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12 : Special Edition - 2003 트렌드 3題 - '대중문화' vs. '폐인 문화'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2003 트렌드 3題 1 - 대중문화’ vs. ‘폐인 문화’  
 
‘치고 빠지며’ 나의 존재감 즐기기
 
김 종 휘 | 문화평론가
inude@haja.or.kr
 
지난해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보다 더 극적인 신화가 있었다. 바로 길거리 응원단. 한국 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국 주요 대도시 거리에 모여 난장을 벌이며 놀다가, 쓰레기까지 주워 사라지는 수 십 만 젊은 인파의 모습은 지구촌이 감탄하기에 충분한 장관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사건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뒤따라 갖가지 이야기도 넘쳐났다. ‘이 젊은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W세대’니 하는 이름짓기에 골몰했고, 이들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선진국 도약의 발판으로 마련하자는 등 법석을 떨었다. 이에 필자는 눈이 동그래져서 이렇게 묻고 있었다. ‘이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쏟아져 나왔던 말인가.’
같은 해 광화문에서는 효순·미선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월드컵과는 달리 숙연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이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규탄하며 전쟁을 반대하는 집회가 매 주말 거리를 메웠다. 그 대오에 참여하고 있던 필자는 미묘한 분열을 감지했다. 시민단체에서 나온 이들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또 묻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또 그 해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보고 혹자는 ‘오프라인 정치판을 뒤집은 온라인 선거혁명이자 보수적 종이신문을 압도한 진보적 인터넷 언론의 승리’라고 흥분했다. 필자는 여전히 묻고 있었다. ‘노사모’는 어떻게 태어났고 성장한 것일까.
잘 알다시피 그들이 나온 곳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의 자발적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다. 흔히 ‘네티즌’이라고 부르는 이들 안에는 ‘붉은 악마’나 전쟁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연대모임처럼 특정한 신념이나 목적을 갖고 참여한 사람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필자의 관심사는 그들과 구별되는, 한낱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다모 폐인’ ‘얼짱 신드롬’의 실체가 궁금하다

