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와 SNS
사실 난 UFO를 본 적이 있다고 믿고 있는데, 참으로 생생한 그날의 기억은 착시나 몽환일 거라는 주변의 비웃음을 쉽사리 감내하게 해준다. 비교적 초현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들에 시큰둥한 편이긴 하지만, 그날 이후로 UFO 얘기만 나오면 증인석에 자진출두, 기를 쓰고 사실을 입증하려고 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건 세 치 혀 외에는 입증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날 UFO는 전철역 담장 너머로 약 2, 3분간 수직강하 쇼를 보이다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는데, 딴 짓하고 있던 옆 사람들에게 달려가 ‘저것 좀 보라’고 청할 겨를도 없이 그만 난 그날의 쇼를 기억하는 유일한 생존자가 돼 버렸다. 할 수 없이 술자리 안주감이 된 채 나만의 X파일 속에 갇히는 비운을 맞게 된 건, 그러니까 오로지 기억의 주인을 잘 못 만난 탓이리라. 만일 그날 내 손에 지금처럼 그 흔한 휴대폰이라도 쥐어져 있었으면 어김없이 기록의 창에 가둬둘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온전히 살아남지 못한 증거 덕택에 픽션과 논픽션을 적당히 버무려 맛깔 나는 구라를 가공해낼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사는 맛 아닐까하는 위안을 해본다. 뭔가 좀 모호하기도 하고, 아쉬운 것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0과 1로 모든 것을 가공하고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고, 끝내는 완벽하게 재생시킬 수 있다는 디지털 세상은 나처럼 겁 많은 이들에겐 너무 냉혹하고 때로는 숨 막히는 공포다 - 물론 새로운 문명을 처음 접했을 때 미개인들이 갖게 되는 그런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유사한 것이겠지만..
지금 이 가족이 옛날의 그 가족일까 …
어쨌든 아쉬움이라든가 기다림이라든가 그리움이라든가 하는 정서들이 요즘엔 못난 사람들의 전유물 정도로 취급받게 되는 건 아닌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다. 생각나면 길 가다가도 바로 휴대폰으로 접선이 가능하니 기다리고 아쉽고 할 이유가 없다. 한 시간이 넘게 죽치고 앉아서 ‘이 여자가 왜 안 오는 걸까’ 하며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끝내는 쓸쓸히 일어나서 카페를 나서는 남자들을 볼 일도 없어졌다. 그냥 휴대폰 한번 눌러보면 된다.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고 있는지,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궁금해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할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 휴대폰은 점점 스마트하게 진화해 이번에는 틈만 나면 메신저로, 트위터로, 카카오톡으로, 페이스북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중계하고 수다를 떨어댄다. 순식간에 만나고 털어버리고 감정의 잉여물들은 또 다른 만남으로 재빨리 소각해버린다. 모든 것이 쉽고 분명하다. 그리고 지식인과 어플들이 가세해 더욱 간단히 해결해준다. 애매한 것은 구시대적이다. 그래서‘ 애정남’이 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가족들과 외식을 하는 날이면 누구랄 것도 없이 메뉴를 정한 후엔 각자의 스마트폰 속으로 잠수한다 - 아마 먼 훗날의 인류는 지금보다 고개가 15도에서 20도 가량 앞으로 기울어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기린의 목이 길어졌듯이 말이다.
돌연 지금 나랑 밥을 먹고 있는 이 가족이 옛날의 그 가족일까라는 생각이 둔탁하게 머리를 때린다. 지금 그들은 누구와 무엇과 네트워크되어 있을까. 과연 인터넷과 모바일과 SNS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0과 1의 침공은 말 그대로 쓰나미다. 수천 년 동안 권력을 향유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정보의 독점과 비대칭성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비즈니스 생태계를 바꾸고, 사랑의 방법을 바꾸고 있다. 그것도 아주 스마~트하게. 여전히 풀 한포기도 오롯이 모르는 게 사람인데`…
이현종
CCO (Chief Creative Officer) | jjongcd@hs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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