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비범한
오래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만난 그림 한 점은 백남준이라는 이름 석자가 액자 밑에 붙어 있었기에 반가운 눈길을 보냈지, 솔직히 유치원 애가 그렸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치졸함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뱁새가 봉황의 뜻을 어찌 알랴마는, 예술이라는 옷이 거추장스러워 훌훌 벗어던지고 그냥 세상과 장난치고 싶은 대가의 장난기를 보는 듯하기도 하고, 아니면 천의무봉, 동심에 이른 대가의 경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방가르드한 아티스트의 순진무구한 낙서화 한 장과, 완당(阮堂)이 거의 최후에 썼다는 문장을 오버랩해보면 궁극에 이른 대가들 간의 녹록지 않은 교집합을 보게 된다.
대팽두부과강채 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 高會夫妻兒女孫
<완당평전(阮堂評傳)>의 풀이는 이렇다.
최고 좋은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나물
최고 훌륭한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글씨 또한 글의 내용만큼이나 소박하며 욕심 없고 꾸밈없는 순후함으로 가득하다고 하니 모든 기교를 죽여 버리고 결국은 원초적 무욕의 세계로 회귀한 대가들의 경지가 경이로울 따름이다. 무릇 광고 일이라는 것이 예술가들의 그것과는 다르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큰 틀로 이해할 때 결국은 욕심을 버리고 진심에 의지하고, 재주에 기대기보다는 내 가까운 곳에서 진실을 찾아내야 할 것임을 대가들의 몸짓에서 읽어내야 할 것이다.
우리들 광고가 너무나 멀리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그저 얄팍한 재주로 진실인 양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사슴피가 유행이면 사슴피 찾아다니고, 곰쓸개가 좋다면 곰쓸개를 내놓는 정말 쓸개 빠진 짓거리로 머리를 희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되짚어 볼 일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결국 진정성이다. 그 말은 얼마나 화려하고 현란하게 설교를 잘 하느냐보다 그 설교를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바꿔 사느냐의 문제와 같다. 그러기에 진정성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섣부른 기교가 없고 현학이 없다. 단순하지만 굵직하고, 어린 아이 같지만 비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가슴으로 끌어안는 힘이 있다. 그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인 것이다. 입장은 다르지만 말년의 완당이나 백남준의 경지가 그리로 종착하는 걸 보면 우리네 커뮤니케이션도 의당 그들을 눈여겨보는 현명함을 취해야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평범하지만 비범한 광고를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미처 모자랄 때 감각의 호들갑이나 얄팍한 말장난과 타협하게 된다. 그런 광고들에서 설복의 힘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화려한 겉치레보다는 단순하지만 진심이 펄떡펄떡 살아있는 광고, 색깔도 모양도 심심해 보이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광고가 더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현종
CCO (Chief Creative Officer) |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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