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로는 알 수 없는 것들 HSAD 공식 블로그 HSAD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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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광고 제안을 준비하다가 소비자의 목소리를 하나 듣게 됐다. 모바일 콘텐츠들의 유용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킬링타임’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무언가를 기다리거나 휴식을 취하며 아무 생각 없이 꺼내 보는 모바일은 킬링타임이라는 말이 매우 적절해 보였다. 누구나 한 번쯤 필자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필름 카메라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틈이 날 때면 유튜브 앱을 통해 몇몇 카메라의 소개와 리뷰 콘텐츠를 찾아봤는데 이것이 발단이었다. 어느새 필자의 유튜브 첫 화면은 카메라 추천 영상이 가득한 하나의 카메라 사이트가 되어 있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것을 찾아본 결과 나도 모르게 시간을 정말로 ‘죽이고 있었다’.

목적 없이 시간을 보냈다는 자괴감이 들지만, 무료한 시간을 무엇으로든 채웠다는 의미에서 킬링타임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놀랍게도 그 쓰임을 곱씹어 보면 예전의 모든 매체가 킬링타임에 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뜻이 결코 긍정적이진 않았다. 바보상자라고 불리던 ‘TV’는 그 시대의 킬링타임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말이었다. 지식의 산물로 불리는 책 역시 처음 등장하던 시대에 비판을 받았다. ‘요즘 사람들이 책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문제다’라고 했던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책을 그렇게 불태웠던 이야기가 많은 걸까? 킬링타임과 그에 대한 비판은 모든 매체가 치른 홍역과도 같은 과정임을 추측할 수 있다. 매체는 사람이 말해주는 것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상상했던 것을 그대로 눈앞에 보여주기까지 한다.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 가는 것도 모르게 할 만큼 재미있는 매체는 ‘시간을 죽이는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모바일이 만든 킬링타임은 때와 장소, 시간을 불문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매체와 차이가 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을 손에 놓지 않는다. 심지어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할 때, 누군가와 대화할 때도 이는 반복된다. 그 결과, 모바일은 유사 이래 경이적인 사용량을 보여주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오죽하면 모바일 매체의 경쟁자는 TV나 기존의 매체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이라고 거론될까? 모바일 시대의 최대 수혜자인 넷플릭스 CEO는 “우리의 경쟁자는 포트나이트”라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의 경쟁 상대는 해마다 바뀌지만, 기존의 매체는 거론된 적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모바일은 인간의 생활을 잠식한다는 점에서 여느 매체와 본질적인 출발선이 다르다. 이는 모바일이 만든 ‘킬링타임’이 더욱 크고 값져 보이는 이유이다. 

 

광고는 매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매체 그중에서도 콘텐츠 속 여백, 킬링타임을 활용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러한 광고의 특성 탓에 모바일이 새로운 광고 매체로서 각광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다만, 매체를 활용해 일하는 입장에서는 사용자의 모바일 활용 방식이 다양하다는 게 고민거리이다. 

모바일 등장 이전의 매체는 사용하는 콘텐츠 가짓수가 정해져 있었다. 한정된 지면과 채널 안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콘텐츠가 휘발적으로 노출됐다. 사람들도 그에 맞춰 규칙적으로 매체를 소비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보는 신문, 9시에 꼭 봐야 하는 뉴스, 뉴스가 끝나면 보는 드라마처럼 공식화된 스케줄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킬링타임은 규칙성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바일은 언제라도 그 자리에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특성을 가진다. 즉,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느긋함을 갖는 것이다. 조급한 마음의 광고가 모바일 환경을 따라잡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바일의 등장은 신문을 보는 아침 시간을 잠식했고 그 이후에는 철옹성처럼 변하지 않았던 TV 드라마 시간을 초저녁으로 앞당겼다. 그러나 모바일은 시간의 공백을 일시에 메워줄 통일성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진 않다. 지적인 말로 표현하자면, 무수히 많은 콘텐츠의 발신자가 수용자로서 다시 콘텐츠를 소비하는 전형적인 “보텀업 (bottom-up)” 형태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네이버의 타임보드나 스페셜 배너, 유튜브의 마스트헤드와 같이 크게 자리를 차지한 모바일 매체의 대표적인 지면을 통해 시간대를 아우르는 기존 매체의 역할을 충족하려고 하지만, 모바일에 기대하는 본원적인 영향력을 고려하면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섣부른 마음에 모든 모바일 광고를 아우를 수 있도록 여러 거점을 통해 규모감 있는 광고를 만들겠노라 결심해도 제작 시간이 부족하다. 그 결과, 파편화된 메시지들이 본래 메시지의 목적과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진화하며 제작 시간이라는 장벽을 제거하고 해당 매체에 최적화된 맞춤 메시지를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감정의 영역을 계량화된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있다. 사용자의 활동을 따라다니며 구매 제품을 반복적으로 노출해 보여주는 원시적 형태의 모바일 트래킹 광고를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물론 통계적인 수치를 동원하여 사용자에게 얼마만큼 광고를 노출했는지 알려주는 리포트가 산출되겠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 있는 답을 가질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겨우 과정일 뿐인 리포트 결과 수치를 노골적으로 맹신하는 지금의 광고가 모바일 환경을 따라잡기 어려운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킬링타임의 본원적인 가치에 대해 더욱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전과는 다르게 우리가 소비하는 ‘모바일의 킬링타임’에는 각자의 취향과 방식이 있다. 그것을 기존의 탑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이나 메시지를 통해 찾아가려는 노력은 수치화된 결과와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의 저항에 부딪힐 염려가 더 크다. 답은 어렵지 않다. 모두의 감각을 별도로 이해하고 내 감각에 중요성을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비로소 모바일이라는 킬링타임을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지 말고 단 하나의 의사결정을 밀고 강요하지 말자. 대신 느긋하게 사람들을 대하는 브랜드의 태도를 먼저 결정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의 킬링타임을 비집고 들어갈 준비를 하고서 말이다.


▲참고도서

일을 잘 한다는 것, 2021, 야마구치 슈, 구스노키 겐


Posted by HSAD