장면을 바꿔보자. 드라마 <다모>가 시청률 20%를 밑돌던 초반에도 인터넷에서는 이미 <다모> 커뮤니티를 형성해 주목과 관심을 끌었던, 일명 ‘다모 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TV 드라마’는 한 편이지만 이들 폐인이 만들고 향유한 ‘인터넷 커뮤니티 내부의 드라마’는 무수히 다양하고 새로웠다. 또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인기 속에 연재되던 18세 여고생 귀여니(본명 이윤세)의 이야기 <그놈은 멋있었다>가 책으로 출판되더니 불과 5개월여 사이에 30만 부 판매에 육박했다.
이에 자극 받은 출판사들은 조회수가 10만을 넘기는 인터넷의 모든 이야기들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려고 10대 작가들과 경쟁적으로 계약을 서두르기도 했다. 최근에는 방송에서 ‘얼짱 신드롬’을 소개하기에 여념이 없다. 누군가 얼굴이 잘생긴 미소년·미소녀 사진을 올려놓으면 청소년 네티즌들이 지지를 표시해서 인터넷 스타로 만드는 이러한 커뮤니티가 급속도로 확산되며, 대중의 성원이 확인된 이들 얼짱을 무시할 수 없는 연예기획사들은 그들을 신인 연예인으로 픽업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다모 폐인’의 등장은 그보다 조금 앞서 벌어졌던 드라마 <인어아가씨>의 작가에 대한 안티 운동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인어아가씨> 안티 사건은 구태와 억지로 드라마를 연장하는 것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방송국 게시판에 5만여 건의 글을 일제히 올려 절필을 촉구한 사이버 시위를 말하는데, 그동안 방송물에 대한 네티즌의 참여는 이렇듯 일방적인 지지 또는 격렬한 반대라는 양축을 오가는 것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모 폐인’들은 드라마를 핑계 삼아 마치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문화적 놀이’가 얼마나 많은지를 각축이라도 벌이듯 하며 온갖 아이디어와 담론을 생산했다. 그 결과 드라마의 인기를 능가하며 ‘다모 폐인’들의 문화를 이슈로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들 폐인들은 지금 또 다른 ‘먹이감’을 찾아 여러 드라마와 영화로 눈길을 돌리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귀여니의 출현은 어른들의 기준에 의해 제시되었던 청소년 도서의 생산과 선택권을 10대 스스로 찾아가는 징후라고 해석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한글 훼손과 문학적 성취 여부를 떠나, 10대가 쓰고 10대가 읽는 팬픽(fanfic; 팬(fan)과 소설(fiction)을 결합한 신조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만화 속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의 유행 뒤편에서 성장한 인터넷 독서 세대의 잠재력이 출판시장으로 진출한 셈이다. 여기서도 물론 주목되는 것은 그 대표적 존재인 귀여니가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진 스타라는 사실이다.
이른바 얼짱도 마찬가지다. 기획사와 방송사가 주도하는 스타산업을 추종하던 청소년들이 스스로 기획사 놀이도 하고 방송사 역할도 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기 시작한 현상이다. 비록 얼짱이 되려는 개인은 연예기획사에 발탁되기를 바라겠지만, 얼짱을 만드는 메커니즘은 기획사와 방송사의 결탁으로 돌아가는 스타 시스템의 무대와는 다르게 인터넷 커뮤니티를 자신들만의 엔터테인먼트 장으로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 작동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인터넷과 인터넷 커뮤니티로 수렴되거나 거기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부터 얼짱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들은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장 중요한(또는 전부인) 미디어로 취급하며, 단지 그것만을 통해 이 세계와 소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꽃은 바로 ‘게시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게시판의 속성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평적 만남의 장이라는 점에서 일견 ‘만인 대 만인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으로 인식되지만, 달리 보면 여러 사람들이 모두 나(의 동영상과 이야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즉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개인의 욕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체면을 중시하거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 특유의 국민성이라고 평가할 사람도 있겠고, 또는 타인의 눈길을 갈망하는 노출증과 익명의 커튼 뒤에서 타인의 ‘날것’을 보기를 원하는 관음증에 비유하면서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는 그간의 대중매체가 특정한 이해관계에 의해 대중을 소외시켜온 것에 대해 이제 대중 스스로 반기를 들고 있다는 식의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무수히 많은 개인들이 인터넷에 명멸하는 온갖 커뮤니티를 넘나들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의 존재를 선보이다가, 특정 게시판에서 불꽃 점화되면 불나방처럼 모여들어 어마어마한 불길로 타올랐다가 잦아드는 일이 점차 빈번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급기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질서가 이들의 ‘치고 빠지기’ 때문에 교란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종종 ‘문화권력의 이동’이라거나 또는 스타·기획사·미디어에 이은 ‘제4의 권력’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불려지는 순간 이들 네티즌은 기존의 ‘시청자·시민·대중·국민’ 등과 같은 ‘정체불명의 다수’를 뜻하는 또 하나의 집단으로 전락하여 언제든 동원 가능하고 작당 공모할 수 있는 파트너로 둔갑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시각으로 접근한 모든 제안은 실패로 돌아가고 있다. ‘힘을 가졌으니 시민사회의 공공성을 위해 또는 구악을 타파하고 개혁을 위해 궐기하라’고 촉구하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기획사의 준비된 예비스타를 위해 인위적으로 커뮤니티를 만들면 금세 들통 나고 역효과만 커진다. 인터넷 바깥에서 외부인에 의해 네티즌으로 호명되는 순간, 이들은 흩어져 멀뚱거리며 쳐다볼 뿐이다. 이들은 모래알처럼 각각의 개인으로 떠돌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순간 찰흙처럼 뭉치면서 위력을 발휘하는데, 이 분명해 보이는 ‘자발성’의 계기와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관심사이다.

