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04 : ENCYCLOPEDIA -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Tender is the Bus’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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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YCLOPEDIA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Tender is the Bus’

문득 예전에 버스를 타고 즐겨 갔던 곳들이 스쳐 지나갔다. “노량진에서 학교를 올 때는 5517을 타. 흑석동 넘어가는 다리가 특이하거든”이라는 대화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래서 직장인이 된 지금, 추억(?)을 되살려 ‘버스타고 가기 좋은 구간’이라는 주제의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땐, 부러 버스를 타고 모르는 곳까지 갔다.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모험심이라기에는 부족했다. 갈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 간 뒤에는 곧장 반대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땐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만큼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교를 하는 대학생이 됐다. 차도 막히고, 오는 시간도 제멋대로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난 버스를 택했다. 지하철처럼 마주 보는 좌석이 아니니 둘 데 없는 시선을 떨굴 필요도 없었고, 창 밖에는 늘 지상의 풍경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버스의 덜컹임이 좋았다. 나는 버스 맨 앞 오른쪽 솟아오른 자리에 앉아서 얼마간의 공상도 하고, 미안한 얼굴을 돌이켜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후회를 하기도 했다. 덜컹이는 탓에 뭔가를 읽을 수도 끄적일 수도 없었던 시간은 내가 모르는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버스를 잘못 타 엉뚱한 곳에 내리기도 하던 대학생 시절을 지나 이제 나는 지하철을 타고 통근을 하는 직장인이 되었다. 얼마 전에 한번 버스를 타고 회사까지 와봤는데, 가다서다 하는 버스 안에서 조바심이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직장인의 분주한 아침과 버스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자 문득 예전에 버스를 타고 즐겨 갔던 곳들이 스쳐 지나갔다“. 노량진에서 학교를 올 때는 5517을 타. 흑석동 넘어가는 다리가 특이하거든” 이라는 대화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래서 직장인이 된 지금, 추억(?)을 되살려 ‘버스타고 가기 좋은 구간’이라는 주제의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5517 : 효사정 ↔ 사육신공원

위의 대화 속 구간은 노선 단축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앙대발 5517을 타면 중앙대→흑석1동 효사정앞→노들역(9호선)→사육신공원 노선의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진 뒤 타야 더 멋지다. 밤의 노들섬은 바라보기가 참 좋아서, 이때 만큼은 차가 막혀도 화가 나지 않는다. 해당 노선은 중앙대발 151·152·501번 등을 타도 볼 수 있다.

 

(2) 흑석동 1번 버스 : 중앙대 후문 ↔ 달마사 입구

마을버스라서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곡예에 가까운 드라이브의 추억을 준 구간이라 소개한다(실제로 몇 년 전, 눈 오는 겨울에 버스가 미끄러져 큰 사고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창밖의 풍경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기만 하다. 사진은 눈 오는 날 찍은 중앙대 중문. 

(3) 172 : 창경궁 ↔ 조계사

어디에 내려도 좋을 노선이다. 맑은 날에 가도, 비오는 날에 가도, 눈 오는 날에 가도 좋은 창경궁.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지면 조계사에 들러 등불 아래를 걸어도 좋겠다.

 

(4) 110B : 평창동주민센터 ↔ 평창동 롯데삼성아파트

버스 창밖으로 기개 있게 뻗은 북악산 산줄기를 볼 수 있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구간. 평창동 삼성아파트에 내려 북한산 둘레길을 갈 수도 있고, 평창동 미술관 거리를 갈 수도 있다. 특히 일 년 내내 무료입장이 가능한 갤러리 '아트라운지 디방(www.dibang.org)'을 추천하고 싶다. 연말 공모전을 통해 뽑힌 작가들의 전시를 한 해 동안 무료로(작가에게도, 관람객에게도) 열어주는 착하고 고마운 갤러리. 공모전에 입상한 작가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5) 05번 남산 순환버스

여기서 빠져선 안 될, 단연 가장 낭만적인 버스노선이자 누구나 한번쯤은 타봤을 국민노선. 05번 남산순환버스를 타면 유난히 커플이 많이 보인다. 앞자리에 앉은 연인의 뒷모습, 어깨 끝으로 보이는 차창 밖의 푸른 잎사귀. 아〜 풋풋해라. 참고로 난, 그때 마이큐의 <며칠째>를 듣고 있었었다.

 

(6) 405번 : 서초역 ↔ 서울신문사 

405번 버스만 타고 다녀도 2박3일 서울구경을 할 수 있을 만큼 보물 같은 노선. 실제로 남산 예술원<->남대문시장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기도 했다.
저 구간 중 아무데나 마음에 드는 곳에 내려 숲 냄새를 맡으며 걸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컨셉트를 바꿔 이태원 꼼데가르송거리를 가는 것도 가능하다(이태원은 지난번 사보의 키워드였으니 생략). 서울신문사와 시청을 갈 수도 있다. 방향을 바꿔 이태원→서초역 구간을 달리는 것도 꽤 매력이 있다. 노들교만큼은 아니지만 반포교의 야경도 아름답고, 예기치 않게 두 번 연속 우회전을 하는 길목은 몇 번을 타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버스에 대한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는데, 쓰고 나니 지극히 주관적인 글이 되어서 사보에 싣기 망설여진다. 그러나 누군가 잠시라도 이 글을 통해 버스의 덜컹임이 주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기분을 떠올릴 수 있었다면 그걸로 좋을 것 같다. 날이 따듯해지면, 05버스를 타고 차창을 활짝 열어재껴야지. 버스 안에서 들으면 좋을 노래는 추천 받습니다.

 

 조윤아
 디지털1팀 사원 | urhere@hsad.co.kr

 

 “It's time for DIGITAL to be PHYSICAL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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