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광고업 사투리·은어 총정리
아름다운 우리말을 씁시다
이 경 석
기획8팀 부장 / lks52@hsad.co.kr
인간에게 언어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큰 기준입니다. 외형적으로 비슷하고 유전적으로도 거의 일치하는 중국·한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이 바로 언어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종적으로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영어’라는 언어로 통일된 문화를 만들어가는 미국을 보면 ‘공통된 언어’라는 것이 하나의 집단을 규정하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죠.
언어는 문화이기도 합니다
뭐 거창하게 민족이나 국가를 떠나 사회생활 곳곳에서도 언어를 통해 규정되는 집단들이 많습니다. 경상도·전라도 등 지역 사투리가 대표적이죠. 과거 80년대 컬러TV가 보급되고, TV 방송의 아나운서에게 의무적으로 표준어 사용을 강제하면서 20년~30년 내에 지방의 사투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던 적이 있습니다. 새로 자라나는 학생들이 모두 표준어를 배우면 사투리는 금방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TV뿐 아니라 인터넷으로 전 세계가 동기화되어가는 와중에서도 지역 사투리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지역별 사투리뿐 아니라 집단별 사투리나 은어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최근 대한민국 군대의‘ 다나까’ 화법을 유행시킨 <태양의 후예>에서 볼 수 있듯이 군대라는 조직도‘ 군대다운 독특한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군대뿐만 아니라 건설업종 등 나름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언어를 갖고 있습니다.
광고업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끼리는 평소 쉽게 느끼지 못하거나 모르고 있지만, 외부인들이 봤을 때‘ 남들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용어’를 쓰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바로‘ 광고인’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광고업’이라는 업종도 군대나 건설업종과 마찬가지로 업종 특유의 문화와 전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반도에서 광고업은 이미 130년이 넘는 유려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산업이니까요.
광고업만의 독창적인 문화를 기록·보존한다는 차원에서 주변의 여러 선후배 분들의 도움을 받아 광고업에서 사용되는 은어(Jargon) 및 광고인들의 속말을 총정리해 봤습니다.
공통
주님: ‘God’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거 다 아시죠?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의 비즈니스가 영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클라이언트를 존칭하는 말.
예) “오늘 주님이랑 점심 먹기로 했어. 다 같이 가자~”
아이디어를 까다: 자신이 준비한 아이디어를 직급이 낮은 순서대로 제시한다는 뜻.
보통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정작 자신은 안 까는 경우가 많다.
예)“ 자~자, 고민들 많이 했지? 아이디어 까자!”
컨펌 난거야: 광고주가 결정한 것이니 잔말 말고 하라는 대로 하라는 뜻
짜치다: 급이 없고 낮아서 후져보인다.
히뜩 하다: 새롭고 신기한 아이디어를 지칭하는 말
예) “야야~ 그런 뻔한 거 말고 좀 히뜩한거 가져와봐!”
있어빌리티하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광고주가 좋다고 할 것 같다.
아삽 이에요: 원래는 ASAP의 뜻이지만, 하도 많이 사용되다 보니 “자, 이제 슬슬 시작해보자”의 뜻으로 통용됨
바리치다: 하나의 소재에서 시작해 다양한 아이디어로 확산시키다.
기획서 오사마리 잘 부탁해: 일본어로 “난 할 말 다했고 잘 모르겠으니
직급 낮은 니들이 알아서 정리해서 내일 가져와”라는 뜻
기리 빠시했네: 레퍼런스 캠페인이나 영상을 보고 살짝 바꿨네라는 뜻.
(오직 기획8팀의 이가기 국장 외에는 사용 예를 본 적 없으니 업계 용어가 아닐 수도 있음.)
방금 퀵보냈습니다: 방금 퀵서비스를 이용해 물건을 보냈다는 뜻이지만,
실상 “이제 준비해서 보내드릴 테니 너무 쪼지 말라”는 속뜻도 있음
방송·매체
다케 판매: 시청률 좋은 프로그램 1개에 다른 물건까지 모두 포함해서 패키지로 판매
대포치다: 광고주나 광고회사의 허락 없이 인쇄광고를 게재하다.
원턴돌리다: 모든 신문·잡지 등에 1회 집행하다.
한중지: TV광고를 1회에 한해 중지하다. 전면중지하면 사고야~
나까마: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중간 대행수수료를 챙겨가는 대대행 업체
부킹 하다/가부킹: 골프장이나 식당 예약이 아니라, 매체를 집행하기 위해 사전 예약을 걸어 놓는 것
제작용어
혼방용: 시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 광고에 집행할 용도로 만드는 것
예) 혼방녹음·혼방소재 등
보까시 좀 줘:‘그라데이션’의 일본어 ぼかし를 읽은 것으로, 일본식 표현이 한국의 인쇄문화에서 유래
보깨: 배경을 잘 안 보이게 흐리게 하는 것
대못찌: 포커스를 앞에만 맞춰서 찍는 것
짱구가 안 맞잖아: 좌우 비례가 안 맞다는 뜻
핸깨이 좀 줘: 좌우측 비율 조금 줄임
갠성: 100% 실사이즈라는 뜻 예) 야야~ 이거 작잖아. 갠성으로 뽑으라고 했잖아~
맥돌이/맥순이: 하루 종일 매킨토시 컴퓨터 앞에서 일해야 하는
CG작업하는 디자이너가 스스로의 신세가 한탄스러워 자신을 비하하는 말
광고업에서 사용되는 은어들은 예전 일본에서 시작된 인쇄와 디자인 용어에서 유래된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최근에는‘ 바리치다’ 등 영어에서 파생되는 국적 불명의 은어들도 많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생긴 것으로 보이는 용어 중에는 ‘히뜩하다’라는 말과‘ 있어빌리티하다’라는 용어가 가장 입에 붙네요.
하지만 국적도 불분명한 말을 쓰기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애용하는 광고업계가 되어야겠죠. 저부터 실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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