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새롭게 만드는 디자인 콘텐츠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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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를 비롯해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창작은 중요한 핵심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이를 위해 전공자들이 받는 중요한 교육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한 커리큘럼이죠. 미술사 등을 바탕으로 한 과거를 아는 것에 대해 고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때때로 전통과 과거는 새로움을 만들 수 있는 소재의 밑거름이 됩니다. 실제 유럽과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디자인들을 선보이면서 각국의 고유의 색깔을 계승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도 오랜 역사만큼이나 훌륭한 전통 소재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취미로 다양한 공예를 배우고,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색다른 공간들을 찾아가는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며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소비도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공간과 공예에 관심이 많은 분이 눈여겨 볼만한 곳을 통해 전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통 한옥과 디자이너의 만남 #차경(借景), 운경고택을 즐기다(Borrowed Landscape)

지난 5월 17일부터 26일까지 2019 공예 주간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지난달 이 공예 주간에 맞춰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습니다.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근 최근까지 ‘집’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전통 한옥, 운경고택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을 계승하면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두 명의 디자이너의 작품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전시 배경이 된 운경고택은 인왕산 근처 사직단이 보이는 곳에 위치한 전통 서울시 한옥으로, 왕족의 후손인 운경 이재형 선생이 한국 전쟁 후 터를 잡고 작고 시까지 실제 거주한 곳이다.

이 전시가 흥미로웠던 점은 전통 한옥이라는 전시 장소의 분위기와 전통을 기반으로 재해석한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가구/텍스타일 디자이너의 작품이 어울려져 ‘집’을 완성하는 공간 체험형 전시였다는 부분입니다. 전시를 주관한 17717에서 밝힌 전시의 취지는 두 작가의 작품을 전형적인 전시 공간을 떠나 삶의 흔적이 스며 있는 고택에 담는 과정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는 동시에 일상에 두루 쓰일 수 있는 실용적인 공예 작품의 진가를 경험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취지처럼 전시는 전통적 모티프를 활용하여 한국적 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작품을 전통 공간에서 즐기는 재미를 관람객에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는 ‘차경(借景)’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는데요. 차경은 ‘자연의 경치를 빌리다’는 의미로, ‘창’과 ‘문’을 통해 선조들은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창밖의 풍경을 실내로 잠시 빌려 즐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차경을 통해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우리의 전통 가옥의 건축 철학과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 공예품의 조화뿐만 아니라 동선상 우연히 마주치는 창을 통해 자연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두면서 풍경을 그림처럼 잠시 빌려 썼다는 ‘차경’을 느낄 수 있다.

운경고택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아담한 연못을 가진 내정이 있어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전시는 사랑채와 내정을 보고 안채로 이어지는 동선을 가지고 공간별로 어울리는 작품들, 전통미를 기반으로 한 소반과 평상, 조명, 텍스타일 등이 디스플레이되어 있었는데요. 잘 보존된 전통 가옥의 각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장소를 거닐며 자연과 공간, 전시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시회 관람 중에는 한쪽에 마련된 뜨락의 평상에서 ‘풍경(風磬)’ 소리와 함께 차를 마시며 공간과 자연이 주는 여유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는데요.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우리 전통이 가지고 있는 공간 철학과 전통 공예를 이어가는 현대 디자인의 만남을 다방면에서 감각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초록 나무가 돋보이는 사랑채 공간 속 응접실에 배치된 하지훈 작가의 작품 호족의자와 일주반테이블, 의자 옆의 곡선은 소반의 상다리를 거꾸로 하여 디자인하였다. (좌) 하지훈 작가의 소반 ‘반’과 장응복 작가의 볕가리개 등 패브릭 소품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사랑채 복도 공간, 알루미늄 상판에 레이져 커팅으로 전통 문양을 새겨 넣은 하지훈 작가의 소반은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귀빈용 선물로도 인기가 많은 제품이다. (우)

▲안채에는 거실을 비롯하여 사랑방과 메인 룸, 복도를 따라 장응복 작가의 패브릭 소품들과 하지훈 작가의 가구들이 공간에 어울리게 디스플레이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있는 뜨락과 중정, 두 작가가 협업하여 제작한 평상에서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공간과 가구,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전시의 한 부분이다.

전통 가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하지훈 디자이너와 전통 색감과 패브릭을 세련된 감각으로 재창조해내는 장응복 대표는 한국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창조해 낸 작가로 국내외에서 유명한데요. 이들의 작품이 가장 잘 돋보일 수 있는 공간을 통해 기획된 이번 전시는 공간과 콘텐츠가 적절히 잘 어우러진 전시였습니다. 

*전시 VR 콘텐츠 https://eazel.net/exhibitions/237 

한시적으로 진행된 전시의 특성상 공간을 즐기지 못한 분들을 위해 제공된 VR 콘텐츠 링크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습니다. 


