor: HIstory in the Mix’는 소니와의 계약을 빨리 끝내기 위해 발매한 앨범이었습니다. 2001년 내놓은 ‘Invincible'을 끝으로 마이클 잭슨은 소니와 더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가 살아생전 남긴 마지막 앨범이 되고야 맙니다. 이전부터 강행해온 투어로 인한 몸의 고통과 심각한 스트레스, 불면증을 호소하던 마이클 잭슨은 주치의의 약물 과다투여로 2009년 6월 2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부고가 발표된 이후 전 세계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으며, 최초보도한 타임지와 뉴욕타임스 웹사이트는 서버가 작동을 멈출 정도로 트래픽이 몰렸다고 합니다.
당시 구글은 갑자기 나타난 ‘Michael Jackson’ 검색어를 DDoS 공격으로 착각하고 검색을 차단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사후 12일이 지난 2009년 7월 7일, 가족과 친지 및 수많은 동료 뮤지션들이 모인 가운데 공연 형식으로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위의 영상은 그의 장례식 추모 공연 중 존 메이어의 연주입니다.
2018년 드레이크의 신보 중 마이클 잭슨이 생전에 남긴 샘플을 구입해 작업한 수록곡 ‘Don’t Matter To Me’가 빌보드 차트 9위에 오르면서, 마이클 잭슨은 죽은 지 9년 만에 또다시 그의 음성을 빌보드 9위에 올렸습니다. 역시 ‘King Of Pop’의 클래스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 같죠?
세상에서 사라진 지 10년이 넘어도 여전히 인기 아티스트 Top 100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마이클 잭슨의 흔적은 지금도 문화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제작자인 레이엄 킹과 ‘007 스카이폴’의 감독인 존 로건이 연출과 각본을 맡아 마이클 잭슨의 전기영화를 제작한다고 합니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 수많은 사람이 그를 또다시 추억하는 동시에, 마이클 잭슨을 몰랐던 사람들도 그에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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