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04 : 色다른 크리에이티브 - 뒤틀린 강박관념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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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色다른 크리에이티브
뒤틀린 강박관념

지금까지 디자인은 각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문화 해석과 재해석, 또 그것의 재해석을 통해 진화해왔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그러한 변화가 나아가게 하는 일의 중심에 있다.

요즘 디자인은 기술혁신을 선보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 외 다른
사항은 안중에도 없다. “ 오늘의 새로움은 내일의 구닥다리”라고 강조하며 새로운 기술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매번 참신한 디자인을 내놓아야 한다는 뒤틀린 강박관념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 <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2007 (그래픽 디자인 이론, 그 사상의 흐름, 125쪽)



“디자이너는 독창적인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스타일을 따라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창조한 그래픽에는 제 개성이 담겨 있습니다. 역사책을 읽기보다 나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개발하는 게 더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 수업시간 중 어느 2학년 학생의 말, 2010



갓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사무실에서 잡지를 만들던 2002년의 어느 날, 비타민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으로 과일가게에 들렀다. 그때 산 귤이 딱 2천 원 어치였다. 맛있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행복했다. 그리고 잡지 한 권이 나오고 뿌려지는데 드는 돈과 귤 한 봉지를 사는 데 드는 돈의 액수 차이를 계산하며 심한 괴리감을 느꼈다. 참 이상한 세상이었다. 학창시절 자주 듣던‘ 디자인의 부가가치’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그것이‘ 창조적인 일’을 하는 데 대한 대가일 거라 결론 내렸다.

크리에이티브
나는 2년 여간 광고회사의 크리에이티브 팀에 속해 일했다. Creative Team.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로 구성된 이 팀은 실질적으로 회사의 모든 활동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회사의 약 3분의 1정도가‘ 창조적인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3분의 2는 창조적인 사람들을 지원하는 인력이었다.
프로듀서·매니저·IT·회계 관련 직원은 우리 부서 사람들을 간편히‘ 크리에이터’라고 불렀는데, 나는 이 명칭이 듣기에 거북했다(쓸데없이 민감한 탓이겠지만). 부서 내 다른 아트디렉터들 역시 생각이 비슷했던 것 같다. 우린 서로에게‘ 크리에이터’라는 호칭을 쓰는 법이 없었다. 프로듀서가 나에게 다가와“ 당신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크리에이터’입니까?”라는 식으로 말을 걸때면, 그때부터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중압감에 휩싸이곤했다.‘ 모든 프로젝트를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자세로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울 수 없다. 창작 디자이너 또는 아트디렉터는 크리에이터라는 거창한 명칭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디자인은 독창적인 영역일까? 이 물음이 내가 느끼는 부담과 괴리감의 원천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을 들여다보며 창조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마음에 담는 것은 디자이너의 일상과 밀착된 부분에 대한 것이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창작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 나만의 독자적인 스타일’ ‘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참신한 그래픽’ ‘시대를 앞서 가는 뉴미디어의 개척자’. 반대의 경우도 있다. ‘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예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이야’. 이런 해결되지 않는 번뇌들은 창조·모방·카피·진부·유행 등의 압박이 되어 디자이너를 옥죈다.
누구도 상상 못했던 새롭고 멋진 그래픽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정말 멋질 것이다. 남의 것을 베끼는 행위는 범죄다.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것은 모조리 모방이고, 오직 눈에 낯선 표현만이 창의적이라는 식으로 스스로 몰아붙이는 것은 불공평하다.


언어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언어는 창조활동이다”. 내가 구사하는 언어는 과거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단어의 창조적 조합을 통한 표현이라는 뜻이다. 지금 당신이 읽는 이 문장도 새로운 창작물이다. 유사 이래 이 글과 똑같은 내용의 글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독창적이다. 그러나 나는 한글을 창조하지 않았다. 여기 인쇄된 단어 중에 내가 창조한 단어는 단 하나도 없다.

변화
디자인의 결과는 어떤 외형으로 귀결되지만 그 창조성은 외형에만 칠해져 있지 않다. 디자인의 창조성은 문화의 해석 및 표현 과정에 들어있다. 대부분의 경우 모방에 대한 불안은 디자인의 외적인 부분만을 뚝 떨어뜨려서 관찰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을 놓고 그 표현에 얽힌 여러 사회 문화적 연결고리들을 가려놓은 채로 독창성의 여부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픽디자인은 어떤 사회의 문화 속에서 디자이너가 주제(내용)를 어떤식(스타일)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가에 대한 분야다. 어떤 스타일이나 트렌드를 따르고 어떤 종류의 기술과 표현법을 차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쉽게 모방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창조성을 문화적 정황이 아닌 오로지 기술과 심미적 요소로부터 캐내려고 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근원
새로운 아이디어, 스타일의 발명, 매체 혁명. 모두 좋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제 아무리 새롭다고 자부하는 아이디어나 표현법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거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어떤 사회 문화에 근원을 둔다. 지금까지 디자인은 각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의 문화 해석과 재해석, 또 그것의 재해석을 통해 진화해왔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그러한 변화가 나아가게 하는 일의 중심에 있다.

이지원
미국 버지니아 주립 Old Dominion University 조교수 | hongjt10@gmail.com

전 Crispin Porter+Bogusky 디자인 실장. <그래픽 디자인 이론>(비즈앤비즈, 2009)와 <그래픽 디자인 들여다보기 3>(비즈앤비즈, 2010)을 번역했고, 본문용 글꼴인 ‘바른지원체 book’을 디자인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