대목장 손에서 태어난 서촌 한옥 호텔 #영락재 

서촌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동네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그 중 가장 인기있는 콘텐츠는 한옥을 기반으로 한 플레이스들이죠.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서촌은 과거 조선시대에는 역관이나 의관 같은 중인 계급의 전문직이, 근대에는 화가 이중섭과 시인 윤동주, 이상이 살던 동네로 1910년대 이후 지어진 도시형 한옥들이 대거 밀집해 독특한 서촌만의 분위기로 이목을 끄는 동네입니다. 최근 들어 이야기가 있는 장소들이 뜨면서 서촌의 개량한옥들을 개보수한 카페와 레스토랑, 호텔 등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데요. 이런 서촌에 위치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는 집’이라는 뜻의 영락재는 예전부터 서촌에 존재했던 역사가 있는 한옥을 개보수한 곳이 아니라 최근에 새로 지어진 한옥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건축 과정이 아니라 문화재 한옥을 전문으로 복원 수선하는 대목장(전통 가옥을 짓는 일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를 지칭하며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이다)의 손길로 지어진 곳이죠. 


▲대목장의 손에서 탄생한 한옥 스테이 영락재 전경(출처: 영락재 공식 홈페이지)

1층은 5칸의 전통 한옥 방식으로 구성하였고, 특히 누마루(바닥을 지면에서 띄운 누각 형식의 마루로 주변 경치를 즐기는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되던 전통 양식이다)를 비롯해 전통 창호 및 정갈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한지 도배 등 장인의 솜씨가 담긴 디테일이 돋보입니다. 이와 동시에 지하에는 아지트 형식의 이야기가 있는 공간과 건식 욕실 등을 배치해 현대적인 디테일을 더해 편의성을 도모했죠. 전통 건축을 기반으로 사용자 입장을 배려한 공간 구성을 적절히 배치하여 재미난 공간 경험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방의 장지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안과 밖이 소통하게 하는 누마루 공간 (좌), 공간의 중첩을 통한 재미와 한지와 목재로 마감하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 실내 (우) (출처: 영락재 공식 홈페이지)

▲전통한옥에서 볼 수 없던 지하 공간에는 건식 욕실과 주방 등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지하 공간의 침실 천창을 통해 외부 전경을 즐길 수 있다. (출처: 영락재 공식 홈페이지)

오래된 한옥을 매매하여 개보수를 통해 원하는 공간으로 잘 만드는 사례들도 상업 공간, 주거공간 구분 없이 전국에서 만날 수 있는데요. 한옥에는 우리 선조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디자인적 미학 요소와 디테일들을 많이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소재입니다. 영락재와 같이 전통을 베이스로 하여 새로운 스토리를 가진 한옥을 신규로 만드는 것도 우리 문화를 이어가는 좋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하나의 사진 스팟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공간이 가지는 디테일의 의미에 대해 곱씹으며 전통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우리 건축과 공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방문해 볼 곳 #한국 가구 박물관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것에 대한 이해가 먼저일 텐데요. 여기 우리 선조들의 전통 가구와 공예품에 대해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있습니다. 


▲10채의 한옥 공간에 고가구 500여점이 전시된 한국가구박물관 전경

성북동 북한산 자락에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은 12년 4월 정식 개관한 곳으로 개관 당시에도 구찌의 특별 전시가 열리는 큐레이팅 갤러리 장소로 이목을 끌었던 곳입니다. 저도 오픈 당시 방문해서 가구 및 공예품의 콜렉팅 수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요. 단순히 전통 가구를 모아 놓은 게 아니라 지방색에 따라 쓰임이 달리 탄생한 가구들을 선별하고 이를 제대로 담아 대중에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가구와 공예품을 제대로 담기 위해 가치가 있는 한옥이 없어질 때 기둥 등 부속품을 수거하고 이를 재조립하여 박물관을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입장하자마자 만날 수 있는 궁채의 경우에는 일제강점기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되면서 해체한 자재들을 가져와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박물관은 궁채 외에도 곳간, 부엌채 및 사대부 집 등 다양한 양식의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공간에는 그에 맞는 가구와 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실제로 선조들이 쓰던 가구와 공예품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방문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전통을 통한 혁신 

지난 4월에 끝난 밀라노 가구 박람회 기간 중 주목받은 전시 중 하나가 2019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전시였습니다. 이는 13년부터 우리의 우수한 공예품을 선보이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주도로 선보인 전시로, 올해는 특히 정구호 예술감독의 기획 하에 수묵화를 모티브로 한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이목을 끌었습니다. 흑과 백의 대비, 여백의 미 등을 활용하여 세련된 공간을 선보임과 동시에 장인들의 손길로 탄생한 우리 공예품의 디자인적 우수함을 세계에 선보였죠. 단순히 옛것을 지킨다는 의미보다 이를 바탕으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발전하고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공예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목가구, 수묵화, 매듭, 칠기 등 전통 공예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탄생시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창작품의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가지고 새롭게 보게 되면 의외로 주변에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우수한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