지금은 ‘대중문화’에서 ‘대중의 문화’ 로 가는 길목


네티즌이라 불리는 그들의 자발성은 ‘기존의 문화권력이나 질서’에 대해서는 분명 그렇다. 방송사·신문·기획사·문학상·시민단체·기업, 혹은 특정한 스타나 개인이 그들을 박수부대로 거느리거나 꼭두각시처럼 대할 때 단호히 거부감을 드러내고, 반박과 응징을 통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만큼 네티즌은 성장해 있다. 따라서 이들 네티즌의 등장 때문에 기존의 스타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대중문화’와는 약간 다르게 ‘대중의 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부터 얼짱까지, 이 모든 현상은 조직된 주체나 기득권의 사주를 받고 기획된 것이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그들 네티즌의 참여로 만든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들은 네티즌 각자에겐 저마다의 개인적 자발성이며, 그들 모두와 이 사회에겐 자연 발생적인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의식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딱 이만큼’ 진화했다. 네티즌의 자발성은, 아직까지는 인터넷과 커뮤니티와 게시판이라는, 정보기술의 혁신이 제공한 쌍방향 개인 미디어의 형식적 자유를 누리는 것에서 단지 한 걸음을 내딛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권력이동’이니 ‘제4의 권력’이니 하는 말은 기득권자의 호들갑이자 이들마저 추종자로 포섭하려는 아첨에 불과하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 필자가 주목한 그 사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새로운 소통(권력)의 형식을 새로운 내용의 창출로 확장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못하는 미숙아이다. 결국 우리의 생활은, 우리의 문화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길거리 응원은 국가 차원의 월드컵 유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고, 다모 폐인들은 여전히 드라마 <다모>에 빚지고 있으며, 얼짱 신드롬은 스타산업과 팬클럽 문화를 통해 연예계 속성을 사전 습득하지 않았다면 생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계기들의 바로 옆에서 거리를 두고 자생적으로 출생하고 독립적인 형식을 유지하지만. 게다가 인터넷 커뮤니티로 결집된 욕망들은 다시금 월드컵경기장으로, 드라마로, 연예기획사와 방송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을 감추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주된 동력이 ‘만인에게 드러내는 나의 존재감’이라면, 그것은 언제든 한층 거대한 규모로 만인의 시선이 집중된 더 높은 장소로 이끌리게 되어 있다.

이제 필자가 처음에 주목한 그 사람, ‘개인’으로 돌아와 보자. 그는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게시판을 읽어보고 리플을 단다. 작년에는 그렇게 해서 친구들과 길거리 응원에 나갔고 촛불시위에도 참여했었다. 올해엔 뭐 신나는 일이 없나 하던 차에 다모 폐인 소식을 듣고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하오체’ 대화와 패러디 웹진에 빠져 지냈다. 최근에는 얼짱 선발이 있다고 해서 한 표 행사하고 나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직장에 다니는 30대 중반의 당신일 수도 있고, 대학 졸업반의 반 백수 상태인 사촌동생일 수도 있으며,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누님댁 큰 아이일 수도 있고, 평론한답시고 이곳저곳 기웃대는 필자일 수도 있다. 아니, 그 사람은 바로 당신과 나의 또 다른 가면이자 그림자이다. 다시 말해 직장인·백수·학생·엄마·자녀·남성·여성 등이라 이름 붙여진 그 ‘자리’에 붙박인 나의 정체성을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자리’에서 실현되는 내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네티즌, 그 이름에 얽힌 모순이자 가능성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어디론가 나아가려고 한다. 자신의 특성과 힘을 자각하면 할수록 선택의 긴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네티즌이 만든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대중의 문화’는 견고하고 구태의연한 스타산업의 ‘대중문화’ 옆에서 오늘도 갈 길을 정하려고 고심하고 있다.
 
Posted by HS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