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생물학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생물학의 유전 이론을 문화 현상에 접목시킨 ‘밈(meme)’이라는 개념은 과학을 넘어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죠. 오늘 HS애드 공식 블로그에서는 대중 속으로 들어온 ‘밈’이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생물학에서 문화로 건너온 이기적 유전자, 밈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밈’은 신체적 유전을 넘어 종교나 사상, 문화 같은 정신적 사유 활동까지도 유전되고 전파되는 현상이라 말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대중문화에서 인터넷이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문화적인 밈은 원래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변화했어요.
▲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출간 40주년 기념 버전 표지(이미지 출처: yes24)
현재 밈은 ‘기존의 콘텐츠가 대중을 통해 유통되고 재생산되면서 생기는 문화적 요소’를 뜻합니다. 초기 영미권에서는 채팅이나 UCC를 만들 때 쓰이는 요소들을 밈이라 부르곤 했는데요. 아무래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생겨난 현상이기 때문에 ‘인터넷 밈(Internet Mem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밈의 주요 특징, 원본 캐릭터와 크리에이티브의 공생
▲ 영미권의 다양한 밈을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 (이미지 출처: Know Your Meme)
태생이 문화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인 만큼, 외국에서는 인터넷과 SNS는 물론 문화 전체의 유행요소를 포함시켜 밈이라 지칭합니다. 한국에서도 밈은 유행과 패러디, 짤방 등을 포괄하는 개념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밈은 외국과는 다른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먼저 원본을 기반으로 한 2차 창작물인 경우가 많아요. 또한, 원본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편집해 활용한 것은 밈이 아닌 새로운 창작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사딸라’ 김영철 배우의 원본에서 ‘사’부분만 편집해 활용한 영상은 ‘사딸라’의 밈 시리즈라 부르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경향성일 뿐 절대화된 규정은 아닙니다.
의미는 있어도 없어도 OK! 일단 도전하는 챌린지형 밈
문화의 성격상 수많은 종류의 밈이 있겠지만 그 종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특정한 행위에 도전하는 ‘챌린지’ 성향의 콘텐츠들입니다.
지코가 신곡 <아무노래>를 발표하면서 SNS 채널 ‘TikTok’에서 시작한 ‘아무노래 챌린지’가 대표적인데요. 이효리와 강민경, 최강희를 비롯한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도 대거 참여하면서 노래의 인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습니다. 한편, 사회적/마케팅적으로 의미가 있는 챌린지 외에 이유 없는 ‘병맛’ 챌린지도 다양하게 등장했습니다.
위의 영상은 호주의 인터넷 인플루언서 ‘잭슨 도허티’의 ‘Silly Salmon Challenge’ 영상입니다. 도전 과제는 간단합니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Silly Salmon’을 외치면, 그 친구가 마치 생선이 점프하듯 몸을 곧게 펴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물로 뛰어드는 것인데요. 잭슨 도허티의 영상이 조회 수 7천만을 넘어선 데 이어 많은 사람이 이를 패러디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챌린지 콘텐츠에서 우리는 밈의 또다른 속성을 엿볼 수 있어요. 단순히 각각의 콘텐츠가 하나의 밈이 되기도 하지만, 밈 콘텐츠가 생겨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밈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불러온 캐릭터를 다듬고 비틀다
두 번째는, 소위 ‘짤방’과 패러디 영상 콘텐츠인데요. 인기 드라마와 웹툰부터 시사 등 사회 현상까지 광범위한 주제가 밈의 소스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 전 연령에게 어필하고 있는 김영철 배우 역시 짤방으로 제 2의 인기를 얻은 배우입니다. 최불암에 이어 <동네 한 바퀴>로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먹방과 주민들의 스킨십을 선보인 배우 김영철.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야인시대>의 ‘사딸라!’ 캐릭터가 잊히지 않았는데요.
2019년 김영철이 출연한 버거킹 광고에서는 그 장면 그대로 ‘사딸라!’를 외치며 <야인시대> 팬들의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킵니다. 이후 tvN 예능 <신서유기>에서 슬로바키아 민요 ‘목장길 따라’의 후렴구 자막을 ‘사딸라 붐빠’로 집어넣은 것을 활용한 2차 패러디 버전과 뮤지컬 버전 등 새로운 밈이 계속 창작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영화 <타짜>의 배우 김응수. 그가 연기한 ‘곽철용’은 고니, 아귀, 정마담 등 쟁쟁한 캐릭터에 묻혀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개그맨 이진호가 방송에서 명대사들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이슈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묻고 더블로 가!’를 비롯한 영화 속 유행어와 함께 영화 <타짜>를 편집해 만든 가상의 영화 ‘곽철용’의 티저가 인기를 끌고 곽철용에 관한 짤방들이 인터넷과 SNS를 돌아다니게 되면서, 곽철용 캐릭터는 무려 13년 만에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사딸라’ 밈으로 크게 인기를 끈 버거킹 광고의 후속편을 곽철용 캐릭터가 거머쥐었으며, 치킨과 맥주 등 다양한 광고에서 변주되기도 했습니다.
원작을 해체하고 비틀어 재생산하는 패러디
패러디 콘텐츠도 대표적인 밈입니다. 원작을 200% 재현하는 섬세한 패러디도 인기가 많지만 아무래도 코믹 요소를 살린 패러디가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 태국의 유명 코스튬플레이 인플루언서 ‘Lowcostcosplay’의 조이서 패러디 (출처 : Lowcostcosplay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인플루언서 ‘Lowcostcosplay’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 이름 그대로, 유명한 캐릭터를 최저가로 코스튬플레이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빈약한 예산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채운 다양한 밈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주인공 조이서를 막대 과자로 코스튬플레이 한 밈입니다. 무려 16만 개의 '좋아요'와 1만 5천 개가 넘는 댓글을 끌어냈습니다.
▲ DC인사이드 배우 지진희의 팬페이지에는 지진 이야기가 가득하다(이미지 출처: DC인사이드)
한편, 형식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밈이 인터넷을 가득 채우는 것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소위 ‘갤러리 털기’라고 알려진 도배 문화도 이러한 밈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갤러리 털기’는 특정 행동을 집단으로 하는 ‘온라인 플래시몹’과 비슷한데요. 각각의 콘텐츠가 재미를 주기보다는, 콘텐츠를 생성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밈으로 작용하는 것이죠.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지진만 발생하면 게시판이 ‘지진희 났어요’로 도배가 된다는 DC인사이드 지진희 갤러리와, 정부에서 중대한 발표가 있을 때마다 게시판이 난리가 난다는 중앙대 갤러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챌린지 자체가 밈이 되어버리는 현상과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광고업계의 밈 활용에는 제약 사항이 있습니다. 먼저, 밈을 적극적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밈이 네티즌들에 의해 우연히 등장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또한, 밈의 기본적인 속성이 ‘2차 저작물’인 만큼 저작권 관련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사딸라’ 광고 역시 네티즌 사이에서 ‘단순 패러디냐 저작권 침해냐’라는 주제로 논란이 생긴 적이 있었죠.
주제를 잘 잡았을 경우 대중에게 각인되기 쉬울뿐더러, 전파 속도도 빠른 밈 콘텐츠에 광고/홍보 종사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콘텐츠야말로 스피드와 타이밍이 생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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